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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희망이 없어요" 폐업한 코인노래방 업주의 눈물

입력
2020.09.13 12:00
수정
2020.09.13 14:2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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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현수막 내건 노래방 사장 박진실씨 인터뷰
박씨 "코로나19 확산 마다 닫아야 하나…희망 잃어"
"한달 기본 지출 수백만원… 정부 지원금 모자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코인노래연습장을 운영하던 박진실씨는 5일 가게 앞에 폐업 사연을 담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김용식 PD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코인노래연습장을 운영하던 박진실씨는 5일 가게 앞에 폐업 사연을 담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김용식 PD

"제가 뭐라도 잘못해서 망한 것도 아니고, 정말 억울하죠."

3년 동안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된 코인노래연습장이 망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태원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서울시가 5월 중순 코인노래연습장에 대해 50일 동안 집합금지명령을 내린데다, 지난달 19일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강화되면서 노래연습장 등 고위험시설로 지정된 12개 업종은 영업을 중단했다.

집합금지명령이 길어지면서 영업을 재개해도 더 이상 이곳을 운영할 여력조차 없게 됐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한복판에서 코인노래연습장을 운영하던 박진실씨는 고민 끝에 5일 오전 가게 앞에 '망한 사연'을 담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인근 상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찍어 올린 이 현수막 사진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현수막이 걸린 노래방에서 박씨를 직접 만나봤다.

50일 동안 임대료, 전기세, 인증비, 저작권료 등 고정 비용이 장난 아닙니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대출금 갚으려고 다시 열심히 해보려 했습니다. 또 닫으랍니다. 폐업이 아니라 진짜 망했습니다.

현수막 내용 중 일부

손님은 없고 곰팡이만…집합금지명령이 남긴 상처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코인노래연습장을 운영해 온 박진실씨가 10일 텅 빈 가게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장마철 누수로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데다 곳곳엔 곰팡이가 피었다. 김용식 PD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코인노래연습장을 운영해 온 박진실씨가 10일 텅 빈 가게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장마철 누수로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데다 곳곳엔 곰팡이가 피었다. 김용식 PD

박씨의 가게는 영업을 하지 않아도 월세 등 매달 고정 지출만 수백만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나긴 장마에 물까지 새면서 기계도 일부 망가졌다. 하지만 기계를 고칠 여유조차 없었다. 지출이라도 줄이려고 가게를 처분하려 해도 월세 계약 기간이 남아 '유령 가게'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할까봐 폐업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박씨는 "고정 지출은 계속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현수막을 만들었다"며 "(현수막을 보고) 많은 분들이 장사를 못해 돈을 못 버는 것 말고도 지출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확산 전까지만 해도 23개 방이 꽉 차고도 대기 손님이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던 곳이었다. 갖가지 축제가 열리는 여름은 1년 중에서도 '대목'이었다.

그러나 노래방 내부는 손님으로 한창 붐벼야 할 손님 대신 곰팡이만 수두룩했다. 단돈 1만원이라도 건지기 위해 반주기기와 앰프를 팔아 곳곳이 휑했고, 누전으로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아 실내는 어두컴컴했다. 그나마 판 기기 중 일부는 오랫동안 쓰지 않다 보니 내부까지 곰팡이가 생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박씨가 가게를 닫기로 결정한 건 코인노래연습장에 다시 집합금지명령이 내려진 지난달 19일 무렵. 벽 시트지부터 조명까지 곳곳에 박씨의 손때가 묻은 이곳을 포기하자니 억울함이 몰려왔다. 그는 "제가 운영을 잘 못했거나 확진자가 다녀갔다든가 어떤 이유가 있어서 망하는 거라면 참담한 마음으로 접겠는데 그냥 억울했다"며 "코인노래연습장이 고위험시설이 돼서 코로나19가 또 확산하면 가장 먼저 문을 닫게 할 거란 걸 아니까 이곳을 계속 운영하겠다는 희망이 없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사라진 희망… 극단적 선택하는 업주도

코인노래연습장 업주 박진실씨가 10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다른 업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울먹이고 있다. 김용식 PD

코인노래연습장 업주 박진실씨가 10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다른 업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울먹이고 있다. 김용식 PD

2월부터 매출에 타격을 입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버틸 만했다고 한다. 점차 손님이 줄기 시작해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5월 초부터는 지출을 메울 돈마저 부족해져 대출까지 받았다.

그러나 서울시에서 코인노래연습장에 집합금지명령을 내리면서 고정 비용을 오롯이 박씨가 떠안게 됐다. 다른 업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에 한국코인노래연습장협회를 결성해 단체 행동에 나섰다. 그는 "당장 생계가 어려워서 시청에 가서 시위도 하고, 시청과 구청에 민원도 정말 많이 냈다"며 "제가 시위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회상했다.

50일 만에 문을 열었지만, 갑작스레 받아든 '10대 방역 수칙'은 치명적이었다. 박씨는 "다른 건 다 지킬 수 있는데, 손님이 사용했던 방은 30분 동안 사용을 금지하라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1,2시간 동안 이용하는 일반 노래방과 달리 코인노래연습장은 500원, 1,000원을 넣고 이용하는 손님이 대다수인데 10분을 쓰고 30분을 닫아야 했다.

그래도 하루하루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루에 5만원을 벌면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손님이 없는 거다. 날이 좋으면 더 많아질 거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다음날 6만원을 벌면 '와, 만원 더 벌었다. 내일은 더 많이 벌겠지'라는 희망을 갖고 장사를 했다.

그러나 지난달 고위험시설로 지정돼 다시 집합금지명령이 내려오자 그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코인노래연습장이 왜 고위험시설인지 이유도 모른 채 문을 닫아야만 했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박씨는 "코인노래연습장에서 여태 확진자가 10명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왜 고위험시설이라는 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며 "바꿀 수 있는 건 바꾸겠다고, 이유를 알려달라고 해도 그 누구도 속시원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너무 답답했다"고 털어놨다.

희망이 무너지긴 다른 업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에는 경기 안양시에서 노래바(노래방)를 운영하던 60대 자매가 생활고에 극단적 선택을 한 일도 있었다. 박씨는 이를 두고 "저도 힘들지만 저보다 더 힘든 분도 많이 있을 텐데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며 "그런 마음을 먹는 사장님들이 더 이상 나오면 안 되고,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데 누군가 또 그런 선택을 할까 봐 너무 겁난다"고 울분을 토했다. 동병상련의 업주들은 서로 응원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한다.

수입 0원인데 지출은 수백만원… 정부 지원금 모자라

얼마 전 폐업 현수막을 내건 코인노래연습장 업주 박진실씨가 10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용식 PD

얼마 전 폐업 현수막을 내건 코인노래연습장 업주 박진실씨가 10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용식 PD

200만원이 넘는 월세에 노래방 반주기기 회사에 내는 인증비,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내는 저작권료, 전기요금 수십만원까지 포함하면 가게 문을 열지 않아도 매달 내야 하는 비용은 400만원에 달했다. 7월 서울시와 서대문구로부터 각각 100만원씩 받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마침 이날 정부가 2차 긴급재난지원금으로 200만원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이 역시 그 동안 지출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박씨는 "장사를 못했으니 한국전력에 전기 요금을 인하해 달라고 했고 반주기기 회사에 인증비를 깎아달라고 했는데 모두 안 된다고만 했다"며 "아무도 저희를 안 도와주는데 정부마저 도와주지 않아 착잡하고 힘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난지원금) 200만원은 당연히 적은 돈이 아니고 감사하다"면서도 "저희가 집합금지명령을 이행하면서 생긴 손해에 비하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업주들은 당장 영업을 재개하더라도 바로 매출이 회복되지 않을 거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그 동안 손해를 모두 지원해달라는 건 아니다.

박씨는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도 희생할 수 있다. 저희가 낸 금액을 다 달라거나 모든 비용을 다 깎아달라는 건 아니다"라며 "그 어디도 희생을 안 하는데 오로지 저희한테만 희생을 하라고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기요금ㆍ임대료 인하 등에 대해 합의를 할 수 있게 정부가 한전, 건물주 등을 불러서 중재라도 해주는 식으로 뭔가 대책을 세워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윤한슬 기자
김용식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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