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최선인가"… 선별도 보편도 아닌 `어정쩡 재난지원금`

입력
2020.09.11 04:30
정치 셈법, 추석 전 지급 쫓겨 당초 '선별 원칙' 무색해져


홍남기(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8차 비상경제회의 합동브리핑에서 긴급 민생경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홍 경제부총리,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뉴스1

`어려운 사람을 더 두껍게 지원하자'는 취지로 조성된 2차 긴급 재난지원금이 당정의 정치 셈법과 추석 전 지급이라는 시간 제약에 쫓겨 이도 저도 아닌 잡탕식 재난지원금이 돼 버렸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재난지원금을 적게 받거나 아예 못 받는 국민은 물론, 많이 받는 계층까지 정부의 불명확한 선별 기준을 선뜻 수긍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당정은 "한정된 예산과 시급성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주장하지만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한 2차 현금 살포" "재난지원금 포퓰리즘"이라는 반론이 적지 않다.

"전국민 통신비 지원"... 산으로 간 재난지원금

10일 정부가 발표한 '긴급 민생ㆍ경제 종합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총 7조8,000억원의 4차 추가경정예산으로 마련한 2차 재난지원금 중 25%에 해당하는 2조원을 `보편적 지원'에 해당하는 전국민 통신비와 초등학교 이하 학부모의 돌봄부담 완화에 쓸 계획이다.

특히 2만원 통신비 지원을 받는 사람(4,640만명)은 전체 인구의 90%에 달한다. 532만명에 달하는 만12세 이하 어린이가 있는 가구도 2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선별 없이 받을 수 있다. 사실상 대다수 국민이 `넓고 얕게' 2차 재난지원금 수혜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당장 지원 효과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통신비를 지원 받는 사람에 대기업 오너 같은 초고소득자도 포함되는 데다, 1인당 2만원이라는 일회성 지급으로 `피해지원'이라는 재난지원금 원래 취지가 얼마나 달성될지 미지수여서다.

2차 재난지원금 조성을 위한 4차 추경 편성에 찬성했던 야권조차 통신비 지원 항목은 국회 통과에 협조할 수 없다는 의사를 잇따라 밝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재인 포퓰리즘 넘어서 이낙연 포퓰리즘"이라고 날을 세웠고,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두꺼워야 할 자영업자 지원은 너무 얇고, 여론무마용 통신비 지원은 너무 얄팍하다"고 정부 여당을 비판했다.

아동돌봄 수당도 소득 수준에 따른 선별작업을 거치지 않으면서 더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갈 재원이 허투루 쓰인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정부 방침대로라면 소득 기준 상위 10%인 초등학생 2명의 4인 가구는 통신비와 아동 돌봄비를 합해 44만원의 재난지원금을 받는데, 소득 하위 50% 계층의 자녀 없는 맞벌이 2인 가구는 4만원이 전부"라며 "이게 어떻게 선별 지원이라고 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선별 작업도 엉성... 소상공인, 특고 노동자도 불만

정부가 나름 선별 작업을 거쳐 집중 지원하겠다는 소상공인과 특수고용노동자(특고), 청년 실업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이후 매출이 감소한 연간 매출액 4억원 이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100만원씩의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업종에 따라 매출 감소폭이 크게 다른 상황에서 시간에 쫓겨 획일적인 컷오프 기준을 세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령 요식업이나 여행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은 올 들어 매출이 10분의 1로 줄어 폐업 위기에 몰리더라도 지난해 매출이 연간 4억원이 넘으면 별도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가게 문을 아예 못 연 노래연습장, PC 방 등에는 200만원의 경영안정자금을 주면서 똑같이 방역지침을 준수한 유흥주점, 무도장 등은 국민정서를 이유로 지원대상에서 배제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또 미취업 청년 20만명에게 50만원씩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명확한 선별 기준을 제시하지 못해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7월 이후 프리랜서 일을 시작해 벌이가 거의 없는 특고 노동자들은 8월 이후 소득 감소를 증명하기 쉽지 않아 지원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도 높다.

"정치 셈법에 선별 원칙 퇴색"

선별지원 원칙을 내세운 2차 재난지원금이 이도 저도 아닌 잡탕식 재난지원금이 된 것은 여권의 정치 셈법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강하다.

통신비 지원의 경우, 종래에는 청년층과 노인층만 지원하려다 여당의 핵심지지층인 30~50대의 반발 우려가 커지면서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됐다. 초등학교 학부모 연령이 30~40대에 집중돼 있어, 아동 돌봄지원 대상도 기존 미취학 아동에서 초등학생으로 넓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충분한 검토 없이 "추석 전 지급"을 공표한 것도 엉성한 선별 기준이 만들어진 배경으로 거론된다. 정부도 처음에는 매출 감소 등에 따라 정밀한 선별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추석 전 지급이 사실상 공식화되면서 시간이 걸리는 선별작업은 취소하거나 대폭 축소하게 됐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편지원이 아님을 누차 강조했다면 맞춤형 선별지원이라도 제대로 했어야 했다"며 "정부가 1차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신념만 가지고 무모하게 선별이 더 맞다고 목소리를 높인 결과"라고 비판했다.

세종= 민재용 기자
한국일보 뉴스 네이버 채널 구독하기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