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동상 뚝딱, 외화벌이 막힌 북한에 '숨통'

입력
2020.09.09 16: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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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 불구, 허술한 현지 감시망 악용
10년간 1900억 획득... 핵개발 전용 우려

북한이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 건립한 대형 동상 '아프리카 르네상스'의 공사 당시 모습. 세네갈=로이터 연합뉴스

북한이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 건립한 대형 동상 '아프리카 르네상스'의 공사 당시 모습. 세네갈=로이터 연합뉴스

유엔과 미국의 고강도 제재로 외화벌이 창구가 사실상 막힌 북한이 아프리카에서 ‘동상 건립’을 통해 상당한 수입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저렴한 수주 가격을 앞세워 상대적으로 감시망이 느슨한 아프리카에서 불법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수억달러로 추정되는 조형물 제작 대금은 핵ㆍ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아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소리(VOA)방송은 9일 아프리카 곳곳에서 북한이 동상을 세우고 있는 정황이 잇따라 포착됐다고 전했다. 서아프리카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 세워진 52m 높이의 ‘아프리카 르네상스’ 동상이 대표적이다. 이 동상은 북한 최대 예술 창작 단체인 만수대창작사의 해외 법인 ‘만수대 해외프로젝트(MOP)’가 제작 전 과정을 담당했다. 이 뿐이 아니다. 아프리카 내 불법 활동을 전문적으로 추적하는 미 민간조사 단체 ‘센트리’는 최근 북한이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서도 동상 건설을 완료했다고 증언했다. 나미비아와 앙골라에서도 북한이 제작한 동상과 기념비, 조각상이 전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VOA는 앞서 7일 북한이 베냉에 약 30m 높이의 여군 동상을 건립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1959년 설립된 만수대창작사는 동상, 건축물 등 각종 예술품을 수출해 최근 10년간 1억6,000만달러(1,900억원) 이상의 외화를 획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만수대창작사의 외화벌이 활동은 명백한 불법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동상 수출 대금이 핵ㆍ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흘러갔다고 보고 2016년 결의 2321호를 채택해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제재 수위가 높아지면서 북한은 우회로를 택했다. VOA는 북한이 세네갈과 민주콩고에서 ‘콩고 아콘데’라는 이름의 새 법인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베냉 동상 역시 만수대창작사가 중국 유령 업체 이름으로 건설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이 아프리카 현지의 취약한 금융체계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 보수성향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이 3일 개최한 화상 세미나에서 존 델오소 센트리 선임연구원은 “강도 높은 제재에도 북한은 여전히 국제 금융망에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합동군사연구소(RUSI)의 비확산 금융 전문가 달랴 돌지코바도 “제작이나 식당 운영 등과 같은 제재 회피 활동은 현지에서 위법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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