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본능

입력
2020.09.08 18:00
수정
2020.09.08 18: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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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캐나다두루미는 미국 텍사스주나 멕시코에서 머물다 고향인 캐나다나 알래스카로 매년 되돌아온다.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캐나다두루미는 미국 텍사스주나 멕시코에서 머물다 고향인 캐나다나 알래스카로 매년 되돌아온다.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고향을 그리워하고, 되돌아가려는 귀소본능은 수많은 동물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현대의 시튼’으로 불리는 동물학자이자 생태 철학자인 베른트 하인리히(80)의 책 ‘귀소본능’(2017 더숲)은 알래스카에서 호주까지 1만여㎞를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잠도 안 자면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비행하는 큰뒷부리도요가 고향에 도착하면 체중이 절반 가까이 줄어 든다는 얘기부터, 태양을 나침반으로 이용하는 개미, 은하수를 이루는 별 무리를 이정표로 삼는 애기뿔소똥구리, 냄새를 통해 정확히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오는 연어 등 놀라운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 하인리히는 귀소본능을 ‘생존과 번식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 이동하고, 그렇게 찾아 낸 곳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만들고, 떠나갔던 보금자리를 찾아 되돌아오는 능력’이라고 정의하며, 동물의 수억 년 진화과정 동안 변함없는 원초적 본능이라고 결론짓는다. 귀소본능은 ‘장소’ ‘보금자리’ ‘되돌아가기’로 구성된다. 어린 시절의 안락함을 상징하는 고향의 옛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에서 인간 역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 정부가 3주 앞으로 다가온 추석을 앞두고 가급적 고향 방문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 5월과 8월 연휴 이후 코로나19가 확산했던 것을 고려할 때, 대규모 귀성객이 코로나19 확산 경로가 될 것이란 정부의 우려는 타당하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올해 추석에 ‘여행과 외출을 삼가고 집에 있을 것’이란 응답이 31%로, ‘부모님 댁만 다녀올 것’(29%) 보다 많았다. 코로나19가 그토록 강력한 ‘귀소본능’마저 억누르는 모양이다. 올 추석이 최초의 ‘언택트 추석’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고향집’이 반드시 특정한 지리적 장소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청어나 메뚜기에게는 끊임없이 이동하는 무리가 고향이다. 급격한 도시화를 겪은 우리 사회에서 어린 시절 기억을 불러일으킬 오랜 고향 골목을 가진 행운아는 많지 않다. 처음 경험할 ‘언택트 추석’도 가족 간 따뜻한 유대감 속에서 사랑과 위로를 나눌 수 있다면 귀소본능의 많은 부분이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명절도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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