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요즘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돈을 쓸까? 우리나라 소비시장에서 발견되는 주요 트렌드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향후 기업과 시장에 가져올 변화 방향을 예측해본다.
“콘도 회원권을 소유하고 여행과 운동을 좋아하는 32세 전문직 여성.”
운동복의 샤넬이라 불리는 캐나다의 요가복 ‘룰루레몬’이 신제품과 매장 콘셉트를 정할 때 염두에 두는 타깃 고객을 묘사한 것이다. ‘32세’란 단어가 유난히 눈에 띈다. 어째서 33세나 31세는 안 되는 것일까? ‘30대 초반’이라 표현한다면 더 큰 시장을 포괄할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 사업가의 꿈은 우리 회사 제품과 서비스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베스트셀러 상품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소비자 모두가 우리 제품을 하나씩 구매해 준다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일견 합리적으로 들리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과거의 성공방식이다. 요즘은 누구나 좋아할 만한 모범생 상품보다는 “누가 저런 것을 사지?”의 의문이 드는 제품만이 살아남는 ‘특화생존’이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분명 과거에는 무난한 제품이 인기가 많았다. 이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구매한 제품을 따라 사야 실패가 적었다. 소비자가 생산자에 비해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반면 요즘은 소비자가 찾아볼 수 있는 정보가 여기저기 흘러넘친다. 제품과 서비스도 상향 표준화되어 가성비 제품, 가심비 제품 등 시장에는 이미 없는 것이 없다. 이런 때에는 평범한 제품보다 나에게 꼭 맞는 제품이 더 멋지게 보인다. 30대 초반을 타깃으로 하는 요가복이 아니라, 32세를 타깃으로 하는 요가복에 지갑이 열리는 이유다.
특화는 대체로 차별화와 구분 없이 혼용된다. 차별화는 ‘경쟁사’를 의식해 타사보다 더 잘하기 위한 전략이다. 가전 시장의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TV를 놓고 서로 경쟁하며 더 우수한 기술을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차별화다. 특화는 '소비자의 미충족 니즈‘에 초점을 맞춘다.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이 부족한지 이런 디테일에 집중한다. 예컨대, 한국 쓰리엠이 출시한 '펫 전용 테이프클리너'는 특화를 기반으로 탄생한 제품이다. 사람들이 바닥을 청소하거나 옷의 먼지를 제거할 때 사용하는 테이프는 보통 흰색인데, 반려동물 천만 가구의 시대, 특히 흰색 동물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을 바탕으로 짙은 회색의 특화 제품을 선보였다.
과거 표준화 시대에는 여러모로 대기업에 유리한 점이 많았다. 동질의 퀄리티가 보장되는 상품을 제공하는 것은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특화 시대에는 작고 유연한 개인 사업가가 더 유리한 면이 있다. 제과점을 운영한다고 가정했을 때, 작은 가게는 유행에 맞춰 새로운 메뉴를 한 번 출시해 보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쉽게 수정해 나간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경우라면 본사에서 다양한 실험을 거쳐 신제품을 개발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특화 트렌드는 비단 신제품 개발만이 아니라 조직구성, 의사결정과정 등 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요즘처럼 불확실한 것만이 확실한 시대에, 우리 제품에 관심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불특정 다수보다 소수더라도 확실한 작은 시장에 올인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니치(niche)한 것이 리치(rich)한 것이 된다. 좁혀라. 줄여라. 날을 세워라. 특화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특화생존은 격화되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업경영의 새로운 처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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