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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호퍼의 그림 속에서 보는 ‘사회적 거리 두기’

입력
2020.08.27 14:13
수정
2020.08.27 17:47
25면


- 현대인의 고립과 외로움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

에드워드 호퍼, '아침 해 Morning Sun', 1952, 캔버스에 유채, 71.5 x 101.98 cm, 콜럼버스 미술관, 오하이오(출처: WikiArt)

에드워드 호퍼, '아침 해 Morning Sun', 1952, 캔버스에 유채, 71.5 x 101.98 cm, 콜럼버스 미술관, 오하이오(출처: WikiArt)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가 발령되고 3단계까지 고려하고 있는 지금, 사람들은 각자의 집에 머물며 타인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고 있고 도시의 길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화함에 따라 고립, 외로움,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과 유사한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가 있다.

20세기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이다. 호퍼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며, 그의 작품 일부가 1,000억 원이 넘는 고가로 팔릴 정도로 대중적, 예술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는 리얼리즘 화가로 분류되지만, 단순히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텅 빈 도시 풍경과 고립된 인물을 통해 독특한 심리학적 분위기를 창출했다.

위 작품 '아침 해' 속에는 팔과 허벅지를 드러내는 핑크색 슬립을 입은 여성이 침대에 홀로 앉아 무표정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창을 통해 거리 일부를 엿볼 수 있는데, 여자는 번화한 도시의 한복판에 있지만 고립된 것 같이 보인다. 칙칙한 색으로 칠해진 벽면과 강한 햇빛은 방에서 느껴지는 고요함과 고독을 더욱 고조시킨다. 방 안에서 한적한 도시를 내려다보는 여성의 모습은 마치 반년 가까이 모임과 어울림을 멀리하고 사회적으로 서로 격리된 채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호퍼의 그림에는 아침이나 오후 시간의 과도하게 밝은 빛, 혹은 건물 내부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등 항상 강렬한 빛이 등장한다. 빛은 세부 묘사가 생략된 텅 빈 기하학적 공간과 함께 개인의 외로움, 권태, 고립의 분위기를 미묘하게 고조시킨다. 이 그림에서 여성의 팔, 다리, 얼굴 등 온몸을 비추는 환한 아침 햇빛 역시 고요한 방의 외로운 느낌을 한층 북돋운다. 한편, 그녀가 내다보는 도시의 거리는 다음 작품과 같은 모습일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 '일요일 이른 아침 Early Sunday Morning', 1930, 캔버스에 유채, 89.4 x 153 cm, 휘트니 미술관, 뉴욕(출처: Wikipedia)

에드워드 호퍼, '일요일 이른 아침 Early Sunday Morning', 1930, 캔버스에 유채, 89.4 x 153 cm, 휘트니 미술관, 뉴욕(출처: Wikipedia)


위 작품은 일요일 이른 아침 무렵, 뉴욕시 7번가의 소규모 상점들이 들어선 건물을 묘사한다. 건축물은 세부 장식이 생략된 채 수직선과 수평선의 기하학적 구성으로 단순화되어 그려져 있다. 보도 오른쪽에는 빨강, 파랑, 하양 삼색의 원통형 이발소 간판이 서 있고, 왼쪽에는 녹색 소화전이 있다. 그의 그림 속에는 항상 호텔, 주유소, 극장, 주택 실내, 카페, 레스토랑, 사무실, 도로 등 현대 도시의 풍경과 장면들이 등장한다. 호퍼는 도시 풍경을 대도시 특유의 왁자지껄한 소란스러움, 밀집한 군중 대신, 텅 빈 거리, 불 꺼진 상점, 몇 사람 보이지 않는 가게나 극장 등 한적하고 쓸쓸한 모습으로 재현했다. 이 그림도 황량하고 인적이 없는 상점가를 묘사하고 있는데, 대공황 시기의 경제적 불황과 척박한 삶을 상징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한산한 상가와 거리가 코로나19 시대 우리 도시들의 모습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호퍼는 192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 2차 세계대전, 경제 대공황을 거치며 정치,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풍요로운 나라를 이룩한 미국의 대도시 뉴욕의 삶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렸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단지 현대 도시, 혹은 '미국적 장면'을 묘사한 게 아니라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잡아내고 있다. 그가 말했듯이, 그의 그림은 개인적인 “내면의 경험”의 표현, 혹은 예술가의 심리적 초상이었다. 미스터리하고 미묘한 심리적 특성을 가진 인물들과 화면의 독특한 분위기는 추상표현주의가 대세였던 당시 호퍼가 사실주의 화가였음에도 미술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디테일이 생략된,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한 마네킹 같은 호퍼의 인물들은 방이나 풍경 속에 배치된 채 어떤 고립감과 공허함을 보여준다. 이렇듯, 소외감과 외로움을 표현한 그의 그림은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대도시의 군중이 그림 속 인물들 속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호퍼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에 대해 현대 사회의 소외, 외로움을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런 해석이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스스로도 “아마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도시의 외로움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라고 인정했다.

20세기 초 산업화, 대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현대 사회의 특징인 인간 소외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호퍼는 분명 이러한 현상을 예리하게 감지해낸 화가다. 21세기에 와서 인터넷 사회로의 돌입, SNS의 발달로 직접적이고 대면적인 인간관계가 적어지게 되면서 사람들을 더욱 고립시켰고, 요즘은 팬데믹(pandemic)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두기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다중적인 요인에 의한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우리를 제각기 흩어져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섬과 같이 느끼게 한다. 언제 다시 마스크 없이 영화관에서, 야구장에서 서로의 숨과 침을 섞으며 부대낄 수 있는 시간이 올까?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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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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