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존재? 자식만 아는 맘충?'...비뚤어진 모성 신화를 해체하라

입력
2020.08.21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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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목소리를 잃은 주인공 김지영을 통해 육아하는 여성을 향한 혐오적 시선,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을 짚어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목소리를 잃은 주인공 김지영을 통해 육아하는 여성을 향한 혐오적 시선,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을 짚어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는 상반된 두 가지 시선 안에 존재한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숭고한 존재, 또는 내 자식밖에 모르는 무개념 ‘맘충’. 숭배의 대상이든 비난의 대상이든, 어머니는 늘 완벽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자녀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요구받는다. 이것이 가부장제가 규정한 ‘모성’이다.

모성은 때로 인류를 구원하는 힘으로 여겨진다. 죽은 예수를 끌어안고 비탄에 잠긴 성모마리아 피에타상이 그 상징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고통 뒤에 자리한 부당한 세계는 철저히 은폐된다.


숭배와 혐오ㆍ재클린 로즈 지음ㆍ김영아 옮김ㆍ창비 발행ㆍ308쪽ㆍ1만8,000원

숭배와 혐오ㆍ재클린 로즈 지음ㆍ김영아 옮김ㆍ창비 발행ㆍ308쪽ㆍ1만8,000원


영국 런던대 인문학 교수이자 페미니스트 학자인 재클린 로즈가 쓴 ‘숭배와 혐오’는 페미니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홀대받아 온 ‘어머니 연구’에 기반해 모성 신화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어머니를 공인된 잔혹함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세계의 불의에 눈감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머니는 여전히 공적ㆍ정치적 세계에서 배재되고 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현재 21대 국회 여성의원의 비율은 19%에 불과하며, 25~54세 여성 3명 중 1명이 결혼, 임신ㆍ출산, 양육, 가족 돌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다. 이윤만을 쫓는 신자유주의 아래 모성 혐오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모성 신화를 요구하는 사회ㆍ정치적 기제 아래 도사린 무의식적 혐오와 공포를 짚어낸다. “어머니는, 우리 모두가 여자에게서 태어난 인간임을 환기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자족적이며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근대적 믿음을 흔드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는 어머니를 공적 영역에서 지우려 한다.

이 책은 실제 사례, 기사, 문학, 영화, 연극 등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경험으로서의 모성’을 해부하며, 모성의 양가성(사랑이자 잔인함)을 온전히 받아들일 것을 주문한다. 그렇게 모성 신화가 해체될 때, 어머니가 된다는 개인적 경험이 사회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새로운 차원의 모성은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결코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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