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엔 꼭 고기를 먹어야 할까...채식도 보양식이 있다고?

입력
2020.08.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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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식 '채개장', '콩국수'·'들깨칼국수' 등 채식 보양식
비건계 삼계탕 '노루궁뎅이버섯보양탕'…건강한 한끼

2020년 말복인 15일, 삼복의 마지막 날이죠. 복날은 24절기 중 하지와 입추를 기준으로 정해져 매년 날짜가 바뀌는데요. 초복은 하지 후 세 번째 '경일(庚日·천간이 경으로 된 날)', 중복은 하지 후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 후 첫 번째 경일입니다. 보통 말복이 지나면 장마와 함께 무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해지면서 날씨가 좋아지죠.

복날의 '복(伏)'은 엎드리다, 굴복하다 등의 의미가 있는데요. 더운 양기가 강해 찬 음기가 땅으로 나오려다 엎드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가장 더운 시기에 땀을 흘려 허약해질 몸을 우려해 원기보충용 음식을 챙겨먹곤 하죠. '복날'하면 어떤 음식이 떠오르시나요. 수분 충전을 위한 수박, 참외 등 과일도 있지만 십중팔구는 '고기(肉)'일 겁니다.

복날은 어디에서 온 문화일까요, 그리고 그 풍습은 현대에도 유효할까요?

중국에서 유래…더위 이기려 육류 중심으로 영양분 보충

초복인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삼계탕집을 찾은 시민들이 삼계탕을 먹고 있다. 뉴시스

초복인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삼계탕집을 찾은 시민들이 삼계탕을 먹고 있다. 뉴시스

복날은 중국 진·한에서 유래해 한국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진나라의 덕공이 복날을 처음 만들었고, 해충으로 인한 재해를 막기 위해 개를 잡아 제사를 지내며 주술행위를 하고 열독을 다스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해요. 당시 개고기를 신하들에게 나눠줬고, 이런 풍습이 한반도에도 전해져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하죠.

조선시대 때는 삼복에 궁중에서 신하들에게 얼음을 하사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더위로 식욕이 떨어지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육류 중심으로 영양가 높은 음식들을 많이 먹었고요. 당시 양반들은 제철 민어탕을 많이 먹었지만, 서민들은 귀한 민어 대신 개고기를 넣어 끓인 보신탕을 먹는 것이 보편적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복날의 대표주자로는 주로 닭 한마리와 찹쌀, 인삼과 대추, 황기 등 갖은 한약재를 함께 끓인 뽀얀 삼계탕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 또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던 닭을 많이 먹어왔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는 이밖에 육개장, 흑염소 등 고기를 넣은 음식부터 추어탕, 장어구이, 용봉탕, 전복탕 등 다양한 보양식을 먹고 있죠.

현대는 비만·당뇨 만연한 '영양과잉'…고열량 음식 오히려 독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아무래도 냉방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더위를 극복하는 일이 쉽지 않았겠죠. 현대에는 많은 가정이 에어컨을 갖추면서 더운 날씨로 면역력이 떨어지는 일은 많이 줄었다고 해요. 먹을 것이 많지 않아 영양 부족이 일상이었던 과거에는 복날에 흔히 먹을 수 없던 육식 보양식을 맛보는 것이 특별한 행사였을 법 합니다.

하지만 요즘 오히려 육식 위주의 식탁에 영양 과잉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죠. 현대인들에게는 복날에 1,000㎉에 육박하는 고열량, 고지방 음식인 삼계탕을 챙겨먹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건데요. '비건세상을 위한 시민모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육류를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좋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육식은 고혈압, 당뇨, 암, 심장질환 등 질병의 주범"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신체 균형과 건강을 고려한 '여름나기'의 측면에선 채소를 섭취하는 것이 본래 취지에 더 맞을 듯 한데요. 그래도 보양식 없이 복날을 그냥 지나치기는 조금 아쉬울 수 있죠. 뭔가 몸에 좋은 특별한 음식으로 기력 보충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준비해봤습니다. 복날에 먹을 수 있는 이른바 '채식보양식'입니다.

스님들 보양식 '채개장', 최신 비건 트렌드 '노루궁뎅이버섯보양탕'

불교환경연대와 불교기후행동이 소개한 '채개장' 조리법

불교환경연대와 불교기후행동이 소개한 '채개장' 조리법

먼저 스님들의 복날 보양식 '채개장'이 든든한 한끼가 될 수 있습니다. 채개장은 고사리 등 나물과 두부, 버섯, 파 등을 넣어 얼큰하게 끓인 채식 육개장인데요. 고기가 들어가지 않지만 맛은 육개장과 거의 비슷하다고 합니다. 식이섬유와 비타민이 풍부해 소화와 배변 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춰준다고 하고요.

최근 말복을 맞이해 '말복 채식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불교환경연대와 불교기후행동이 조리법을 소개하며 추천한 보양식이기도 한데요. 이들은 우리의 건강은 물론 "삼림을 파괴하고 짓는 가축 농장·사료 재배지와 가축이 내뿜는 메탄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며 육식을 위한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비건 팝업식당 '제로비건'에서 선보인 '노루궁뎅이버섯보양탕'. 트위터 계정(@__d****) 캡처

비건 팝업식당 '제로비건'에서 선보인 '노루궁뎅이버섯보양탕'. 트위터 계정(@__d****) 캡처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최근 '비건 버전 삼계탕'이라고도 불리는 '노루궁뎅이버섯보양탕'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한 비건 팝업식당이 한시적으로 선보인 메뉴로 몸에 좋은 한방재료와 노루궁뎅이버섯을 이용해 끓인 음식입니다. 이후 이를 따라 만들어 먹는 이들이 늘었죠. 식이섬유 외에도 베타글루칸, 나이신 등이 풍부한 노루궁뎅이버섯은 면역기능 증대와 만성 장염 등 소화기계 질병을 낫게 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해요.

그외 식물성 단백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콩을 이용한 '콩국수'도 건강에 좋은 별미입니다. 콩을 두고는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도 하는데요. 구성 아미노산도 육류에 비해 손색이 없는데다 각종 비타민, 칼슘과 칼륨 등 무기질에 사포닌·이소플라본·레시틴 등 생리활성물질이 항산화 작용으로 노화도 막아준다고 해요.

삼계탕과 오리탕, 추어탕 국물에 많이 들어가는 들깨가 그립다면 '들깨칼국수·수제비'도 그 자체로 훌륭한 보양식이 될 수 있습니다. 들깨는 혈관을 깨끗하게 해줘 고혈압·당뇨·심장질환 예방을 도와주고 뇌 기능까지 향상시키는 오메가3가 들어있는 것으로 유명하죠. 기나긴 장마에 지친, 다가올 폭염을 이겨내야 할 우리 몸을 위해 오늘은 현대적 '채식 보양'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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