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폭발 책임' 내각 총사퇴했지만... 총체적 난국 레바논

입력
2020.08.11 22: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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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브 내각 총사퇴로 민심 달래기 나섰지만
종파주의ㆍ?군부세력 등 얽혀 개혁 난망 우려
경제위기ㆍ코로나ㆍ식량난까지 총체적 난국

베이루트 폭발 참사로 분노한 레바논 반정부 시위대가 10일 의회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베이루트=AFP 연합뉴스

베이루트 폭발 참사로 분노한 레바논 반정부 시위대가 10일 의회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베이루트=AFP 연합뉴스


레바논 내각이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 의사를 표명했지만 레바논 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복잡한 정치체계 탓에 차기 내각 구성이 쉽지 않은데다 경제위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식량난 등이 겹치면서 이반된 민심을 돌려세울 묘수도 보이지 않는다.

하산 디아브 총리는 10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베이루트 폭발은 고질적인 부패의 결과"라며 "부패 시스템이 국가보다 컸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내각 총사퇴를 선언했다. 디아브 총리는 일단 차기 내각 구성 때까진 총리직을 유지하겠지만, 지난 1월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의 지지를 받아 출범한 디아브 내각은 정치개혁과 경제위기 극복에 있어 별다른 성과 없이 7개월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문제는 내각이 총사퇴한다고 해서 레바논 정국이 진정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차기 내각 구성을 위한 의회 협상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다종교 국가로 극심한 갈등을 겪어온 레바논은 1989년 협정에 따라 3대 종파인 기독교계 마론파와 이슬람 수니파, 시아파가 각각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을 맡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8년 총선 결과 헤즈볼라가 128석 중 과반을 차지하면서 수니파, 기독교 마론파 등과 대립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사드 하리리 전 총리가 부정부패를 이유로 사임한 후 디아브 내각이 출범하는 데에도 2개월 이상 걸렸다.

더욱이 지금의 레바논 민심은 '새 내각'이 아니라 '정권 교체' 쪽이다. 종파주의 정치 구조를 벗어난 근본적인 정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레바논의 20대 청년은 미 뉴욕타임스(NYT)에 "내각 총사퇴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대통령과 국회의장도 모두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3억달러(약 3,500억원) 원조를 약속한 국제사회도 한 목소리로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미 CNN방송은 "베이루트 폭발 재앙은 근본적인 정치 변화가 절실함을 일깨웠다"고 전했다.

레바논 정부가 베이루트항에 방치돼 있던 질산암모늄의 폭발 위험성을 지난달에 보고받았다는 외신 보도가 쏟아지면서 민심은 더욱 들끓고 있다. 정부의 무능ㆍ무책임이 결국 200여명이 희생되고 6,000여명이 부상당한 참사를 불렀음이 거듭 확인된 셈이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가 최악의 경제위기와 코로나19 사태가 겹친 가운데 일어난 것도 모자라 유엔이 보름 뒤 식량 고갈 사태까지 경고함으로써 레바논 정국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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