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잃고 날개를 얻다

입력
2020.08.10 04:30
앤절라 매드슨 (Angela Madsen, 1960.5.10~2020.6.21)

1993년 하반신 마비 장애인 노숙자였던 앤절라 매드슨은 1998년 로잉에 입문해 장애인 여성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하고 여성 최초로 인도양을 잇따라 건넜다. 그에게 로잉은 다리와 함께 잃은 자유와 해방감을 되찾게 해준 축복이자, 삶 자체였다. 그 기적같은 이야기와, 그게 가능했던 사연들을 남기고, 그가 태평양 횡단 도전 끝에 별세했다. Angela madsen 사진, adventureblog.net


# 1993년, 만 33세 캘리포니아 레즈비언 앤절라 매드슨(Angela Irene Madsen)은 장애인 노숙자가 됐다. 수술 도중 신경을 다쳐 하반신이 마비됐고, 4년을 함께 지낸 애인은 자동차와 통장까지 챙겨 떠났다. 월세를 못 내 집에서 쫓겨난 그는 몇 안 남은 소지품을 애너하임 디즈니랜드 사물함에 두고, 27인치 휠체어를 굴려 낮에는 빈 병을 줍고 관광객에게 손을 벌려 배를 채웠고, 밤에는 버스정류장 벤치에서 잠을 잤다. 사는 건지 죽겠다는 건지 스스로도 모르고 지낸 그 두 달여 사이, 해병 헌병으로 여성농구팀 센터로 코트를 누비던 그의 몸무게는 159kg으로 불어났다.

# 2020년 4월 24일, 매드슨은 세계 최대 요트항인 캘리포니아 마리나 델 레이(Marina del Rey)에서 6mX1.8m 파이버글라스 보트에 승선했다. 하와이 와이키키 항까지 태평양 2,389해리(4,424km)를 혼자서, 모터도 돛도 없이 오직 노(Oar)를 저어, 다리 힘 없이 팔과 몸통으로 기듯이 저어 건너기 위해서였다. 70일치 식량과 통신ㆍ간이 담수화 장비 등을 실은 그의 보트 이름은 '로 오브 라이프(Row of Life)'였다.

저 두 삽화 사이와 전후에, 짐작도 상상도 하기 힘든 망망(茫茫)한 세월을 보낸 그가 6월 21일, 기항지를 1,275해리 남겨둔 바다 위에서 혼자 숨졌다. 향년 60세.


이어진 사고…, 하반신 마비

그는 1960년 5월 10일, 오하이오 주 제니아(Xenia)에서, 자동차 딜러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의 2녀 5남의 장녀로 태어났다. 남자 형제들과 어울리며 사내아이들의 거친 놀이(fight and play sports)에 익숙했고, 무척 능하기도 해서 농구나 배구 축구 테니스 할 것 없이 그는 늘 팀 선발 1순위였다. 하지만 그가 가장 좋아한 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암벽 등반이었다. 10대의 그는 애팔래치아의 벼랑에 앉아, 더 아득한 절벽을 타고 오르는 훗날의 자신을 그려보곤 했다고 한다. 그 꿈은 고교 재학 중이던 77년 임신을 해서 딸(Jennifer)을 낳게 되면서, 체육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하려던 희망과 함께 좌절됐다. 이듬해 고교를 졸업했고, '여자가 무슨 군대냐'는 오라비들의 조롱에 보란 듯이 해병에 입대했다. 신장 185cm의 건장한 그는 헌병이 됐고, 나중에 해병 여성 농구팀에 차출돼 센터로 활약했다.

미 해병 헌병으로 복무하던 20대의 앤절라 매드슨. lowoflife.org


81년 어느날 그는 연습경기 도중 중상을 입었다. 쓰러진 그의 등을 점프한 다른 선수가 밟아 척추 디스크 두 개와 좌골신경을 크게 다친 거였다. 10여 시간의 수술과 긴 재활훈련 끝에 다행히 걸을 순 있게 됐지만, 군 생활을 계속할 순 없었다. 제대한 그는 자동차 정비기술을 익혀 취업했다. 그가 커밍아웃한 것도 제대 직후였다.

한 여성과 동거하며 딸을 키우던 92년,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갈비뼈와 다리뼈 골절상을 입었다. 더 치명적인 건 척추 사고 후유증이 악화한 거였다. 그는 이듬해 수술을 받았고, 수술이 잘못돼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됐고, 직장도 집도 연인도 잃고 노숙자가 됐다. 2014년 자서전('Rowing Against the Wind')에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생각했다. 몸무게까지 350파운드로 불어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썼고, 한 에세이에는 "절망과 분노에 자살을 생각했다"고도 썼다.

그렇게 지내던 중 그는 또 지하철 선로에 휠체어와 함께 곤두박질치는 '사고'를 겪는다. 시민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구조돼 그는 가벼운 뇌진탕과 찰과상만 입었다. 그 직후 비로소 '그래 다시 살아보자'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돌진해오는 열차 만큼이나 구체적이었던 찰나의 공포가, 아니 어쩌면 사고가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 위험까지 무릅쓰며 그를 구해준 이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컸을지 모른다. 다 잃었다고 생각한 그에겐 아직 튼튼한 팔과 상체 근육과 남다른 운동신경이 남아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장애인, 특히 장애 군인에게 후한 기회를 베푸는 걸 자랑삼는 나라의 시민이었다.


로잉의 매력에 운명처럼 빠져들다

매드슨은 한 장애 전역군인단체의 도움으로 휠체어 베테랑농구단에 입단했다. 그리곤 95년 미국 베테랑 휠체어 대회(VWG)에선 수영과 슬라럼(slalom), 당구 세 종목서 금메달을 땄다. 98년 그는 농구단 한 후원자의 초대를 받아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남부 데이너 포인트(Dana Point)에서 로잉(Rowing)을 처음 보게 된다. "휠체어 없이 할 수 있고, 보트에 앉는 순간 남들(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움직일 수 있고, 남들도 내가 장애인인 걸 모를 거라는 점 때문에" 그는 그날부터 로잉에 빠져들었다.


로잉은 물결처럼 일정한 리듬에 온몸을 실어야 하는 전신운동이다. 물을 등진 채, 나아갈 길이 아니라 지나온 풍경을 응시하며 기계적으로 몸을 놀려야 하는 그 운동을, 누구는 명상에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했다. 보트 위에서 매드슨도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헤아릴 수 없이 자주 되짚어 보곤 했을 것이다. 다리로 지탱하는 힘 없이 상체와 팔로만 리듬과 균형과 속도를 확보하는 일은 비장애인보다 훨씬 힘들었겠지만, 더 버거워서 더 벅차기도 했을 것다. 그에겐 로잉이 삶 자체였고, 그래서 보트 이름도 'row for life'가 'of life'라 지었을 것이다.

파도에는 계단도 문턱도 없었고, 타인의 시선도 없었다.

물 위에서 그는 자유로웠다. 파도에는 계단도 문턱도 없었고, 바다엔 타인의 시선도 없었다. 두 다리를 잃은 그는 그렇게, 앨버트로스만큼 길고 튼튼한 날개를, 노(Oars)와 패들(Paddle)을 얻었다. 보트 시트는 물론 휠체어보다 비좁고 불편했지만, 휠체어가 장애'가 시작되는 자리였다면 보트 시트는 장애에서 풀려나는 자리였다. 너른 바다가 그에겐 활주로였다. 매드슨은 한밤 칠흑의 바다에 혼자 떠있는 시간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했다. 애팔래치아 벼랑 끝에서 꿈꾸던 세상이 거기 있었다.

그에게 노와 패들은 다리를 대신할 날개이자 지느러미였고, 바다는 세상 어디나 갈 수 있는 광활한 활주로였다. Soraya simi 동영상 캡처. lowoflife.org


2002년 국제로잉연맹(IRF)은 '적응 로잉(adaptive rowing, para-rowing), 즉 장애인 로잉을 월드로잉챔피언십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그해 매드슨은 '상체-팔(TA)' 부문 싱글스컬(혼자 노 두개로 양쪽으로 젓는 경기) 종목에 출전해 은메달을 땄고, 2003~06년 4년 연속 더블스컬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면서 점차 강이나 호수처럼 갇힌 물 위의 레인에서 속도를 겨루는 경기보다 바다에서 하는 장거리 로잉에 빠져들었다. 항구에서 항구로 20~30마일씩 해안을 따라 경주하는 연안로잉(coast rowing)보다 몇 달씩 저어 대양을 건너는 해양로잉(ocean rowing)이 더 좋았다. 거기서부턴 스포츠가 아니라 어드벤처이고, 삶이었다. 세상 어느 '디즈니랜드'도 맛보여줄 수 없는 모험과 도전이 거기 있었다. 2007년 36세의 그는 장애인 여성 최초로 (Franck Festor와 함께) 대서양을 횡단했고, 2009년 역시 여성 최초로 (뉴질랜드인 Helen Taylor와 함께) 인도양을 건넜다. 2010년엔 팀을 이뤄 영국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는 틈틈이, 그는 2008~16년 세 차례 하계 장애인올림픽 미국 대표로 출전해 2012 런던대회에선 투포환으로 동메달을 땄고, 프랑스 비아리츠(Biarritz) 월드서핑 챔피언십에도 유일한 장애인으로 롱보드 종목에 출전했다.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비영리 장애인 로잉학교를 1999년 설립해 운영했고, 2015년 국제서핑협회(ISA) 소속 미국 장애인 서핑팀을 창단했고, 장애인 올림픽 대표단 필드 종목 코치 겸 멘토로도 활약했다. 그리고, 유방암으로 두 차례 유방절제수술을 받았고, 2007년 만난 사회복지사 데브라 묄러(Debra Moeller)와 2013년 결혼도 했다.

그는 대양을 혼자 건너고 싶어했다. 2013년 태평양(캘리포니아-하와이) 단독 횡단에 도전했다가 거센 폭풍우에 얻어맞고 구조된 적이 있었다. 지난 4월 두 번째 도전에 나서며 그는 "나를 다시 출발선상에 설 수 있게 북돋아 준" 아내 데브라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340kg짜리 보트에 식량과 장비를 실으면 0.5톤이 넘는다.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항해를 마치려면 하루 평균 12시간, 매일 약 4,000~5,000 칼로리를 태우며 노를 저어야 한다. 세인트 카탈리나 섬까지 연안 급류를 뚫어야 하는 출항 첫날처럼, 24시간 잠도 안 자고 저어야 하는 날도 있다. 바다는 대개는 단조롭지만 변덕이 나면 로데오 선수를 태운 성난 황소처럼 요동치기 일쑤이고, 더 심한 날은 보트를 통째 '세탁기 속 빨래처럼' 휘저어 버리기도 한다. 배 안에서 부딪치고 자빠지면서 다친 상처는, 특히 의족 결합부의 쓸린 상처는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쉽게 곪는다. 매번 카테터에 요도관을 끼워야 하는 배뇨도 더 성가시고 골치아픈 일이었다. 잘 소독하지 않으면 요도와 방관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고, 심해지면 항해 자체를 중단해야했다.

2009년 인도양 횡단 항해 중인 앤절라 매드슨. Angela Madsen 사진


운동을 다시 시작하며 웃음을 되찾은 매드슨은 염려하는 아내 등 친지에게 "(코로나 19바이러스 때문에) 휠체어 타고 식료품점에 다녀오는 것보다 혼자 바다를 건너는 게 더 안전할 것"이라고 농담했다.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를 건 기자에겐 "내 의자는 따로 준비하지 마세요. 내 건(휠체어) 내가 챙겨 갈거니까"라며 웃기기도 했고, 보트 바닥을 붉게 칠한 이유가 "바다에서 전복돼도 하늘에서 잘 식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 답하기도 했다. 실은 흰색을 칠한 보트를 탔다가 범고래떼에게 사납게 들이 받히는 낭패를 경험한 탓이었다.


사는 게 힘들면 더 힘껏 저을 뿐

매드슨은 항해 일상을 동영상으로 찍어 롱비치의 아내에게 전송했고, 아내는 그 영상들을 걸러 세상에 알리곤 했다. 사고 며칠 전, 데브라는 매드슨에게 사이클론이 다가오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 무렵 매드슨의 보트는 '패러슈트 앵커(parachute anchor)'가 말을 안 듣는 상태였다. 악천후 때 배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주는 장치인 수중 낙하산 형태의 패러슈트 앵커를 고치려면 직접 물에 들어가야 했다. 매드슨은 6월 20일 트위터에 "내일(일요일)은 수영하는 날"이라고 썼다. 그의 마지막 트윗이었다.

다음날 연락이 끊겼다. 위성위치탐지기에 잡힌 배의 움직임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데브라는, 매드슨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기 위해 작업해 온 친구(Soraya Simi)를 통해 미국 해안경비대에 알렸고, 경비대는 6월 22일 항공수색 끝에 보트에 몸을 묶고 물에 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인근을 항해하던 독일 선박이 그의 시신을 파나마로 인양했다. 정확한 사고 경위는 보트까지 수거해서 비디오 등을 판독한 뒤에야 밝혀질 예정이다.

그는 자서전에 "과거로 되돌아가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해도 나는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 모진 고통들을 면할 수 있는 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닐까. 처음엔 나도 화가 잔뜩 났지만, 이제 이미 다 수긍했는걸"이라고 썼다. 2014년 여성아마추어스포츠재단이 수여하는 상을 타는 자리에서 그는 장애를 삶의 힘겨운 닻처럼 여기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며, 자신에게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게 해 준 장애를 축복이었다고도 말했다. 친구였던 시미는 인스타그램에 "언젠가 앤절라에게 '사는 게 힘들 땐(bad days) 어떻게 견디느냐'니까 '더 힘껏 저을 뿐(row harder)'이라 하더라"며 "그는 (언젠가 죽게 된다면) 바다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하다가 죽기를 원했다"고 썼다. 아내 데브라는 화장한 그의 유해를, 해안경비대장(葬)으로 바다에 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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