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견 농장서 구사일생… 병든 노견 울라의 ‘간절한 꿈’

입력
2020.08.01 04:30
아사 직전 구조… 뜬장서 살다 몸 상하고 평생 눈병 
보호소 생활 8년째, 안전하지만 야외산책 아쉬워 
대형견 입양되기 힘들어… “가족과 살아보고 싶어”


2012년 경북 구미의 식용견 농장에서 구조된 도사누렁이 '울라'가 지난달 15일 경기 남양주시의 동물보호센터인 '온센터' 운동장을 거닐고 있다. 울라는 농장에서 사육됐던 개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체리 아이(눈밑 살이 빨갛게 부어 오르는 일종의 눈병)'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 남양주=배우한 기자

내 이름은 ‘울라’다. 나이는 열 살 정도로 추정된다. 이름도 특이한데 나이까지 모호하니, 황당하게 느낄 사람들에게 굴곡진 내 삶의 여정을 들려줘야겠다.

난 경북 구미에 위치한 산속 농가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농가라고 해서 농작물을 키우는 곳은 아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내 고향을 일컬어 흔히 ‘식용견 농장’이라 불렀고, 그때부터 나도 고향을 설명할 때 그냥 ‘농가’라고 부르고 있다.

누구나 삶의 첫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듯, 나도 견생(犬生)의 시작이 어땠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저 철창 안에서 심하다 싶을 정도로 꼬리를 흔들던 기억만 남아있다. 내가 머물렀던 철창은 일반적인 철창과는 구조가 조금 달랐다. 땅바닥에서 30㎝ 정도 떠 있어 ‘뜬장’이라 불렸다. 가로세로 길이는 1m 내외였다. 내가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이유는 간단했다. 내 대변은 바닥 철창 사이를 통과해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첫 주인이었던 중년 남성이 땅에 쌓인 배설물을 치웠다. 굳이 철창 문을 열지 않아도 변을 치울 수 있는 ‘관리의 편리성’이 내가 그 안에 머물러야 했던 주된 이유였다.

말이 나온 김에 첫 주인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을 해야겠다. 그는 인간들의 표현으로 ‘건강원’이라는 가게 주인이었다. 건강원을 운영하려면 여러 마리의 개들이 필요한 듯 했다. 그래서 고향에는 30여마리의 개들이 나와 함께 머물렀다. 주인이 하는 일은 꽤나 단순했다. 어딘가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와 우리에게 먹이고 바닥에 쌓인 변을 치우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면 몸집이 큰 동료부터 순차적으로 뜬장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주인은 혼잣말로 무슨 날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신 '복날'이라고 중얼거렸다. 답답하고 꽉 막힌 공간을 떠나는 동료를 보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주인을 따라나선 동료는 다시는 무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보다 고향에 오래 머물러온 선배 개들에 따르면 떠난 동료는 ‘개소주’라는 게 됐다고 했다.

다른 농장에 살다가 내 고향으로 팔려온 한 동료는 다른 얘기도 들려줬다. "내가 원래 있던 곳에선 우리가 보는 앞에서 인간들이 동료를 목 매달아 죽이기도 했어. 그리고 삶아서 털을 뽑은 후에 시장이나 음식점에 팔았지."

울라가 태어나고 자란 경북 구미의 한 식용견 사육농장. 2012년 울라를 비롯한 여러 마리의 도사누렁이들은 농장 내 뜬장 안에 갇혀 있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뜬장 생활에 몸 상하고 인간에 배신감 커져

당시 나는 너무 어려서 그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인간이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밥때마다 꼬박꼬박 먹을 것을 주고 있지 않나. 그렇게 인간에 대해 반신반의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차에, '돼지'처럼 변해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1년도 안돼 40㎏ 가까이 불어난 몸집을 수용하기에 뜬장은 턱없이 작았다. 나와 동료들이 매일 먹는 음식물 쓰레기와 하루에도 몇 번씩 배출하는 오물 냄새가 뒤엉켜 코를 찔러대기도 했다. 개의 후각은 인간의 1만배에 달한다. 특히 음식이 금방 부패하는 여름철에는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질식할 정도였다.

몸에도 이상이 생겼다. 하루 종일 뜬장 바닥 철창을 꼭 움켜쥐고 있다 보니 발가락 사이에 염증이 생겼고, 나중에는 발 전체가 퉁퉁 부어 올랐다. 오른쪽 눈 밑의 살도 빨갛게 부어 올랐다. 주인은 이를 ‘체리 아이’라고 불렀다. 개 농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눈병의 일종이라고 한다. 매일 설사를 했고, 관절 마디마디가 쑤셨다. 장기와 뼈가 몸집이 커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고통이 너무 커서 차라리 개소주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배부른 소리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주인이 농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도 누구도 밥을 주지 않았고, 뜬장 바닥에는 대변이 쌓여 딱딱하게 굳어갔다. 안 그래도 들끓던 파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바로 옆 뜬장에 갇혀있던 동료가 “주인이 건강원 사업을 접겠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알려줬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동료들이 하나 둘 내 눈 앞에서 굶어 죽기 시작했다. 갑자기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다. 음식물 쓰레기라도 좋으니 뭐든지 빨리 먹고 싶었다. 언제 나를 죽일지 모를 주인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꼴이라니. 그런 자신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더욱 비참해졌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동물보호 활동가들이 2012년 울라의 고향인 경북 구미의 한 식용견 사육농장을 찾았을 때 굶어 죽은 개들의 사체가 여러 구 발견됐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즈음 오랫동안 닫혀있던 농장 문이 열렸다. 주인이 돌아왔다는 생각에 사정없이 꼬리를 흔들어댔다. 그런데 발자국 소리가 주인의 것과 달랐다. 심지어 한 명이 아니었다. 수십 개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고, 그들은 나와 내 동료들에게 물과 ‘사료’라는 음식을 줬다. 굶주림에 지친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의심할 여유조차 없었다. 게걸스럽게 사료를 먹어 치웠다.

급한 허기를 달래자 불현듯 공포가 엄습해왔다. 그때까지 내가 알던 인간은 주인 한 명뿐이었고, 그는 물과 먹을 것을 준 뒤 내 동료들을 소주로 만들었다. 당연히 새롭게 나타난 인간들도 언젠간 나를 죽일 거라고 짐작했다. 아니다 다를까. 그들은 나와 동료들을 뜬장에서 꺼내려 했다. 동료 중 한 녀석은 격렬히 반항했고, 누군가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끌려나갔다. 나는 뜬장 구석에 얼어붙은 채 온 몸을 벌벌 떨어댔다. 그렇게 그들의 손에 이끌려 뜬장을 나섰다. 농장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구조 후 위협 사라졌지만 무료한 일상

그날 이후로 현재까지 나는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반려동물 복지센터에서 살고 있다. 동물자유연대가 운영하는 ‘온센터’라는 곳이란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울라’라는 이름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이름이었다. 치아를 검사해 내 나이가 대략 두 살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굳이 대략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내가 뜬장 철망을 자주 물어뜯어서 치아가 마모돼,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난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제2의 견생(犬生)을 살고 있다.

내가 농장을 떠난 시기가 인간들의 계산법으로 2012년 5월이라고 하니, 이곳 생활도 만 8년이 넘은 셈이다. 그간의 생활은 안락함과 무료함이 공존하는 일상이었다. 오전 9시 온센터 직원들이 출근해 두 평 남짓한 방을 청소해주는 동안 나는 방 앞에 딸린 작은 마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그러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센터 중앙에 위치한 큰 운동장으로 나가서 30분간 운동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 낮잠을 자며 쉰다. 오후 5시쯤 저녁을 먹고 오후 6시 다시 방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반복된다. 이곳에 머무는 개들에 비해 보호자들의 숫자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봉사자들이 많이 오는 날이 아니면 야외산책은 할 수 없다. 식용농장에서 구조된 것은 천운이지만, 자연에서 뛰놀고 싶은 본능을 억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나마 나는 고향에서 함께 구조된 ‘초코’와 한 방을 쓰는 덕분에 다른 개들에 비해 덜 심심한 편이다.

현재 울라가 살고 있는 경기 남양주시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전경. 200여마리의 개들은 각자의 방과 마당에서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다 차례차례 중앙에 위치한 큰 운동장으로 나가 짧은 운동을 한다. 남양주=배우한 기자

당시 나와 함께 구조된 동료는 모두 22마리였다. 고향에는 원래 30여마리의 개가 있었는데, 그 중 일부는 굶어 죽었고 일부는 구조 예정소식을 전해 들은 옛 주인이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 어딘가로 빼돌렸다고 한다. 구조된 22마리 중 4마리가 온센터에 남았다. 나머지는 각기 다른 가정에 입양됐다. 그렇게 많은 수의 대형견이 동시에 입양되는 건 기적이라고 한다. 당시 인간들의 TV 프로그램에 우리 사연이 소개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몸집이 큰 대다수의 개들은 인간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어서 나처럼 보호센터에서 여생을 보낸다. 현재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개는 200마리가 넘는다.

대형견 대부분 해외로 입양

그래서인지 작년 여름 온센터에 들어왔던 곰순이(3세 추정)라는 친구가 무척이나 부럽다. 곰순이는 경기 양주시에 있는 ‘웰컴독코리아’라는 단체의 도움을 받아 올해 6월 캐나다 가정으로 입양이 확정됐다. 곰순이는 조만간 새로운 가족들을 만나 하루에도 몇 번씩 야외에서 뛰어다닐 수 있을 듯하다.

온센터 직원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곰순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외 입양을 준비해왔다. 올해 2월 경기 파주시에 있는 ‘웰컴 포즈’라는 훈련소에 입학해 4개월 정도 사회적응 훈련을 받았다. 구조된 개들은 사회화가 돼있지 않아서, 인간이 사는 집에서 생활하려면 대인ㆍ대견 훈련을 받아야 한다.

곰순이도 처음 온센터에 왔을 때에는 성인 남성을 향해 으르렁거렸고, 누군가 몸을 쓰다듬으려 접근하면 경직된 상태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소음이 들리면 구석으로 재빨리 도망갔고, 물 그릇이 바뀌면 물을 못 먹을 정도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하던 친구였다. 그랬던 곰순이가 이제는 발톱을 깎을 때도 얌전히 있고, 계단 오르내리기나 차 타고 내리기에도 능숙해졌다고 한다. 참 대견하다.

건네 들은 얘기로는 곰순이와 훈련사들이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한다. 곰순이는 처음 두 달간 훈련사들이 간식놀이와 동반등산을 해준 덕분에 인간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그 후 어떤 행동을 해야 간식을 먹을 수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게 됐고, 그때부터 훈련이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한다.

올해 6월 캐나다 가정으로 입양이 확정된 '곰순이'가 지난달 17일 경기 파주시 도로변에서 훈련사에게 애교를 부리고 있다. 곰순이는 올해 2월 애견 훈련소인 '웰컴 포즈'에 입학해 4개월간 사회적응 훈련을 마쳤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하늘길이 막혀서 아직 새 가정으로 떠나지 못하고 있다. 파주=배우한 기자


그런데 사회적응 훈련이 끝났다고 입양이 손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개들이 탈 수 있는 항공편은 많지 않다. 특히 곰순이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있는 캐나다행 비행기에는 개들이 탈 수 있는 자리가 일주일에 6개밖에 없다고 한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곰순이 같이 큰 개는 혼자 비행기에 타려면 인간들이 쓰는 돈으로 200만원이 넘게 필요하다.

그래서 이동 봉사자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외국에 나가는 사람이 개를 함께 데리고 가면 20만~30만원밖에 안 들기 때문이다. 이동 봉사자에게 딱히 힘들 일도 없다. 입양을 도와주는 기관 직원들이 검역과 수속 등을 전부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현지에 도착한 후에 이동 봉사자는 대형수하물이 나오는 곳에서 개를 만난 후 픽업 봉사자에게 전달해주기만 하면 된다.

꿈에 부풀어 있던 곰순이는 최근 난관에 부딪혔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하늘길이 막혀 버려서, 입양이 확정된 후에도 벌써 한 달 넘게 대기 중이다. 이처럼 식용견 출신의 삶이란 이래저래 고난의 연속이다. 그래도 곰순이는 먼 길을 떠날 채비를 마쳐 홀가분할 것이다. 하늘길이 다시 열리면 더 넓은 곳으로 날아가 새로운 식구들과 행복한 여생을 보내길 바란다. 보호센터의 작은 방 안에서 한 마리의 노견이 진심으로 기원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10여년간 내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다.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내 삶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다 지난 이야기지만, 뜬장 생활을 생각하면 내 삶이 너무 억울해 미칠 것 같은 시절도 있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이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의 품에서 단 하루라도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다. 덧붙이자면 한국 가정들도 외국에서처럼 대형견을 많이 입양했으면 좋겠다. 젊은 개들이 더 이상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살 날이 몇 년 남지 않은 노견의 마지막 소망이다.

# 이 기사는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개의 관점에서 재구성해 작성했습니다.


개고기 합법? 불법? 현행법이 논란 가중

초복인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 동물자유연대,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등 14개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이 모였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국회는 개식용 금지를 위해 개를 가축에서 제외하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활동가와 시민 20여명은 차량을 타고 서강대교, 여의도 등 서울시내를 돌며 ‘개 식용 금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올해 6월 경기 김포시의 식용견 농장 뜰창 안에 개들이 갇혀 있는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본보 기자가 초복을 이틀 앞둔 지난달 14일 위 사진에 나온 농장을 찾아갔을 때 개들은 이미 어딘가로 사라졌다. 김포=배우한 기자


동물보호단체의 이 같은 움직임은 여름철 복날을 전후해 벌이는 연례행사에 가깝다. 개 식용 논란이 그만큼 한국에선 깔끔히 정리되지 않은 해묵은 이슈라는 의미다. 종지부를 찍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현행법상 모호한 개의 지위(?) 탓이다.

개는 축산법상 가축으로 분류된다. 개농장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현재도 전국 각지에 개 사육시설이 산재해있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전국엔 2,565개의 개 사육시설이 존재하고, 사육 중인 개는 70만7,160마리로 집계됐다. 그러나 미신고된 소규모 농장을 감안하면 전국에 최소 1만개가 넘는 개농장이 존재할 것으로 동물보호단체는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축산법과 달리 축산물위생관리법상에서 개는 가축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해당 법은 소, 말, 양, 돼지, 닭, 오리, 사슴 등 13개 동물만을 가축으로 못박았다. 개가 가축에서 제외된 이유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혐오감이나 반감을 부를 수 있는 동물은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이 지점에서 개 식용의 합법성을 둘러싼 공방이 시작된다. 축산물위생관리법에는 가축의 도살과 가공ㆍ포장ㆍ보관은 허가를 받은 작업장에서만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개는 가축에 포함돼 있지 않아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축산물위생관리법과 축산법이 충돌하면서 개 도살이 합법도 불법도 아닌 모호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처럼 개 도살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처벌이 어려운 탓에 동물보호단체는 ‘판매’의 위법성을 주장하고 있다. 식품위생법은 식품의 원료가 될 수 있는 동물을 나열하고 있는데, 현재 개는 식품원료에 포함돼있지 않다. 동물보호단체는 이를 근거로 음식점에서 개고기를 판매하는 행위 자체가 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미진 동물자유연대 선임활동가는 “관련 법을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정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이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식약처 관계자는 “오랜 기간 개고기를 먹어온 한국사회의 특성상 개 도살과 개고기 판매금지는 법의 관점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물보호 활동가들은 결국 개의 모호한 법적 지위를 해소해야 해마다 반복되는 논란을 종결 지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현지 카라 정책팀장은 “개는 축산물위생관리법상 가축에 포함되지 않는 데도 (개를 가축으로 분류한) 축산법 탓에 많은 사람들이 개를 ‘먹어도 되는 축산물’로 오해한다”며 “축산법에서 개를 제외해 개 식용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양주ㆍ파주=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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