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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CIA는 왜 이렇게 이름이 자주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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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CIA'(미국 중앙정보국)인 국가정보원이 21년 만에 이름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뀝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 국정원은 30일 국회에서 고위 당정청 협의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는데, 박지원 신임 국정원장의 첫번째 작품은 조직의 이름 바꾸기가 됐습니다.
국정원 개명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얘기되던 사안입니다. 2017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변경을 시도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실패했죠. 21대 국회가 되면서 다시 추진하게 된 건데, 정부 출범 3년 만에 결실을 맺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관련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지만, 176석 거대여당이란 현 국회 지형을 고려하면 법안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바뀐다면 국정원은 여섯 번째 이름을 갖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는 왜 이름을 바꾸려 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무게가 실리는 것은 과거 군사정부 때 민주화 세력에 대한 탄압은 물론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정치 개입 조직'이란 오명을 썼던 조직의 이미지를 바꿔보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죠.
정권 때마다 불거졌던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논란을 종식시키려는 의지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 국정원은 어땠길래, 왜 이렇게 이름을 자주 바꿔야 하는 운명이 됐을까요.
국정원의 과거 이름을 보면 '국가', '중앙'이란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그 만큼 정부 핵심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걸 알 수 있죠. 군사정권에서 탄생했기에 국민 인권보다 정부의 안위를 중시하는 서슬퍼런 권력기관이란 이미지도 강했습니다.
국정원의 모태는 '중앙정보부'입니다. 정부조직으로 정식 출범하게 된 건 1961년인데요. 하지만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정권부터 국내 정보기관은 존재해 왔습니다. 1959년에는 '국방부 79호실'로 불렸는데요. 이는 정보기관 책임자였던 이후락 준장의 군번 '10079'에서 따온 겁니다.
국방부 79호실의 탄생은 미국 CIA와 관련이 있는데요. 당시 CIA는 자신들과 정보를 교환 할 기관이 필요했고, 서둘러 '중앙정보부'를 조직하게 됩니다. 다만 이름은 이 준장의 제안으로 79호실로 바뀌는데요. 책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1959년 1월 국방부 장관 직속으로 중정부가 창설됐는데, 이는 CIA 한국지부의 파트너가 돼 대외적으로는 79호실이란 위장 명칭으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79호실은 1960년 정권이 바뀌면서 해체됐고, 장면 정부는 정보기관으로 '중앙정보연구위원회'를 새롭게 만듭니다. 수장은 79호실에 이어 이 준장이 맡습니다. 하지만 중앙정보연구위원회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몇달 뒤 5ㆍ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면서 해체됐기 때문이죠.
이후 1961년 박정희 정권에서 정부조직 관련 법에 따른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가 군특무대와 경찰 사찰대를 통합해 탄생하게 됩니다. 국가재건최고위원회는 같은 해 6월 11일 중앙정보부법을 공포하고 중정부를 설치합니다. 이승만 정권 때 첫 정보기관 이름인 중앙정보부와 같지만, 초대 중정부장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당시 중정부와 관련이 없다고 했었죠. 당시 중정부는 미 CIA를 본떠 만든 것으로, 영어 이름도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였습니다. 1963년에는 미 CIA처럼 순수 정보활동 기구로 조직을 개편하게 됩니다. 수사지휘권을 대검찰청 산하 중앙수사국으로 넘기고 순수한 정보기관의 역할을 하면서 대공수사를 담당하게 됩니다.
군사 쿠데타로 출범하게 된 중앙정보부는 얄궂게도 쿠데타로 명칭이 바뀝니다. 1980년 12ㆍ12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부는 중정부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바꿉니다. 정부는 같은 해 12월 22일 중앙정보부법 개정안을 마련해 안기부를 정보업무에 중점을 두는 기구로 개편합니다. 정보ㆍ보안업무의 조정ㆍ감독 기능을 기획ㆍ조정 기능으로 바꿔 권한도 강화했습니다. 영문 명칭도 CIA에서 'NSP'(Agency for National Security Planning)으로 변경됐죠.
안기부는 전두환ㆍ노태우 등 군사 정부 시절은 물론 김영삼 정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돼 왔습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로 민주진영이 정권을 잡게 되면서 1998년 명칭 변경이 논의됩니다. 정부 권력 유지를 위해 정치에 개입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기구가 아닌 '정치적 중립성'이 담보된 '진짜 정보기관'으로 환골탈태하려는 조치였죠.
당시 정부는 개편 논의를 마친 뒤 1999년부터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합니다. 산업 스파이 수사 등 새로운 기능이 부여된 국정원은 1999년 1월 22일 정식 출범하게 됐습니다.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개명과 함께 인터넷 홈페이지도 개설했습니다. 열린 정보기관, 국민과 함게 하는 정보기관의 이미지를 주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국정원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중립성이었습니다. 정권에 따라 흔들리거나 특정 세력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 돼선 안 된다는 본인의 철학 때문이었죠.
김 전 대통령은 과거 군사정부 시절 정보기관으로부터 모진 고문과 정치적 탄압을 받은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안기부는 이에 김 전 대통령에게 "국가보안법 상 찬양ㆍ고무죄와 불고지죄 등에 대해선 단서 포착 때까지만 수사하고 경찰에 이첩해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김대중이 만든 정보기관'이란 점을 지우라고 지시한 일화도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안기부 개편 논의가 한창이던 1998년 5월 12일 서울 내곡동 안기부 청사를 방문합니다. 직원들로부터 '정치적 중립을 중시하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란 사명감으로 일하겠다는 다짐을 받기 위해서였죠.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정보는 국력이다'라고 적힌 친필 원훈석을 제막했는데요. 원훈석을 천천히 둘러보던 김 전 대통령은 뒷 면에 쓰여진 '대통령 김대중'이란 글귀를 발견합니다. 이를 본 뒤 당시 이종찬 안기부장에게 "정치적 중립을 지켜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정원과 원훈이 남아야 한다"며 자신의 이름 삭제를 지시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간부들에게 업무 보고를 받으면서 "대통령으로서 부탁한다. 안기부는 완전중립이며 김대중 정부, 또는 여당을 위해 일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박지원 국정원'은 명칭 변경뿐 아니라 개혁 방안도 발표했는데요. 대공수사권과 국내 정보 활동을 없애고 경찰로 이관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를 아예 법에 명시하기로 했습니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국회 정보위원회와 감사원의 외부적 통제를 강화하고, 감찰실장 직위를 외부에 개방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국정원 직원이 정치에 간여했을 경우 형사 처벌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국정원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내용들이 모두 바뀌게 되는 건데요.
형식(이름)과 내용 모두 바뀐 이후 국민들한테 인정 받는 새로운 정보기관의 모습으로 거듭날지 국정원의 변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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