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조장국가, 대한민국

입력
2020.07.30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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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성추행 수사 비협조로 국가 망신
성범죄보다 방조하는 문화가 근본 문제
선량한 침묵이 성차별 구조 유지시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 연방 하원의원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 의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공화당 남성 의원이 욕설을 한 데 대해 "일회적 사건이 아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지탱하는 문화"라고 말했다. 뉴시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 연방 하원의원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 의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공화당 남성 의원이 욕설을 한 데 대해 "일회적 사건이 아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지탱하는 문화"라고 말했다. 뉴시스

K-방역 성과로 자긍심을 높이던 대한민국이 ‘성범죄 두둔 국가’로 오명을 떨칠 판이다. 외교부가 성추행 외교관에 대한 수사협조를 외면하다 29일 정상 간 통화에서 언급되는 바람에 나라 망신이 됐다. 당시 상관인 주(駐)뉴질랜드 대사와 외교부는 해당 외교관을 경징계하고 타국으로 발령 내 사실상 도피시켰고, 뉴질랜드측 수사협조 요청에는 ‘개인이 결정할 일’이라며 모른 체했다. 오죽했으면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나섰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낯을 붉히지 않았나 모르겠다.

세계 최대 규모 아동 성착취물 플랫폼 운영자 손정우에 대해 한국 법원은 이달 초 미국 송환 요구를 거절했다. 한국 판사들은 6개월 영아까지 성착취 피해자로 만든 반인륜적 흉악범을 고작 징역 1년6개월로 처벌해 놓고, 한국 경찰이 할 생각도 없는 ‘성범죄 추가 수사’를 이유로, 범죄인 인도마저 불허했다. 미 법무부는 성명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아동 성착취 범죄자 중 한 명에 대한 인도 거부에 실망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도 갈수록 난맥상이다. 피해자는 시 공무원들에게 20차례나 호소했지만 “예뻐서 그랬겠지”라는 식으로 묵살당했다 한다. 이쯤 되면 유력 정치인의 성비위를 넘어 수도 서울 관료들의 조직적 방조인데, 이를 규명해야 할 수사기관과 인권위마저 믿음이 안 간다.

현지 경찰의 체포영장 앞에서도 꿋꿋한 외교관들의 저 뜨거운 동료애를 보라. 피해자 아닌 가해자만 자국민으로 보호하는 판사들은 어떤가. 고소 후 피해자 압박에 나선 시 공무원들의 굳은 충성심은 어쩔 것인가. 이러니 한국이 성범죄를 조장하고 성범죄자를 감싸는 나라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극단원들의 침묵과 방조 속에 십수년 간 지탱된 연극연출가 이윤택의 ‘성범죄 왕국’과 뭐가 다른가.

많은 남성들은 억울해 할 수 있다. 선량한 남자들을 왜 범죄자와 똑같이 취급하냐며. 그러면 위 사건의 방조자들은 선량한 남성일까, 사악한 공범일까. 별 것도 아닌 일이라고, 피해자가 원래 이상했다고, 그렇게 심한 줄 몰랐다고, 내가 나서기는 힘들었다고 대답할 그들은 아주 평범한, 선량하다고 주장하는, 공범들이다.

성차별과 성범죄는 구조적이다. 범죄자와 가해자는 소수지만 이를 감싸는 뿌리깊은 인식과 문화와 제도가 존재한다. 우리 사회는 구애와 성범죄를 혼동한다. 여자의 일을 하대하기를 당연시한다. 문제제기는 까칠함으로 간주된다. 직장 내 성범죄를 고발할 때는 일자리와 경력을 모두 잃는 것은 물론 근거 없는 비난마저 감수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이미 '시대의 명연설'로 회자되는 미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의 23일 의회 연설은 그에게 욕설한 중년 남성 테드 요호 의원이 “욕은 안 했지만 오해했다면 미안하다”고 엉터리 사과를 한 뒤에 나왔다. AOC는 진심 없는 사과는 필요 없지만 “의회가 그 말을 사과로 인정하는 것은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요호 의원 곁에 줄곧 다른 의원이 있었지만 아무 것도 안 했음을 환기시키며 말했다. “이것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문화다. 문제삼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문화, 여성을 향한 폭력과 폭언을, 이것을 유지시키는 권력구조를, 용인하는 문화다.”

남성중심주의와 성차별은 어디에나 있고 매일 반복된다. 다수 기득권 남성에게 이 문화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 문제를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 폭로하고 시위하는 여자들에게 “왜 이제 와서 떠드느냐”고 한다. 극소수 고위직 여성을 가리키며 “성차별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 내게 이 말을 한 지인들처럼 이에 동의하는 이들 다수는 ‘선량할’ 것이다. 세상이 바뀌기 어려운 것은 오직 선량함만을 가진 그들이 있어서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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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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