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앞 여성단체들은 왜 '보라색'을 들고 나타났을까

입력
2020.07.30 12:00
수정
2020.07.3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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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100년 전 여성 참정권 운동 때도 사용
빨강ㆍ파랑 혼합… 남녀 아우르는 색이라는 뜻도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28일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인권위의 직권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및 행진을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28일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인권위의 직권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및 행진을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28일 오전 100여명의 여성들이 서울시청 부근에서 보라색 옷을 입고 보라색 우산을 든 채 시위에 나섰습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문 의혹 등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 진상조사를 촉구한 여성단체 관계자들과 시민들이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국내 여성단체는 이날 '서울시에게 인권을, 여성노동자에게 평등을'이라는 주제로 집회를 열었는데요. 곳곳에서 보라색 옷, 보라색 우산, 보라색 피켓 등이 눈에 띄었습니다. 비가 오던 날이었으니 우산이야 그렇다 쳐도, 의상과 피켓까지 모두 보라색이었던 걸 보면 분명 보라색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었을 겁니다. 왜 하필 보라색이었던 걸까요?

사실 보라색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성운동 현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색이에요. 오랫동안 여성운동의 상징처럼 활용돼 온 건데요. 워낙 역사가 길어 언제 처음, 왜 보라색을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아요. 다만 여성운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여성 참정권 운동 이후로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돼요. 여성 참정권 운동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있었으니, 적어도 보라색은 한 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셈이네요.

100년 전으로 거슬러 가보겠습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서프러제트'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정권을 뜻하는 서프러지(Suffrage)에 여성을 뜻하는 접미사 '-ette'를 붙인 말인데요. 20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여성 참정권 운동과 그 운동가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됐어요. 초창기 서프러제트가 참정권 운동의 상징으로 내세웠던 색이 흰색(순수)ㆍ보라색(고결)ㆍ녹색(생명력)이었다고 해요.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여성운동가들이 모자에 보라색 꽃을 장식하고 있다. 영화 '서프러제트' 스틸컷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여성운동가들이 모자에 보라색 꽃을 장식하고 있다. 영화 '서프러제트' 스틸컷

평범한 여성 노동자가 참정권 운동에 동참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서프러제트'에서도 여성들이 보라색 꽃을 주고받고 모자에 보라색 꽃을 달고 나오는 장면이 나와요. 영화에 사용된 꽃은 '나를 생각해 주세요'라는 꽃말을 지닌 팬지였는데요. '여성을 생각해 달라'는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사용된 영화 속 소품일 수도 있겠지만, 당대 여성운동가들이 보라색을 중요시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보라색은 여성 참정권 운동 100주년 기념 행진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어요. 2018년 6월 10일(현지시간) 런던 거리가 온통 보랏빛과 초록빛으로 물들었는데요. 수많은 여성들이 참정권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초록색과 흰색, 보라색이 들어간 옷과 스카프 등을 걸치고 거리에 나서기도 했죠.

물론 보라색 상징의 유래를 색이 지닌 특징에서 찾는 시각도 있어요. 보통 각각의 색은 저마다 다른 사회적 상징을 지녀요. 빨간색이 열정을 상징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보라색은 빨간색과 파란색이라는 서로 상반된 색이 혼합돼 있죠? 그만큼 다양한 상징이 가능하다는 건데요. 일부는 빨강과 파랑을 남성과 여성에 비유해 보라색을 남녀를 아우르는 색으로 해석하기도 해요.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보라색에는 남녀를 차별하지 말고 동등하게 대해 달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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