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따.잡] 홍콩 영화에 담긴 중국 반환에 대한 위기감 Ep 2

입력
2020.07.24 18:00


지난 세기 우리가 사랑했던 홍콩 영화 기억하시나요. 쿵푸 영화도 있었고, 코믹 도박 영화도 있었습니다. 홍콩 누아르라는 비장한 범죄물도 한국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난 11일엔 1960~80년대 홍콩 영화 전성기를 살펴봤는데요, 오늘은 중국 반환으로 암울한 정서가 깃든 90년대 홍콩 영화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스타 총출동 '아비정전'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던 '아비정전'은 정적인 이야기 전개로 국내에서 관객 환불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1990년 특이한 홍콩 영화 한 편이 등장합니다. 장국영, 유덕화, 양조위, 장만옥, 유가령 등 당대 스타들이 총출돌한 ‘아비정전‘입니다. 한참 홍콩 누아르가 유행하던 시절 관객들은 화끈한 액션 영화를 기대했지만, 내용은 세상을 부유하고 방황하는 청춘을 다루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환불 소동을 벌일 정도로 저평가를 받은 이 영화는 1997년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불안한 정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영화팬들 사이에선 저주 받은 걸작으로 남은 이 영화는 몇 년 후 한국 방송광고와 예능 프로 등에서 패러디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합니다.


한국 청춘 사로잡은 '중경삼림'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왕가위 바람을 일으킨 '중경삼림'. 1990년대 중반 이 영화를 모르는 한국 젊은이는 간첩 취급을 받았다.


‘아비정전’을 뒤늦게 소환한 영화는 ‘중경삼림’(1995)입니다. 화려한 색조와 감각적인 카메라 움직임으로 한국 젊은이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중경삼림’이 히트하면서 왕가위 감독의 예전 작 ‘아비정전’도 새삼 화제가 됐습니다. 왕가위 감독 영화 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으로는 ‘타락천사’가 있습니다. 당대 아시아 미남 스타로 인기가 높았던 금성무가 주연한 영화인데요, ‘중경삼림’의 전편 같은 역할을 합니다.’중경삼림’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왕가위 스타일은 ‘타락천사’를 통해 시도되고 실험된 것입니다. ‘중경삼림’ 뺀들이라면 한번쯤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탈출구 없는 홍콩 미래 그린 '천장지구'

두 남녀의 미래 없는 사랑을 그린 '천장지구'는 장래를 알 수 없는 홍콩의 처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90년대 초반 홍콩 영화 중에 ‘천장지구’(1990)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입니다. 가난한 뒷골목 청년과 부잣집 여성의 질주하는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유덕화 오천련이 호흡을 맞춘 이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은 정말 막무가내로 사랑합니다. 사랑엔 국경이 없다지만 출구 없는 사랑에 매달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미래를 기약하지 못하는 당시 홍콩 청춘들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7년 앞으로 다가온 중국 반환에 대한 불안감이 짙게 배인 작품이라고 할까요.


홍콩 변두리 인물 중국 젊은이의 사랑 ‘첨밀밀’

'부자 도시' 홍콩에 돈 벌기 위해 왔다가 사랑에 빠진 두 남녀를 그린 홍콩 로맨스물의 정점 '첨밀밀'. 등려군이 부른 삽입곡 '첨밀밀'은 한국에서 '아임 스틸 러빙 유'로 리메이크가 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천장지구’가 90년대 등장할 홍콩 로맨스물의 신호탄 같은 영화라면, ‘첨밀밀’(1996)은 홍콩 로맨스물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명과 장만옥이 연기한 남녀 주인공은 돈을 벌기 위해 홍콩에 온 중국인입니다.이들은 중국보다 선진화되고 서구화된 홍콩에서 변두리 인물로 살아갑니다. 서로가 의지하며 사랑을 키우는거죠. 이 영화에선 중국어권 최고 가수로 추앙 받는 등려군 관련 에피소드가 흥미롭습니다. 두 사람은 중국 대륙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등려군 노래를 카세프테이프에 대량 복제해 크리스마스 대목을 노리는데, 그만 폭싹 망하고 맙니다. 대륙과 다른, 홍콩인들의 정서와 취향을 잘 몰랐던 거죠. 두 사람의 좌충우돌은 지금은 홍콩에서 지배권을 강화하고 주류로 자리 잡은 중국인의 모습과 사뭇 달라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2046년에 대한 불안 ‘2046’

영화 '2046'은 역사와 정치를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제목 만으로도 중국 귀속에 대한 홍콩인의 암울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중국에 대한 홍콩인의 불안은 2000년대 홍콩 영화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2046’(2004)이 대표적입니다.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가로지르며 사랑에 슬퍼하는 인물들의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 정치와 무관해 보이는 이 영화는 제목부터가 홍콩인의 정치적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홍콩은 2046년 자치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중국에 완전히 흡수됩니다. 일국양제가 종식되는 것이지요.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홍콩의 자치권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홍콩인들의 반발이 거세기도 합니다. 홍콩은 이미 ‘2046’의 슬픔에 잠겨 있는지 모릅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현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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