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정치, 세계를 날조하다

입력
2020.07.09 04:30

편집자주

시대의 독설가, 피아 구분 없는 저격수를 자처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미디어 이론을 통해 조명해보는 글을 씁니다. 매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26>세계를 만드는 방법


1933년 방화로 불타고 있는 독일 국회의사당 라이히스타그. 나치 독재의 신호탄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33년 2월 27일 독일 제국의회가 화염에 휩싸인다. 방화의 흔적이 뚜렷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한 네덜란드 청년을 체포했다. 마리누스 판 데르 루브. 그는 벽돌공이자 공산주의자였다. 소식을 듣고 히틀러와 괴링 등 주요한 나치 인사들이 현장에 속속 도착했다. 불타는 의사당을 보며 괴링은 “공산당의 봉기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히틀러는 “앞으로 공산당들은 보이는 족족 쏴 죽일 것”이라며 “사민당원들도 봐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정말 방화범일까

제국의회 방화사건은 나치 독재의 신호탄이었다. 이를 빌미로 베를린에서만 1,500명의 공산당원이 체포된다. 이들을 위한 강제수용소도 지어진다. 그 뒤로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조치들이 이어졌다. 그 네덜란드 청년이 나치가 그토록 원하던 일을 알아서 해준 셈이다. 히틀러는 이 사건을 “신이 주신 신호”라 불렀고, 괴벨스는 일기에 “하늘이 주신 기회”라 적었다.

나치는 처음부터 이 사건을 공산당의 소행으로 몰아갔다. 결국 그들은 청년과 네 명의 공산주의자를 공범으로 묶어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루브에게만 유죄판결을 내리고, 다른 이들은 증거 부족으로 방면한다. 나치가 아직 사법부까지 장악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 판결에 격노한 히틀러는 따로 '인민재판소'를 설치한다. 훗날 히틀러 암살에 가담한 이들은 이 인민재판소에 회부돼 처형된다.

정말 그가 범인이었을까. 법정에서 그는 “독일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촉구하기 위해” 자신이 혼자 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그 현장에 있던 나치돌격대(SA) 장교의 일기가 발견됐다. 거기에는 자기들이 청년을 그리로 데려갔으며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의사당은 이미 타고 있었다고 적혀 있다. 진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설사 청년이 방화를 했더라도, 그 배후에 공산당이 있다는 나치의 주장은 근거 없는 모략이었다. 

이 사건은 ‘음모론’을 활용해 세계를 날조하는 방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당시 독일형법에서 방화는 징역형에 해당하는 범죄였다. 하지만 사건이 공산당의 국가전복 음모로 규정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청년은 사형선고를 받고 기요틴에 목이 잘렸다. 먼저 공산당을 겨냥했던 탄압은 곧 사민당을 향하더니, 나중엔 자유주의자를 포함해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로 확대된다. 나치의 ‘멋진 신세계’는 이렇게 지어졌다. 


지난 5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채널A 취재윤리 위반과 검ㆍ언유착 의혹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다시 촉구한다'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검언유착의 음모론

규모야 비교할 수 없지만 여기서도 비슷한 사건을 본다. 태초에 채널A 기자의 일탈이 있었다. 그는 항간에 떠도는 신라젠 로비의혹을 캐기 위해 VIK 사건으로 복역 중인 이철씨에게 검찰 고위층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이른바 “약을 팔았다.” 물론 기자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의 편지를 받은 이철이 이 사실을 밖으로 알렸다. 검찰총장을 제거하려는 이들에게 이는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수감중인 이철씨를 대신해 기자와 접촉한 것은 지모씨. 그는 사기·횡령·협박의 전과 5범으로 지금도 다른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그는 언론에 자신을 이철의 “오랜 지인”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그와는 아무 면식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를 이철과 연결시켜 준 것은 민병덕 민주당 의원의 법무법인 민본의 변호사. 지씨는 이철과 접촉하면서 동시에 열린민주당 인사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 즈음 열린우리당의 황희석씨는 SNS에 최강욱 의원과 찍은 사진을 올리며 “둘이서 작전 들어갑니다”라고 쓴다. 지씨는 이를 퍼 나르며 “부숴봅시다. 개검들!!”이라 썼다. 그 후 지씨는 기자를 만나 ‘이철씨가 로비 정치인 5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철씨는 지씨에게 그런 명단은 없다고 알려 줬다고 하니, 그 거짓말은 지씨 혹은 그와 최강욱·황희석의 만남에서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 

무슨 “작전”이었을까. 지씨는 기자에게 그가 말한 검찰 고위층이 검찰총장의 측근 한모 검사장인지 집요하게 캐묻는다. 아울러 명단을 넘기는 시점이 총선 전이라는 대답을 얻으려 무던히 애를 쓴다. 그 바탕에 깔린 것은 물론 ‘윤총장 측근과 종편기자가 유시민의 비리를 캐서 4·15총선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는 음모론이다. 나치가 공산당을 루브의 배후로 몰아가듯이 검찰총장을 기자의 배후로 몰아가려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6일 전국 고검장·검사장 회의 내용을 보고 받은 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에 어떤 의견을 낼지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대검 청사 앞 검찰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서재훈 기자


◇무너진 음모론의 두 기둥

얼마 후 최강욱 의원은 제 페이스북에 “채널A 기자 발언 요지”라는 글을 올렸다. 거기에 따르면 기자가 이렇게 말했단다. “사실이 아니라도 좋다. 당신이 살려면 유시민에게 돈을 줬다고 해라.” 하지만 편지와 녹취록을 아무리 뒤져도 이 발언은 없다. 그렇게 ‘해석’될 구절도 없다. 왜? 당시 기자는 이철씨가 쥔 로비 명단에 유시민이 들어있다고 굳게 믿던 상황. 애초에 거짓말 해 달라고 할 이유가 없다.

녹취록을 보면 검찰과의 거래를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은 외려 지씨 쪽이다. 기자는 그 요구를 거절하며 “그 이상을 하면 기자가 아니라 사기꾼”이라며 법의 테두리를 넘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4·15 총선에 대해서도 기자는 어차피 총선에서 유시민은 큰 변수가 못 된다면서 명단을 넘겨받는 것은 총선 전이든 후든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창작한 음모론의 한 축이 무너진 것이다. 

나머지 한 축도 마찬가지다. 기자와 나눈 대화에서 한 검사장은 신라젠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중 피해를 준 사건”이며 “정확히 규명해야 하는 ‘서민·민생 금융범죄”라고 말한다. 유시민에 대해 묻자 “유시민이 뭘 했는지 나도 아는 게 없다. 금융범죄를 정확히 규명하는 게 중요하고 그게 우선”이라고 답한다. 기자가 그래도 마지막엔 유명인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하자 한 검사장은 “관심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 보도가 나가자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은 “관련자에게 유리할 수 있는 부분만 선택적으로 보도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그 발언의 존재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한편 대검 형사부 실무진은 녹취록을 본 뒤 수사팀이 사건을 왜곡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한 검사장에게 유리한 부분은 빼버리고 “악마의 편집”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검과 지검의 견해가 엇갈리자 총장은 수사자문단을 소집한다.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수사지휘권 발동 

그러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히틀러처럼 화를 내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검찰청법에는 “법무부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 감독”하게 되어 있다.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해 주려고 독일과 일본법을 참조해 만든 조항이다. 그런데 독일에선 수사지휘권이 발동된 사례가 아예 없다. 일본의 경우 1954년 뇌물 정치인의 사건을 불구속 지휘한 사례가 유일하다. 당시 법무대신은 여론의 비난에 사퇴했다.

이렇게 엄청난 수사지휘권을 고작 사건을 배당하는 데에 썼으니,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수사대상도 사기꾼과 정치꾼과 어용언론의 협잡이 지어낸 잡스러운 사건. 모기 잡겠다고 ICBM을 발사한 격이 아닌가. 흥미롭게도 장관은 수사도 안 끝난 상황에서 사건의 성격을 미리 “검언유착”으로 규정하고 들어갔다.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다는 얘기다. 수사도 그에 맞춰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수사자문단 소집도 불허하고, 대검의 지휘도 중단하고, 특임검사도 거부하고, 수사를 제 사람들에게 맡겼다. 권력의 지시에 따른 편파수사와 무리한 기소. 자기들이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 부정적인 검찰상을 몸으로 보여준다. 공소장 공개를 막았던 장관은 이번엔 아마 공소장을 공개할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를 비난하던 어용언론들은 피의사실을 대대적으로 떠들어댈 것이다. 뭐가 달라졌는가.

한편, 그 사건의 또 다른 절반인 지씨와 MBC에 대한 수사는 거의 진전이 없다. 제보자 지씨는 소환에 불응한 채 검찰을 조롱하는 재미에 산다. “술 한 잔 하실 분들 12시까지 대학로 여기로 오세요. 서울지검 검사님들도 오시면 ‘제보자x’ 현장체포 가능합니다.” 장관과 지검장이 제 편이라 믿는 게다. 여기서 우리는 상대에겐 가혹하고 내 편에는 관대했던 과거 검찰의 모습을 다시 본다. 이게 개혁인가.


법무부가 '검언유착' 사건과 관련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를 신속히 받아들여야한다고 입장을 낸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사에는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뉴시스


◇권언유착 

개혁한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고작 검찰을 다시 권력의 개로 길들여 놓았다. 그래도 자기들이 검찰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것은 아나 보다. “검찰은 중립성을 지켜야지, 독립성을 지켜야 할 조직이 아니”라고 윤호중 의원이 반려동물 성대모사를 한다. 검찰에 독립성이 필요한 것은 그것이 중립성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독립성 없는 조직이 중립적일 수 있겠는가. 식민지 조선이 스위스였던가.

슬픈 것은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세계를 날조하는 이 권력의 공작을 외려 적극 거들었다는 것이다. 검찰총장에 대한 1차 공격은 한겨레를 통해 이뤄졌다. 그에게 성 접대 누명을 뒤집어씌웠다. 2차 공격은 뉴스타파가 맡았다. 본인이 안 되니 장모를 공격한 것이다. 이번 3차 공격에는 MBC가 동원됐다. 이번엔 측근이 타깃이 되었다. 도대체 공작 없이는 정권이 유지가 안 되나. 

처음이 아니다. 조국사태 때는 수상한 브로커들 데려다 언론플레이를 했다. 이번 사건에는 사기·횡령·협박 등 전과 5범이 ‘제보자’로 기용됐다. 한명숙 복권운동에서는 7년이나 지난 시점에 복역 중인 이가 느닷없이 폭로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의 법률대리인은 신장식 변호사. 우연히 제보자 지씨의 법률 대리인과 같은 법무법인 민본 소속이다. 패턴이 반복되니 수법이 빤히 들여다 보인다.

지금 권력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검사들은 과거 ‘적폐청산’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 그때는 그들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하더니, 그 칼이 자기들을 겨누자 태도가 돌변한다.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하긴, 유재수 사건과 선거개입 사건은 물론이고 신라젠이니 라임이니 옵티머스니 비리가 터질 때마다 도대체 청와대나 정권 실세 이름이 빠질 때가 없다. 정권은 바뀌어도 권력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진중권 미학자,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의 트루스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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