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갑 하나로 학생회와 총장님까지 움직였죠"

입력
2020.07.03 23:55

학교에서 '바른흡연문화정착운동' 펼친 대학생 김병욱씨


김병욱씨가 목장갑을 끼고 포즈를 취했다. 김씨는 "흡연이야 개인 취향이라지만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는 건 너무하단 생각에 ‘바른흡연문화정착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김병욱씨가 목장갑을 끼고 포즈를 취했다. 김씨는 "흡연이야 개인 취향이라지만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는 건 너무하단 생각에 ‘바른흡연문화정착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흡연하던 학우가 던진 담배꽁초가 제 발 앞에 떨어졌어요. 발끈 화가 났어요. 흡연이야 개인 취향이라지만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는 건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날 오후에 당장 목장갑을 샀어요. 제가 직접 꽁초를 주우려고요.”

영남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김병욱(27)씨가 지난해 4월에 겪은 일이었다. 그날 이후 김씨는 친구들과 함께 영남대학교 상경관 일대 흡연 구역에 버려진 꽁초를 줍기 시작했다. 늘 지나다니는 상경관 입구부터 시작했다. 

김씨가 무작정 목장갑부터 사러 간 것은 아니다. 처음엔 학생회를 찾아갔다. 그러나 학생회는 담배꽁초 문제에 대해 “공감은 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행동은 주저했다. 김씨는 학생회 사무실을 나온 후 편의점으로 향했다.

김씨의 행동력은 가정교육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에게 늘 '옳다고 생각된다면 그대로 행동하라'고 배웠다. 그릇된 일 앞에서 비난만 하거나 혼자 끙끙 앓고 마는 법이 없다. 크든 작든 나름의 해법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이번엔 담배꽁초가 김씨에게 제대로 걸린 것이었다. 담배꽁초를 주우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활동도 병행했다. 강의 시작 전 강의실 단상에 올라 같이 담배꽁초 줍기에 함께할 학우를 공개적으로 모았다. 학교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담배꽁초가 바닥에 엉망으로 버려져 있는 사진과 활동 후기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몇몇 학생들이 동참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지원자가 10명쯤 모였을 때 체계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나름의 계획을 짰다. 매주 수요일 30분 동안 학내에 버려진 일회용 컵을 수거한 후 그 컵을 들고 담배꽁초를 모으기로 했다. 


'바른흡연문화정착운동'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담배꽁초 수거 활동을 끝낸 후 '브이' 자를 그리며 성공적인 활동을 자축하고 있다.

'바른흡연문화정착운동'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담배꽁초 수거 활동을 끝낸 후 '브이' 자를 그리며 성공적인 활동을 자축하고 있다.



나중에는 교수님도 동참했다. 회계학과 교수님이 회계학과 연구회 이름으로 후원금을 전달했다.

활동을 이어가자 학우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활동 초반에는 "왜 그렇게까지 나서서 일을 벌이냐?", "이렇게 한다고 좋아지겠느냐?" 등 냉소적인 반응도 많았지만, 차츰 그런 반응이 수그러들었다.

김씨의 내면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꽁초를 줍는 걸 뻔히 보면서 담배를 바닥에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학우를 마주쳤지만 예전처럼 화가 솟구치진 않았다. 청소노동자들과의 대화 덕분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은 김씨에게 "담배꽁초 투기 문제가 곤란한 문제였지만, 우리가 문제를 말하기는 어려웠다. 학생들이 나서줘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담배꽁초 줍기 활동의 진짜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문제를 제기해준 것 자체를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지만, 우리의 행동으로 공론화라는 진전이 있었고, 더불어 계속 희망을 쌓아가고 있기에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성과가 나올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나름의 성취감과 자긍심이 감정의 균형을 잡아준 셈이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던 가장 확실한 지표는 담배꽁초의 숫자일 것이다. 2019년에 주운 꽁초 수는 대략 1만 개였다. 엄청난 양에 김씨와 함께 활동한 이들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김씨의 ‘바른흡연문화정착운동’은 결국 학생회도 움직였다. 학생회 측에서는 ‘담배꽁초 투기 근절’의 내용을 담은 스티커와 현수막을 설치했다.  

김씨는 2019년의 마지막 담배꽁초 줍기를 끝낸 후 총장에게 활동 영상과 제안서를 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총장으로부터 "학교 전체가 담배꽁초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한 개인의 노력이 학생회와 총장까지 움직인 것이었다.

김씨는 지금은 코로나19로 활동을 멈췄지만, 후배들이 이 활동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작은 몸부림이라도 공동체에 좋은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바른흡연문화를 주제로 활동했지만, 후배들은 또 다른 활동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이어가다 보면 '행동하는 지성', 혹은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우리 학교의 전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채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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