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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없는 보호소가 꿈... 입양 늘고 외지 유기견 줄어들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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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동물과 함께하는 삶 선택
GM 등 폐쇄에 살림 어렵고
‘안락사 없다’ 소문에 유기견 급증
사룟값-치료비 사비로 메우다
공간 부족에 결국 안락사 시행
“유기견 수 조금씩 줄어들어
보호소 텅텅 비는 백수 되고파”
진돗개 ‘백구’(4살 추정)는 입질이 심하다. 예민한 성격에다 버림받은 사실까지 아는지 곁을 주기는커녕 사람만 보면 날을 세운다. 이정호(49) 군산유기동물보호소장만 빼고, 보호소 직원과 봉사자들도 이미 녀석에게 수 차례 혼쭐났다. ‘백구’를 누가 키우다 어떤 사연으로 버렸는지 알 길이 없어 주인 역시 찾지 못한다. 수용능력을 넘어선 보호소에서 심한 입질에 사회성도 떨어져 입양 가능성이 없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진 ‘백구’는 끝내 안락사 대상이 됐다.
전북 군산시 위탁으로 관내 유기동물을 보호하는 군산유기동물보호소. 개소 후 2년 넘게 전국에서 유일하게 안락사 없는 지자체 보호소로 유명세를 타던 곳이다. 그러나 보호소 내 유기견 수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후 버티다 못해 지난달 9일 유기견 15마리를 대상으로 처음 안락사를 진행했다. 약 1만 6,000㎡ 규모 대지 위에 펼쳐진 잔디밭을 유기견들이 지칠 때까지 뛰놀고, 수영장까지 갖춘 곳. 군산보호소가 ‘유기견 천국’이라 불리자, 사람들은 근처에 개를 유기했다. 두 눈을 실명한 강아지부터, 피부병에 걸린 강아지까지. 그러면서도 가식적인 인사는 잊지 않았다. ‘잘 돌봐주세요.’
올해 4월말 보호소에 유기견이 850여 마리까지 늘었다. 유명세를 타기 전 300마리에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보호소가 최대로 감당할 수용능력은 500마리 정도. 불가피하게 안락사를 결정한 이유다. 안타까운 소식에 그나마 유기가 좀 줄어 현재는 유기견만 650마리 수준을 유지한다. 어떻게든 안락사를 막기 위해 보호소 내 자투리공간까지 모두 개가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이 소장은 “유기가 또 늘어나면 안락사를 다시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락사 대상이 된 45마리 중 이미 세상과 작별한 15마리를 제외하고, 하루하루 불안에 떠는 친구들은 ‘백구’를 포함해 30마리다.
서울에서 전문가용 LCD모니터를 제조해 일본에 전량 수출하는 업체를 운영하던 이 소장은 2011년 유년기를 보낸 군산으로 내려왔다. 부품 수급이 어려워 수출 길이 막힌데다, 아내 건강도 좋지 않아 내린 결정이다. 2013년 말에는 군산 시내에서 현재 보호소가 있는 곳으로 터를 옮겨 잡았다. 폐가 좋지 않던 아내가 기흉까지 생기면서, 평소 동물을 좋아하던 부부는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을 택했다. 이 소장 부부는 애견 호텔과 카페, 운동장, 수영장까지 갖춘 반려견 놀이체험시설 ‘도그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수도와 전기도 안 들어오던 땅에 잔디 하나하나를 직접 심었다. 도로도 내고, 관련 시설까지 짓는데 꼬박 3년이 넘게 걸렸다.
당시 군산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이후 주변 하청업체 등에서 기르던 개들을 중심으로 유기견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때맞춰 기존 위탁보호소의 부실한 관리가 도마에 올랐고, 시설이 완비된 도그랜드에 시가 손을 내밀었다. 새 위탁보호소를 찾을 3개월동안만 이미 보호 중인 유기견 37마리와 새롭게 구조될 유기견을 임시 보호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소장은 2018년 5월 도그랜드 정식개장을 3개월 앞두고, 봉사차원으로 이를 수락했다. “첫 구조요청 때는 뭐부터 해야 할지 감을 못 잡았어요. 장비도 없어서 무작정 소방서에 연락해 함께 출동해 배우기 시작했죠. 그때만 생각하면…”
그게 시작이었다. 보호소 운영 1년 만인 2019년 초 보호 중인 유기견 수는 400마리를 넘어섰다. 이 소장 부부와 자원봉사자들이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무리였다. 아내는 과로 탓에 7번이나 119구조대에 실려 병원에 갔다. 구조한 유기견들 사료값과 치료비도 문제였다. 2018년 시에 책정된 동물구조 관련 예산은 마리당 10만원을 기준으로 1년에 4,500만원이 전부. 부부는 보험까지 깨가며 사비를 털어 보호소를 운영했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사실 너무 힘들어 시에 몇 차례 빨리 다른 보호소를 찾아달라는 채근도 했다. 보호소 업무로 시설 개장은 미뤄지고, 들어간 사비 만도 1억5,000만원 가량이 됐다. 직원이나 봉사자가 떠난 밤이면 녀석들은 고스란히 소장 부부 몫이었다. 하루도 보호소를 비울 수 없어 휴가는 언감생심, 외박 한 번을 못했다. 다행히 시에서 2019년부터 인력과 예산을 크게 늘리며 숨통이 트였다. 현재는 직원과 봉사자를 합쳐 20여 명이 소장 부부와 보호소를 꾸려간다. “많은 분들 도움으로 이제 정말 잘 운영할 수 있겠다 싶었을 때 보호소에 유기견이 늘어 안락사를 해야 할 처지가 된 거예요.”
이 소장은 그래도 희망을 봤다고 했다. 통계상 약 5,200만명인 국내 인구 대비 한 해 발생하는 유기견 수는 10만 마리 남짓. 비율로 따지면 인구 27만명 수준인 군산에서 한 해 발생하는 유기견은 1,000마리 안팎이다. 그리고 이는 실제 군산에서 발생하는 유기견 수와 비슷하다. 이곳 보호소의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유기견 650마리 가량을 입양 보냈다. 또 견주가 실수로 잃어버린 유실견 150마리 정도를 원래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여기에 노화와 질병 등으로 세상을 등진 보호소 내 유기견 200여 마리를 더하면 매년 말 보호소 내 유기견은 산술적으로만 보면 ‘0’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올해는 상반기만 이미 600마리가 넘는 유기견과 유기묘를 입양 보냈다. 해외입양이 늘면서 지난해 1년간 진행한 입양을 올해는 상반기 안에 다 끝낸 것이다. “단순 수치로만 보면 현재 보호소 내 모든 유기견은 외지에서 왔다는 결론이겠네요.” 2018년 2월 개소 후 지난달 20일까지 2년 4개월 간 이곳에서 입양을 보낸 유기견 수는 1,574마리다.
이 소장은 보호소 운영 면에서도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려 한다. 지자체 지원예산과 시민 후원금만으로는 온전히 보호소를 꾸릴 수 없는 만큼 보호소를 공원화해 일반시민들이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현재 코로나19로 주춤하지만, 지난해만 4만명 이상 방문객이 찾은 만큼 이들에게 카페와 애견호텔 등의 부대 서비스를 제공해 보호소 살림밑천을 만들 계획이다. “투명하게 후원금을 관리하기 위해 지난 5월1일 보호소 운영기관을 기존 ‘도그랜드’ 영농조합법인에서 사단법인 ‘리턴’으로 변경했습니다. 이젠 보호소 운영 제대로 한 번 해보려고요.”
보호소가 수용 규모나 운영면에서 자립 기반을 갖추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뭘까. 군산보호소만이라도 유기견의 안락사 대상 확정 기간을 최소 3개월로 늘리는 게 그의 바람이다. 현재 지자체 위탁보호소는 공고 후 10~20일간 입양이 안 되면 언제든 안락사가 가능한데, 이 기간을 늘리고 싶다는 것이다. 이곳의 안락사 대상 유기견은 수의사 등 외부인사 4명을 포함해 8명으로 구성된 안락사심의위원회를 통해 결정된다. 소장은 공정성 확보 차원으로 심의위원회에서 배제된다. “보호소 내 유기견 성격과 건강상태가 모두 달라 이걸 파악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려요. 개별특성을 알아야 입양을 잘 보낼 수 있게 신경도 더 써주는데.”
연말이면 몸이 많이 아픈 친구들과 갓 입소한 친구들을 합쳐 200마리 정도만 머무는 곳.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사료를 개별 급여해 유기견들은 쫓기듯 사료를 먹지 않고, 그 사이 보호소 직원들은 개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일대일 교감을 나누는 곳. 그는 지금처럼 입양이 늘고, 외지 유기견 수가 조금씩 줄어든다면, 앞으로 5년 안에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연말에 썰렁한 보호소에서 하루 정도 농땡이 치는 모습을 그려볼 때가 있죠. 5년 안에 그런 날이 오겠죠. 그때는 정말 홀가분하게 위탁 보호소 일을 놓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땐 아내와 미뤄둔 여행이라도 좀 가려고요.”
군산=이태무 동그람이 팀장 santafe29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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