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의 작은, ‘어둠의 혁명’

입력
2020.07.0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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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푸조의 '대부' (7.2)

1978년 8월 'Time' 표지의 마리오 푸조. 푸조는 1969년 책 '대부'로 소설보다 극적인, 가히 혁명적인 생의 구비를 경험했다. ebay.co.uk

1978년 8월 'Time' 표지의 마리오 푸조. 푸조는 1969년 책 '대부'로 소설보다 극적인, 가히 혁명적인 생의 구비를 경험했다. ebay.co.uk


인류 출판 역사상 가장 극적인 성공을 거둔 책을 꼽으라면, 나는 마리오 푸조(Mario G. Puzo, 1920.10.15~1999.7.2)의 ‘대부(The God Father, 1969)’를 밀겠다.

푸조는 뉴욕 거리가 ‘혁명 열기’로 뜨겁던 1968년, 손가락이 곱던  자기 집 지하실에서 그 원고를 썼다. 당시 만 48세의 그에겐 아내와 다섯 아이 외에 2만달러가 넘는 빚이 있었다. 그해 7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그는 선인세 5,000달러로 보무당당하게 가족을 이끌고 유럽여행을 떠났다. 그에겐 아내에게도 말 못한 비밀도 하나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집이 빚에 넘어가 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패망한 나라의 패잔병처럼 귀국한 그를 기다린 것은 페이퍼백 판권만 41만달러(근년 기준 약 300만달러)에 팔렸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그는 ‘진짜면  우선 1만달러만  줘보라’고 출판사에 요구했다. 페이퍼백 ‘대부’는 이듬해 말 500만권, 1971년 1월까지 700만권이 팔렸다.

1972년 영화 ‘대부’는 푸조와 감독 코폴라에게 아카데미 각색상을 안겼다. 배우 말론 브란도는 남우주연상을, 코폴라는 작품상을 따로 챙겼다. 1974년 ‘대부 2’도 작품상 등 아카데미 6개 부문을 휩쓸었고, 1990년 ‘대부 3’의 신화로 이어졌다. 그렇게 마피아는 세계적 문화 상품이 됐다.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 철도노동자의 아들로, 이름처럼 악명 높던 뉴욕의 가난한 이민자 동네(Hell’s Kitchen)에서 태어난 푸조는 상업학교를 나와 무명 작가가 됐다. 1955년 첫 장편 ‘The Dark Arena’와 1965년 자전 소설 ‘The Fortunate Pilgrims’까지 만 10년간 그가 글로 번 돈은 고작 6,500달러였다. 그런 그를 값지게, 또 딱하게 본 한 편집자가 어느 날 ‘순문학 욕심을 접고 본격 마피아 소설을 써보라’고 제안했다. 그는 오기를 부릴 형편이 아니었고, 마피아 취재엔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푸조의 마피아 커넥션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미심쩍은’ 그의 외모도 물론 일조했을 것이다. 그는 극구 부인했지만, 책 출간 뒤 ‘패밀리' 만찬 초대에 응한 적은 있다고 고백했다. 대부 ‘돈 콜리오네’의 캐릭터는, 홀몸으로 그를 키운 “대부만큼 엄했던”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에게 재능과 외모에다 근사한 주인공까지 물려준 셈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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