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고발 ‘시조새’ 안진걸의 원칙... “국민 지지 없는 고발은 남발”

입력
2020.07.06 11:5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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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간이 조명될 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법조계.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들만의 세상에는 속설과 관행도 무성합니다. ‘법조캐슬’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일보> 가 격주 월요일마다 그 이면을 뒤집어 보여 드립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안진걸(가운데)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이 2017년 1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규명해달라는 고발과 관련해 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작권 한국일보] ?안진걸(가운데)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이 2017년 1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규명해달라는 고발과 관련해 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랜 기간 참여연대에서 각종 공적 고발을 이끌어온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법적 분쟁 경험이 많은 시민단체 인사들 중에서도 ‘고발의 고수’로 꼽힌다. 안 소장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고발했고, 삼성물산 부당 합병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그룹 총수 일가를 고발했다.

26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안 소장은 “극악한 비리를 저지르고 반사회적 행위로 국민들을 탄압하고 사회 정의를 무너뜨린 사람들을 주로 고발 대상으로 삼아왔다”면서 “우리가 관여한 대부분 고발이 무혐의 처리되지 않고 기소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꼼꼼한 법리 검토와 치열한 내부 토론 덕분”이라고 자부했다.

특히 안 소장은 경제 권력을 고발하는데 앞장섰다. 2014년에는 ‘땅콩회항’ 사건에서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을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했고, 지난해에는 이석채 전 KT 회장이 연루된 KT 채용 비리 수사를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안 소장은 “시민단체 고발이 검ㆍ경 수사에 날개만 달아주는 격이라는 지적도 있다”면서 “그러나 수사기관이 재벌, 정치권 눈치를 볼 때는 고발이 되레 수사와 기소를 촉발시키는 기능을 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름대로 네 가지 고발 원칙을 세우고 있다. △법리적으로 타당해야 하고 △고발이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국민적 요구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시민단체 구성원들과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는 원칙이다.

안 소장은 풍부한 고발 경험 덕에 여러 시민단체들이 참여한 큰 사건에서 고발 실무를 맡는 경우도 많았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학교 무상급식을 주민투표에 부쳤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주민투표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환경ㆍ교원ㆍ농민ㆍ종교 등 관련 시민단체를 아우르는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도 이끌었다. 안 소장은 “고발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국민 대투쟁도 함께 전개하려고 노력한다”며 “국민적 공분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고발은 시민단체에 대한 혐오와 편견, 냉소만 부추기게 된다”고 지론을 밝혔다.

26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안 소장은 "시민단체의 공익 고발에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면서 "반드시 국민적 공분을 바탕으로 한 고발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26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안 소장은 "시민단체의 공익 고발에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면서 "반드시 국민적 공분을 바탕으로 한 고발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검찰청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린 안 소장도 “누군가를 고발하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고 털어놨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하고, 고발인 조사를 받다가 수사기관에서 취조 받듯 조사를 당하기도 한단다. 그는 “고발하는 순간이 되면 ‘나 또한 정말 실수나 잘못 없이 살아왔나’ 되돌아보게 된다”면서 “피고발인들이 원한을 품고 보복을 할 수 있다는 걱정도 들어 매우 괴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마저도 특정 정당이나 특정 언론사를 고발하는 일만은 하지 말라고 말리신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고발은 시민단체의 사명이니 계속 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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