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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형제' 사우디ㆍUAE 양보할 수 없는 국경 싸움

입력
2020.06.27 04:30
수정
2020.06.27 08: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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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수익 배분ㆍ통화 단일화 등 삐걱

사우디ㆍUAE 국경분쟁 지역. 그래픽=송정근 기자

사우디ㆍUAE 국경분쟁 지역. 그래픽=송정근 기자


아라비아반도는 아라비아해ㆍ호르무즈해협ㆍ페르시아만에 둘러싸인 중동의 중심지다. 반도에 모여 사는 나라들 중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부유하고 힘도 센 형제국이다. 이슬람 ‘시아파’ 맹주 이란에 맞서는 ‘수니파’의 구심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형제 간에도 양보할 수 없는 일은 있는 법. 1974년 사우디 국왕과 UAE 대통령이 맺은 국경 조약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낳았고, 반세기 가까운 분쟁의 씨앗이 됐다.

원래 사우디와 UAE가 위치한 아라비아반도는 국경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반도 내부는 느슨하게 조직된 여러 아랍 그룹으로 구성돼 있었을 뿐, 국경을 획정할 만한 명확한 지형ㆍ지물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국경 다툼의 서막은 UAE가 열었다. UAE는 1971년 12월 7개 토후국으로 연방국가를 이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3년 뒤 최대 토후국인 아부다비 왕 자격으로 대통령이 된 셰이크 자예드는 사우디에 국경 문제에 관한 협상 개시를 요청했고, 1974년 8월 양국 사이에 국경선을 정하는 구두 합의가 성사됐다. 국경이 확정되자 사우디가 UAE를 국가로 승인하는 등 외교관계도 급물살을 탔다. 사우디는 아부다비에 대사를 파견했고, 제2 토후국 두바이에는 영사관이 들어섰다.

‘밀월’은 오래가지 않았다. 구두 협약과 달리 문서로 만들어진 국경 조약이 사우디에 유리하다며 UAE 측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문서에는 사우디가 아부다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한 정황이 담겼다. UAE 정부는 이런 불일치를 문제 삼아 1975년 재협상을 공식 요청하기에 이른다. 구두 협상 당시 변호사, 기술자, 지리학자 등 전문가 그룹이 없어 불평등 조항을 면밀히 살피지 못했다는 게 UAE의 항변이다.

이 뿐이 아니다. 중동의 돈줄인 원유, ‘샤이바 유전지대’도 첨예한 논쟁거리다. 아부다비와 지척인 샤이바 유전은 하루 75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매장량도 세계 최고를 자랑하지만, 현재 사우디 통제 아래 있다. UAE는 구두 합의를 통해 유전을 두 나라가 공유할 것으로 믿었다. 자예드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UAE 영토 안에 있는 유전 비율에 맞춰 개발 수입을 배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조약 문서에는 유전 수익 분담 부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물리적인 국경도 뒤늦게 문제가 됐다. 사우디는 1977년 항구 건설을 이유로 아부다비와 맞닿은 국경을 걸프만에서 동쪽으로 32㎞ 떨어진 곳으로 옮기라며 UAE 측에 일방적으로 3,450만달러를 건넸다. 물론 강요에 의한 이 거래는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UAE는 2004년 종합적인 조약 수정 요구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국경 조약은 30년 전 끝난 문제라며 제안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다. 뿔난 UAE 역시 조약 비준을 여태껏 거부하는 중이다. 급기야 UAE는 2009년 사우디가 걸프협력회의(GCC) 산하 각종 기구의 본부를 독식하고 있다면서 통화 단일화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UAE의 몽니 탓에 통화 단일화는 지금까지 실행되지 않고 있다.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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