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학대 아동시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입력
2020.06.22 17:00
수정
2020.06.22 17:2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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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학대 전 시설장ㆍ법인 대표 사실혼 부부 알고도 묵인
아동보호전문기관, 아동학대 신고 전력 파악하고도 소극 대처

장기간 아동학대가 이뤄진 것으로 드러난 경북 포항의 한 아동보호시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장기간 아동학대가 이뤄진 것으로 드러난 경북 포항의 한 아동보호시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포항시가 나서는 수 밖에 없어요. (전 시설장은)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아요. 그래도 시는 무서워해요.”

아동학대로 말썽이 난 경북 포항의 아동보호시설에서 오래 일한 직원은 내부고발자와 통화에서 사태를 해결하려면 포항시밖에 없다는 호소를 거듭했다. 새 시설장인 내부고발자가 아이들의 구세주였다면, 포항시는 내부고발자의 구세주로 기대된 셈이다. 하지만 포항시는 새 시설장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았다.

해당 시설은 전 시설장이 정부 보조금 6,300만원을 횡령해 지난해 말로 7년간 자격이 정지됐을 때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러나 포항시는 그대로 뒀다. 시설을 소유한 사회복지법인 대표가 대신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나섰다는 게 이유였다.

사회복지법인 대표는 전 시설장과 사실혼 관계의 동거남이었다. 포항시도 알고 있었다. 포항시 담당공무원은 '아이들을 돌보겠다던 대표는 어디에 살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바로 옆집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포항시가 묵인하는 사이 전 시설장은 이전과 똑같이 군림했다. 아이들 앞으로 나온 정부 지원금을 제멋대로 썼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지급된 아이들 몫의 긴급재난지원금까지 움켜쥐었다.

포항시는 내부 실태를 알리는 인권단체의 기자회견이 있기 하루 전, 아이들을 모두 다른 보육시설로 옮겼다. 이미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고 두 달이 지난 뒤였다.

경북 포항의 아동보호시설에서 옥탑방에 장기간 갇혀 지낸 아이가 유리창 너머로 시설 종사자를 바라보고 있다. 독자 제공

경북 포항의 아동보호시설에서 옥탑방에 장기간 갇혀 지낸 아이가 유리창 너머로 시설 종사자를 바라보고 있다. 독자 제공

포항시는 기자들의 취재에도 줄곧 사태 축소에 급급했다. 담당공무원은 "전ㆍ현직 시설장 간의 알력다툼으로 보인다"거나 "유엔 아동친화도시 지정이 코 앞인데 기사가 나가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조사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도 마찬가지였다. 관련 지역 아동보호기관을 운영하는 굿네이버스 경북동부지부는 내부고발자가 아이들의 피해를 조사해달라는 요청에 아동보호시설이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어린이집이 아닌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지역아동센터를 찾았다. 해당 센터는 전 시설장의 동거남이 대표로 있는 사회복지법인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경북동부지부는 지역아동센터 법인 대표가 과거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사실까지 파악하고도 적극 조사하지 않았다.

본지 보도 후, 포항시는 문제의 아동보호시설을 조사하기는커녕 담당공무원 징계를 놓고 기사 내용대로 내부고발자를 회유했는지를 확인하는데 바빴다.

지금 이 시간 아이들을 학대하고 전횡을 일삼은 전 시설장은 그간의 악행을 지우는데 분주할 것이다. 포항시나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들이 알고도 외면했던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친다면, 나아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지금 당장 진실을 밝히는데 나서야 할 것이다.  

김정혜 기자

김정혜 기자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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