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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꼴찌 팬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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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인천 야구팬이라면 잊지 못할 삼미 슈퍼스타즈는 이름과 달리 ‘슈퍼스타’ 한 명 없는 최약체였다. 재일교포 투수 장명부를 영입해 반짝했던 1983년을 제외하면 1985년 5월 청보 핀토스에 매각되기까지 꼴찌를 도맡았다. 1982년 시즌 승률 1할8푼8리(15승65패)는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역대 최저 승률이다. 1985엔 개막전 승리 다음날인 3월31일부터 4월29일까지 18연패했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친구는 팬클럽을 결성했다가 이런 패배의 일상을 견디다 못해 서울에서 가까운 부평에 산다는 구실로 서울 연고 팀 MBC 청룡 팬으로 변절한다.
애틋한 추억의 이름 삼미를 끄집어낸 건 한화다. 한화의 승률은 2할대다. 10번 경기하면 8번 진다. 한용덕 감독은 14연패한 뒤 사퇴했다. 삼미와 동률인 18연패를 당하고서야 이겼다. 한화는 유일하게 ‘3김(金)’이 거쳐간 구단이다. 셋이 합쳐 15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 감독에게도 한화는 답이 없는 팀이었다.
올해 정도가 심해서 그렇지 한화의 부진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차례 최하위에 머물렀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6~8위, 2018년 3위에 오르며 반짝했지만 2019년 다시 9위로 추락했다. 2020시즌엔 꼴찌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팀을 한결같이 응원한다는 건 쉬운 알이 아니다. 한화 팬들의 ‘고충’은 몇 해 전 영국 공영방송 BBC에 소개될 정도였다. BBC는 “많은 이들이 한화 팬들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부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했다. 한화 응원단장까지 달갑지 않은 유명세를 치렀다.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치면 경기를 보다 망연자실해하는 표정들로 가득하다. 21세기 들어 우승은 고사하고 역전패, 참패로 점철된 한화의 대전구장 응원단상을 10년 넘게 지켜 온 그는 2012년 “가을야구 할 때까지 장가 가지 않겠다”는 각오를 내뱉은 뒤 지금까지 공약(?)을 지키고 있다. 한화 골수 팬 A씨도 “경기는 반쯤 포기하고 본다. 그러다 이기면 좋은 거다. 그냥 점잖게 응원하는 게 충청도 팬들이다”라고 거의 해탈한 심정을 던진다. ‘꼴찌 한화’를 응원하는 팬들은 그렇게 매년 속고도 또 야구장으로 향하고, TV 중계를 튼다.
한화를 보면 시카고 컵스가 떠오른다. 한화는 1999년이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이지만 컵스는 2016년 월드시리즈 정상에 서기까지 무려 108년 동안 무관이었다. ‘염소의 저주’라 불렸다. 자식들에게 유언으로 “넌 우승 순간을 지켜봐라”라고 했다는 말부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직업은 ‘시카고 컵스 팬’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래도 컵스 팬들은 거의 매 경기 홈구장 리글리필드를 꽉 메웠다.
코로나19 때문에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이번 시즌에 한화가 18연패에서 탈출하던 날 보문산에 자리잡고 눈물을 훔쳤던 한화 팬들의 오기도 비슷할 것이다.
한화의 전신 빙그레는 해태 타이거즈와 정상을 다투던 강팀이었다. 1993년 간판을 바꾼 한화는 야구를 사랑하는 회장이 화끈하게 지원하는 대기업이다. 시작부터 악조건에 처한 삼미나 모기업이 위기에 빠졌던 쌍방울 레이더스와 비교는 곤란하다. 선수 육성 실패부터 컨트롤타워의 부재까지 신랄한 비판을 받아도 싸다.
그래서 한화 팬은 더 외롭다. 한화의 기록적인 부진과 함께 소환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주인공 감사용씨는 "선수들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도 매우 힘들 것이다. 잘 이겨내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여전히 ‘최강 한화’를 외치고 있는 극한직업의 한화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위로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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