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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태양의 바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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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어둠이 내려앉은 바닷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락가락 모래를 훑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묵묵히 땅을 파더니 비장한 얼굴로 십자가를 하나씩 세운다. 다음 날 아침에야 묘지의 모습으로 변한 해변을 발견한 리우데자네이루의 시민들은 그저 참담한 침묵으로 바라볼 뿐이다. 진짜 무덤도 아니고 모래를 파서 만든 백여 개의 무덤 모양이었지만 모두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 장면이었다. 코로나 19로 수만 명이 죽어가는데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브라질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어느 시민단체가 진행한 퍼포먼스. 한때 태양과 바다를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을 설레게 하던 이름, 코파카바나 해변이 맞이한 오늘날의 슬픈 풍경이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불운의 올림픽’이라도 하듯이 감염자와 사망자의 숫자를 세가며 순서를 매기는 괴기한 시절이 서너 달째 계속이다. 하지만 힘없고 가난한 계층에 더 가혹한 전염병 확산의 경로처럼, 국가별로 겪어내고 있는 불행에 대한 관심도 공평하지는 않다. 유럽 대도시들의 확산세가 줄면서 봉쇄를 풀고 슬금슬금 여름철 관광재개까지 이야기하는 요즘이지만, 코로나19는 이제 우리의 뉴스망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나라들로 이동해 가며 여전히 진행형이다. 특히 남미의 인구대국인 브라질은 96만여명이 감염된 데다 사망자까지 4만6,000명을 훌쩍 넘기면서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피해가 커져 버렸다. 우리와는 가장 먼 지구 반대편, 여름이 찾아온 북반구와는 달리 한창 겨울로 접어드는 남반구인지라 더 큰 유행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세상에 이렇게 축복받은 항구도시가 또 있을까, 처음 리우데자네이루를 찾았을 때 들었던 생각이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도시를 내려다보는 거대예수상으로 유명한 코르코바도 산에 오르면, 푸른 바다에 봉긋하게 솟은 바위언덕들 사이사이로 눈부시게 하얀 모래밭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저 멀리까지 이어진다. 예수상 왼팔 아래쪽은 18세기 식민시대에 발견한 금과 다이아몬드를 실어 나르던 무역항이 있는 중심부로 한때는 포르투갈 왕실까지 옮겨오며 1960년까지 이백 년간 수도 역할을 했던 곳이다. 오른팔 아래쪽으로는 창문만 열면 휴양지 특급호텔 같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집들이 해안을 따라 줄줄이 들어섰다. 그 바다를 스치고 가는 이토록 감미로운 바람이라니. 코파카바나 해변이 보이는 집에 모여 앉은 1950년대 젊은 음악가들이 느긋하고 달콤한 선율의 보사노바를 탄생시킨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리우데자네이루만큼 찾아간 요일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도시도 드물었다. 오래된 동시에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근대적인 시가지를 제대로 만나려면 출근한 이들로 바글바글한 평일이어야 하고, 햇살 좋은 주말이라면 열 일 제쳐 두고 무조건 해변으로 향해야 했다. 바다(Sea)와 태양(Sun), 모래(Sand)라는 축복을 한 몸에 받은 3S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요소는 바로 사람이었고, 리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열기는 모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하나 이제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가 위험한 시대를 살게 되었으니 그 찬란하던 해변의 빛도 사그라져 간다. 예수상이 내려다보는 바다 방향은 부촌이라 그 뒤쪽 언덕배기의 빈민가는 절대 바라본 적이 없다는 현지인들의 자조적인 말들이 더 이상의 참혹한 현실로 나타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바다에서 돌아가는 길에 뉘엿뉘엿 지는 햇살 사이로 들려오던 보사노바 명곡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의 멜로디를 다시 나른하게 흥얼거리며 걷는다. 지금은 비현실적일 만큼 아련한 상상이 되어 버린 이 추억들이 우리 모두의 현재로 되돌아오는 순간을 꿈꾸어 본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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