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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닫힌 사이… 가정 내 학대, 누구도 눈치채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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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요, 피멍 든 동심
(상) 코로나에 갇힌 아이들이 위험하다
지난 3월 12일 오전 대전 유성구의 119구급대에 다급하게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열 살 아이가 쓰러져 숨을 쉬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경찰과 구급대원이 유성구 한 빌라로 출동해 의식을 잃은 A(10)군을 발견했으나, 수분 간의 심폐소생술에도 A군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당시 숨진 A군의 몸 곳곳에는 멍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폭행을 당한 흔적으로 추정됐다. 경찰이 추궁하자 친모 B(38)씨는 현장에서 고무호스 등을 이용해 아들을 때렸다고 시인했다고 한다.
경찰은 A군의 집에서 또 다른 아동 학대의 흔적을 발견했다. A군과 함께 있던 여동생 C(9)양도 엄마의 폭행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남매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으로 개학이 연기돼 방학이 길어지면서 주로 집에서 일과를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등교를 했다면 교사나 친구 등에 의해 학대 사실이 포착될 수 있었지만, B씨의 폭행이 극심해져 A군이 사망에 이르고서야 알려진 것이다. C양은 물리적 학대와 함께 오빠가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트라우마까지 겪어야 했다. 경찰은 B씨에게 아동학대치사 혐의와 함께 C양에 대한 상습 폭행 혐의 등을 적용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고, 검찰이 기소해 B씨는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아동학대 조기 발견 체계가 흔들리면서 위기에 갇힌 아동들이 늘고 있다. 가정 내 학대가 지속되는데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다가, 숨지거나 제 발로 도망쳐 나와서야 알려지게 된 충남 천안, 경남 창녕 학대 사례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아동학대 문제 해결에서 아이의 등교 등 사회 활동은 큰 역할을 한다. 아동학대 10건 중 8건 이상(81.4%ㆍ2018년 기준)이 부모ㆍ친인척에 의해 발생하는 만큼, 가정 외에서 학대 징후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접수된 아동학대신고 3만3,532건 중 신고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종사자가 23.1%(7,756명)으로 가장 많았고, 초ㆍ중ㆍ고교 직원이 19.1%(6,406명)로 뒤를 이었다. 이에 정부는 수년 전부터 초등 신입생 예비소집일에 불참한 학생에 대해 경찰 수사에 나서게끔 하고, 학대 고위험군 아동들을 추려 가정 방문 조사에 나서 왔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로 ‘거리 두기’ 방침이 지속되면서 정부의 예방시스템은 멈춰 섰다. 특히 전문가들은 등교가 미뤄지는 사이 발생할 아동학대 사각지대를 사전에 가늠하지 못한 것을 가장 뼈 아픈 지점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 개학을 실시했지만 교사가 화상 모니터 너머로 아이 상황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지 못할뿐더러 출결 확인에도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던 탓이다. 실제 지난 1일 7시간 동안 여행용 가방에 갇혀 있다 숨진 D(9)군의 경우 갇힌 시각에 온라인 수업은 출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D군의 의붓어머니가 출결을 조작했는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방문 조사도 신종 코로나 확산 우려로 2월부터 멈추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1~3월(1차) 위기 아동 2만858명 가운데 방문 조사를 받은 아동은 18.1%(3,779건)에 불과해 지난해 같은 기간(1만8,989건) 대비 5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의붓아버지와 친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지난달 29일 창녕 자택에서 탈출한 E(9)양 역시 2017년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거제시에 살면서 정부의 아동학대 관리 시스템에 등록됐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거제시는 지난해까지 E양 가정을 몇차례 방문하고도 ‘학대 정황이 없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 정부는 가정 양육 중인 만 3세 아동 및 취학연령 아동, 학대 우려 아동 2,300여명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시스템에 등록된 위험군 2만여명의 일부에 불과한 데다 일회성 대책이어서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교육부 관계자는 “최근까지의 정책의 문제점을 점검해 근본적으로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는 종합대책을 8월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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