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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이들은 짐승처럼 사육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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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아동학대시설 내부고발자
“들어올 때 멀쩡했던 아이들, 하루 두 차례 정신과 약물 복용”
“더 나은 시설 보내져 다행이지만 평생 상처ㆍ장애 안타까워”
“아이들을 처음 본 순간 알았습니다. 따뜻한 보살핌으로 양육되는 게 아니라 짐승처럼 사육되고 있다는 사실을요.”
가정폭력으로 부모와 지낼 수 없어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시설 안에서 학대받는 사실(본보 17일자 11면 보도)을 외부로 알린 A씨. 그는 해당 시설에 시설장으로 출근한 첫 날, 아이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B(10)군은 2층에서 생활하는 다른 아이들은 물론 친동생과 떨어져 3층 옥탑방에 홀로 갇혀 지냈다.
잠금 장치가 돼 있는 방 안에서 식판으로 밥을 받아 먹었고, 용변이 마려울 때는 벨을 눌러 밖에서 열어줘야 나올 수 있었다. 나머지 5명의 아이들은 장난감 하나 없이 종일 멍하니 TV 앞에 앉아 있었다. 전 시설장은 정부 보조금 6,300만원을 횡령해 지난해 12월 말로 자격이 정지된 상태인데도 A씨 앞에서 제집 드나들 듯 나타나 아이들과 시설 종사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는 “전 시설장은 사회복지사들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고, ‘행정기관과 사이가 좋지 않아 힘들다. 시설장직을 맡아줄 수 없느냐’고 부탁해 맡게 됐다”며“첫날 독방에 갇힌 아이를 데리고 나오니 전 시설장이 나타나 ‘동생의 성기를 만져 분리시켰는데 성추행으로 걸리고 싶냐’고 소리를 질러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전 시설장이 CC(폐쇄회로)TV로 시설 내부를 계속 감시하고 관리자 행세를 해 눈치를 보며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내부의 실태를 외부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출근 3일째부터 인권단체 등과 상담을 가졌다. 이어 포항시를 직접 찾아 현장조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담당공무원은 묵묵부답이었다. 줄곧 바쁘다는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아동보호시설을 감독하는 포항시는 4월24일 A씨가 아동학대로 해당 시설을 경찰 등에 신고하기까지 단 한 번도 현장을 찾지 않았다.
그는 “아동학대 신고 전 시청 공무원들을 만나고 여러 차례 전화로 내부의 문제점을 알렸지만 묵살됐다”며 “시설장에 내정되고 시청 한 공무원이 ‘시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물어 황당했는데 돌이켜보니 포항시는 이미 내부 문제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A씨는 아이들이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물을 복용하는 모습에 크게 놀랐다. 아이들은 하루 두 차례 약을 먹었고, 복용 후 쉽게 잠들거나 활기를 잃었다. 6명 모두 입소 때 장애가 없었지만, 3명은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고 2명은 지적장애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았다.
A씨는 “지적장애를 이유로 약을 먹는 경우가 없는데 계속 처방을 받아 이상해 직접 병원을 찾아갔다”며 “담당 의사가 보호자인 전 시설장의 말만 듣고 아이의 상태를 판단한 것 같았지만 어떤 약을 복용하는지 더는 알 수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이들이 다녔던 어린이집도 찾았다. 아이들은 정부에서 어린이집에 지급하는 보육비를 빼고 입학금부터 어떤 비용도 내지 않은 것으로 돼있었다. 또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형편이 안타까워 공짜로 준 가방조차 한 번도 메고 오지 않았다. A씨는 “정부에서 양육비로 아이 1명당 매달 80만원씩 개별 통장으로 지급되는데도 아이들은 한겨울 내의도 입지 않고 어린이집을 다녔다고 했다”며 “시설 안에서도 내의가 없어 평상복을 입고 생활하는 등 아이들 옷이나 생활용품이 크게 부족했다”고 했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도 형편 없었다. 정부 지원에도 아이들은 주로 푸드뱅크 등에서 후원하는 식품을 먹었다. 성장이 더딘 편이었고, 체격도 모두 또래보다 왜소했다.
A씨는 첫 출근 후 24일째 되던 날, 아동보호전문기관과 112로 아동학대 사실을 신고했다. 하지만 전 시설장이 A씨를 상대로 아동학대로 맞신고하면서 급기야 전 시설장과 함께 같은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시설에선 일한 20일간 B군이 감금된 사실을 알면서도 방임했다는 이유였다.
그는 “너무 억울하고 황당하지만 아이들이 이제라도 더 나은 시설로 보내진 건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사건이 검찰로 송치됐다고 하니 명백하게 밝혀져 누명을 벗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이어“가정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나쁜 어른들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지적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돼 안타깝다”며 “이 문제가 공론화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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