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증의 대가] 미국선 사법방해죄까지… 허위자료 제출도 처벌

입력
2020.06.13 17: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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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처벌대상 넓고 형량도 높아

거짓말하면 대통령도 탄핵 재판에

한국은 위증사범 좀처럼 줄지 않아

빌 클린턴(오른쪽) 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 직원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연방대배심에서 위증을 했다가 탄핵 일보 직전에까지 몰린 바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빌 클린턴(오른쪽) 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 직원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연방대배심에서 위증을 했다가 탄핵 일보 직전에까지 몰린 바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기억에 반하는 허위 증언, 곧 위증의 대가는 가볍지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위증 사건은 여전히 넘쳐나는 게 현실이다. ‘2019 검찰연감’을 보면, 2000년대 들어 형법상 위증죄로 ‘기소된’ 인원만 연 평균 1,676명에 달한다. 법정에 선 증인이 오른손을 들고 외치는, 형사소송법 제157조 2항에 정해진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는 증인 선서가 무색할 지경이다. ‘위증죄 엄벌’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는 이유도 위증사범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사법 기능과 국가의 형벌권 행사를 방해하는 거짓 진술에 대해 엄벌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주요 선진국들은 법정이나 국회에서의 위증만 문제 삼는 우리나라에 비해 처벌 대상이 훨씬 광범위하고 형량도 높은 편이다. 실체적 진실 발견을 어렵게 하고 사회적 혼란까지 부른다는 점에서, 거짓말 범죄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한국과 유사한 위증죄뿐 아니라, 수사기관 등에서의 허위 진술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사법방해죄’를 연방법에 명시하고 있다. 사법절차가 계속 진행된다는 걸 알고도 이를 방해하거나, 방해할 고의를 갖고 부정한 행위를 하게 되면 형사처벌하도록 한 조항이다. 일반 시민들로 구성돼 피의자 신문 등을 행하는 대배심(grand jury)은 물론, 경찰이나 국세청 등 다른 행정기관의 조사 과정에도 적용된다. 심지어 거짓 증언 이외에, 허위자료 제출 등의 행위도 예외 없이 처벌이 가능하다. 리처드 닉슨(1974년)ㆍ빌 클린턴(1998~99년) 대통령을 의회의 탄핵 재판에 오르게 만든 혐의도 바로 사법방해죄와 위증죄였다

미국에선 이와 별개로 허위진술죄도 별도의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조사 과정에서 선서 없이 내뱉은 거짓말도 처벌 대상으로 정한 것이다. 사실상 사법 절차에 부당한 방식으로 관여하는 행위 일체를 금지하고 있는 셈이다. 연방 양형기준은 기본적으로 징역 15~21개월이지만, 법 집행에 심각한 방해를 초래하거나 타인의 신체나 재산에 피해를 줄 경우엔 가중처벌을 받는다.

독일도 비슷하다. 법원 또는 선서를 행하게 할 권한이 있는 공공기관에서 위증(선서위반죄)을 했을 땐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지고, 선서 없이 거짓 증언을 했을 때(허위진술죄)에도 5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 받도록 했다. 위증 교사에 대해서도 2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일본 형법은 “법률에 의해 선서한 증인이 허위 진술을 한 땐 3개월 이상, 10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선서 후 위증’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건 한국과 비슷하나, 형량 하한선이 존재하고 상한선도 높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 미국에선 경찰관의 허위 증언을 ‘testilying’이라고 별도 지칭하고 있을 정도로 위증에 대한 문제의식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 경찰들 사이에선 ‘범죄자의 유죄 판결을 받기 위해 경찰이 법정에서 사실과는 일치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꼭 거짓으로 볼 수도 없는 진술을 하는 건 범죄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경찰의 위증은 미국 형사사법시스템에서 가장 만연한 형태의 문제라는 보고가 있다”며 “정확한 실태는 알 수 없지만 상당히 많은 형사사건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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