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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절망한 기생충의 저주와 저항하는 피식자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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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비영어권 영화에 대해 ‘넘사벽’이었던 아카데미상을 석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때늦게 영화를 보면서 가졌던 의문이다. 비평가들의 연이은 호평에서 보듯이, 영화의 예술적 완성도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필자는 계층 간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회과학도로서, 이러한 의문의 답을 오늘날 사회 상황과 영화의 메시지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심화가 전 세계적 사회문제로 대두하지 않았다면 두 시간 넘게 자막을 읽어야 하는 동양의 블랙코미디가 미국인들에게 과연 이 정도나 울림을 줄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 말이다. 여기서는 기생충이 우화적으로 묘사한 우리 사회의 계층 구조를 유사한 외국영화와 비교해서 한번 톺아보고자 한다.
기생충을 보다가 대번에 떠오른 영화는 ‘델리카트슨 사람들’-원제목은 델리카트슨(Delicatessen)-이라는 프랑스 영화이다. 물론 기생충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이 영화 역시 독일 표현주의풍의 다소 초현실적이고 기괴한 분위기의 블랙코미디라는 점에서 기생충과 매우 유사할 뿐 아니라, 특히 영화에 나타난 계층 구조가 지상-지하의 공간 구조와 겹쳐 있다는 점을 꼭 빼닮았다.
굶주림이 만연한 가상의 시대, 1층에 푸줏간이 있는 낡은 건물이 있다. 지배계층을 상징하는 푸줏간 주인은 건물주로서 임대료를 챙길 뿐 아니라 무시무시한 부업(?), 즉 극 중 주인공과 같이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을 살해하여 그 고기를 건물 세입자들에게 파는 방식으로 지상세계의 화폐인 콩과 옥수수를 엄청나게 축적한다. 평범한 서민층을 나타내는 세입자들은 푸줏간 주인에게 경제적으로 또는 심지어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푸줏간 주인이 살해한 다른 서민의 인육을 사 먹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이 세계의 지하에는 하류층을 상징하는 지하인간들이 거주한다. 이들은 고기를 먹는 지상세계의 인간들과 달리 그들의 화폐인 콩과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며, 이 때문인지 지상세계 인간들과 전쟁 중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지하인간들은 서민층을 대표하는 주인공이 푸줏간 주인에게 살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인공의 연인인 푸줏간 주인의 딸과 연대하여 함께 맞서기도 한다. 즉, 영화 델리카트슨의 세계는 포식자로서 지배계층을 상징하는 푸줏간 주인과 여기에 종속된 세입자로서의 서민, 그리고 주인공과 같이 먹히거나 먹힐 위험에 처한 피식자로서의 서민과 인간을 잡아먹는 지상세계에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지하인간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계층구조는 기생충의 그것과 언뜻 닮은 듯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우선 포식자로서의 지배계층이 피식자인 서민을 살해하거나 세입자로서의 서민을 경제적 또는 성적으로 착취하는 델리카트슨과 달리, 기생충에서는 지배계층인 박사장(이선균 분) 부부가 반지하에 사는 서민층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에게 부지불식간에 오히려 이용당한다. 제목 그대로 서민이 기생하고 지배계층은 숙주가 된다. 더 중요한 차이는 지하에 사는 하류층의 저항방식에 있다. 상기한 대로 델리카트슨에서는 하류층인 지하인간들이 주인공 커플과 같은 서민과 연대하여 지배계층에 대항한다. 반면 기생충에서는 박사장 저택 지하에 숨어 살던 근세(박명훈 분)가 기택의 가족을 공격하면서, 이를 발단으로 결국 박사장을 포함한 모두가 비극적 파국을 맞게 된다. 기생충끼리의 싸움이 서로는 물론 숙주까지 파괴한 것이다. 이처럼 델리카트슨의 하류층이 연대를 통한 사회적 저항을 실천한다면, 기생충에서의 저항은 절망한 개인의 모두에 대한 저주로 끝나고 만다.
기생충 대 숙주와 피식자 대 포식자. 절망한 개인의 저주와 연대를 통한 저항. 어느 쪽이 현실에 가까운가? 그리고 더 암울한가?
박강우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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