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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과학의 쓰나미를 조심하라

입력
2020.06.13 04:30
23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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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쓰나미.’ 지난 5월 29일 자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등장한 표현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연구 결과가 그야말로 쏟아지고 있는 현상을 가리켰다. 1월부터 발표된 논문이 3만1,000편을 넘겼다. 하루 평균 200편 이상이 나온 셈이다. 이달 중순까지 5만2,000편을 넘을 것이란다.

얼핏 생각하면 연구가 많을수록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쓰나미’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용어이다. 글을 보니 과연 그랬다. 미국의 연구자 여러 명의 입에서 ‘즐거운 비명’이 아니라 ‘근심스러운 하소연’이 나왔다. 논문을 모두 읽을 시간도, 그 가치와 한계를 제대로 파악할 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과학적 근거를 충분히 갖춘 논문이 얼마나 될지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내용이 부실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한들 이미 사회에 급속히 전파돼 버린 잘못된 정보를 수정해 알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최소한 코로나19에 대한 연구 결과는, 요즘 언론 매체에서 유행하는 ‘팩트 체크’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될 것 같다. 어제의 진실이 오늘 거짓이 되고, 내일 또 다른 결론이 예고되고 있으니 말이다. ‘빠른 과학’을 경계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과학계에서 커지는 이유이다.

대표 사례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느닷없어 보이는 발언으로 세계적인 이목을 끈 말라리아약(하이드록시클로로퀸)에 대한 논문들이다. 사건은 지난 3월 20일 프랑스 연구진이 코로나19의 치료에 이 약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과학계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데이터의 처리와 분석 방법이 믿을 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이 약을 ‘기적의 치료제’라고 공개적으로 치켜세웠다.

한편에서는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나왔다. 예를 들어 5월 세계 최고의 의학학술지인 ‘랜싯’과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에 말라리아약이 코로나19에 효과가 없을뿐더러 위험할 수 있다는 논문 2편이 잇따라 발표됐다. 마침 임상시험을 준비해 오던 세계보건기구(WHO)는 진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미신에 사로잡힌 비이성적 지도자로 묘사되곤 했다.

그런데 이달 초 두 논문은 모두 저자들에 의해 취소됐다. 공통으로 데이터의 출처에 대한 신뢰성이 문제였는데, 원인은 둘째치고 결과가 가져온 충격이 컸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행동이 과학적으로 옳았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최고의 학술지 발표를 통해 정설로 굳어지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WHO는 임상시험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9일 자 ‘사이언스’ 뉴스는 또 한 번의 반전을 예고했다. 말라리아약의 효과가 별달리 없다는 연구 결과 3개가 곧 발표된다고 한다. 이제 뭐라 한들 놀랍지도 믿기지도 않을 것 같다. 그나마 동료 평가를 거친 학술지 논문과는 달리, 동료 평가 없이 출판 전 연구 결과를 공개하는 문건인 프리프린트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당초 빠른 데이터 공유를 통해 연구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상호 협력을 기대하며 만들어진 보고 문건이다. 하지만 요즘의 위기 상황에서는 민감한 사안이 학문적 검증 없이 ‘과학의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수단이 돼버리기도 한다. 실제로 4월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코로나19 사망률이 계절성 독감보다 훨씬 높다는 WHO의 주장을 프리프린트로 반박했다가 연구 방법이 미흡해 큰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 주장이 급속히 확산된 후였다. 1월 인도 연구진이 코로나19가 에이즈바이러스(HIV)와 유사하다는 주장을 담은 프리프린트는 세계인의 공포감을 부추기다 이내 취소됐다. 그 사이 트윗은 1만7,000건 이상, 언론 매체의 소개는 25회 이상 이뤄졌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빠른 과학’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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