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백 한국영화 100년]액션 스쿨 만들고 와이어 액션 등 주도... 충무로 무술판을 바꾸다

입력
2020.06.13 04:30

 <66> 무술감독 정두홍 

 

 ※ 한국영화가 지난해 탄생 100년을 맞았습니다.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며 영화보다 재미있는 한국영화 100년의 이야기를 영화전문가를 통해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서 들려드립니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한국 영화 산업화 과정에서 스턴트와 액션을 체계화한 영화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두홍 무술감독이 액션과 연을 맺게 된 건, 한 편의 무협영화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저 시골 충남 부여군 칠산리’에서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중학생 때 서울 친척집에 놀러 갔다가 구로동의 동시상영관에서 홍콩 감독 장처(장철ㆍ張徹)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1967)를 보게 된다. 극장도 TV도 없는 ‘완전 깡촌’에서 자란 그로서는 영화에 대한 첫 경험이었고, 감명 받은 나머지 부모님의 꾸짖음과 친구들의 놀림을 받으면서도 나무칼을 쥔 채 영화 속 왕위(왕우ㆍ王羽)의 흉내를 내며 놀았다고 한다.

박치기로 일세를 풍미한 프로레슬러 김일, “중절모 차림에 주먹을 날리며 멋지게 여자를 구하는”(중앙일보 2006년 5월 10일자) ‘다찌마리’(액션 장면이나 액션 영화를 일컫는 충무로 속어) 배우들 장동휘와 박노식, 이대근이나 백일섭도 그의 어릴 적 우상이었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영화 '짝패'에서 주연 자리를 처음 꿰차며 류승완 감독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17세에 태권도 입문 

운동을 하겠다고 작심한 건 ‘어린이 태권왕’ 대회를 방송으로 보고 나서였다. “초등부는 남녀가 함께 겨루는데 여자아이가 태권왕이 되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여자 아이가 너무 위대해 보였고, 나도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영화월간지 키노 2000년 8월호)

그러나 집안은 가난했고 당장 배고픈 마당에 꿈을 운운하는 건 사치였다. 중학교 졸업하고 나면 농사지으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17세 때, 집 근처에 태권도 도장이 생기면서 정 감독의 인생은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 한 달 관비 5,000원을 감당할 형편이 아니었던 정두홍은 하루 차비 50원과 누나들이 명절 때 준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도장을 몰래 다녔고,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에 정진하는 열정과 성실함, 남다른 소질은 이각수 관장의 눈길을 끌었다.

두 달 지나 밀린 관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정 감독은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태권도를 배웠다 하면 깡패 되기 십상이라 여긴 당시의 풍조 탓에 운동을 반대한 어머니는 도장을 찾아가 “돈 없어서 못 가르치니 못나오게 해달라” 부탁했다. 하지만 제자의 재능을 아꼈던 이 관장은 뒤에 정 감독을 불러다 말했다. “엄마한테 돈 달라 하지 마, 너 무조건 여기 다녀.” 스승의 배려로 배움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 경험은 훗날 서울액션스쿨에서 회비를 받지 않고 교육생들을 가르치는 운영방침으로 이어진다. 체육특기생으로 인천체육전문대에 입학한 정 감독은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새마을 합기도 시범단에 선발되어 2년 간 세계를 돌아다녔고, 군에 입대해서는 특기를 살려 강원도 전방 수색대에서 무술교관으로 복무했다.

제대 후 국회의원 수행요원으로 일하던 정 감독은 함께 일하던 직장 선배로부터 스턴트맨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포졸 형래와 벌레 삼총사’(1989)의 벌레 역으로 영화계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하지만 경험이 없었던 탓에 상대배우와 합을 주고받는다는 개념조차 몰랐던 그는 촬영 첫 날 실수를 연발하다 구석으로 쫓겨나는 굴욕을 겪는다. 그럼에도 정 감독은 현장을 떠나지 않았고 잡일을 도맡는 틈틈이 영화 액션의 실제와 요령을 몸으로 익혀나갔다.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1990)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끊겨 있던 한국 액션 영화의 명맥을 부활시킨 이 작품에서 정 감독은 혼마찌 패거리 중 한 명으로 엑스트라 출연하는 동시에, 김동회 역으로 출연한 이일재의 스턴트 대역을 맡아 박상민의 대역을 한 김영모 무술감독과 합을 맞췄다.

석 달간 보라매 공원에서 체력을 단련하고, 밤 11시에서 새벽 6시까지 합기도 도장에서 훈련하며 다져진 정 감독의 몸놀림은 현장에서 한 장면 촬영이 끝날 때마다 스태프들의 기립박수를 받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장군의 아들 2’(1991)에서는 작게나마 대사가 주어지는 단역을 받았고, 택견을 접목한 능란한 발차기 솜씨로 다시 한 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실력을 입증한 정 감독은 이일목 감독의 ‘시라소니’(1992)로 처음 무술감독의 직함을 얻게 된다. 그의 나이 26세 때의 일이었다. 그 후 정 감독은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1994), 김영빈 감독의 ‘테러리스트’(1995)에서 각각 박중훈과 최민수의 스턴트 대역과 무술감독을 겸하며 업계에서의 입지를 다져나가게 된다.

“난 이 판을 바꾸고 싶었다. 교육을 시킨 건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는데, 이쪽에 왔더니 직업에 귀천이 엄청나게 많았다. 똑같은 사람인데 너무 다른 대우였다. 그때 난 상처를 많이 받았고 그래서 판을 뒤집고 싶어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달려들었다.”(‘SBS 스페셜’ 2019년 9월 2일)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던 정두홍 무술감독의 모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충무로 무술판을 바꾸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턴트맨이란 으악하고 죽는다고 ‘으악새’, 방망이로 때리면 빵빵 나가떨어져야 해서 ‘방망이’라는 멸칭으로 불렸고, “엑스트라와 함께 영화 현장에서 가장 사람 취급 못 받는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몸을 갈아 넣다시피 하는 위험한 직업임에도 보수는 쥐꼬리만 했고, 처우 역시 열악했다. 차량 스턴트 장면을 하면 차체에 파이프를 덧대서 운전자를 보호하는 특수 장비가 필요한데, 그마저 없어서 촬영에 들어가면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식이었다. 정 감독 또한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숱하게 겪어야 했다.

장현수 감독의 ‘본 투 킬’(1996)에서는 정우성의 대역을, 김성수 감독의 ‘런어웨이’(1995)에서는 이병헌의 대역으로 두 현장을 오가며 작업했는데, ‘본 투 킬’ 현장에서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져 왼쪽 쇄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도 새벽에 병원을 빠져 나왔고, 곧바로 ‘런어웨이’ 현장에 들어가 이병헌이 자동차에 치이는 장면을 위해 붕대를 묶은 채 여섯 번 몸을 날렸다. 매번 기절하고 다시 하길 반복한 정 감독은 이때의 부상으로 쇄골에만 볼트를 12개 박는 수술을 받게 된다.

체계적인 액션 인재 양성과 선진화된 작업 환경의 필요성을 절감한 정 감독은 동료들과 손잡고 1998년 7월 1일 보라매 공원에 ‘한국영화 액션의 산실’이 될 서울액션스쿨을 세운다. 2003년 체육관 리모델링 문제로 퇴거 지시를 받고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서울액션스쿨은 ‘실미도’(2003)를 같이하던 강우석 감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현재의 경기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합을 짜고 몸으로 때우는 전통적인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던 정 감독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무술감독의 역할을 재정립하며 한국 영화 액션의 혁신을 주도해나갔다. 김성수 감독의 ‘태양은 없다’(1998),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2000)에서는 선수들의 자료필름을 닥치는 대로 구해보며 권투와 프로레슬링의 시각적 표현에 공을 들였고, ‘쉬리’(1999)와 ‘무사’(2001)에서는 각각 할리우드 현대 액션물과 서부극, 무협영화를 참고 삼아 연구하며 한국형 블록버스터 액션의 기준을 세웠다. 드라마 ‘명성황후’(2002)의 뮤직비디오 제작 때는 와이어 액션의 가능성을 실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피도 눈물도 없이’(2002)에 이르러, 액션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 애증의 파트너를 만나게 된다. 자타공인 ‘액션 키드’ 류승완 감독이었다.

정두홍 무술감독이 주연한 액션영화 '난폭한 기록'(2019). 블러썸픽처스 제공

 

 ◇무술 친구 류승완을 만나다 

“인터넷판 ‘다찌마와 리’(2000)를 연출한 후에 액션 테크닉에 갈증이 많았어요. 다음 레벨로 구사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여하튼 정두홍이 최고였으니까요. (중략) ‘피도 눈물도 없이’ 땐 둘 다 뜨거운 기운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늘 부딪치고 덜컥거렸죠. (중략) ‘아라한 장풍 대작전’(2004) 하면서 현장 규모가 커지고 힘든 일들이 많았어요. 나 이걸 마지막으로 저 사람과 다신 안 할 거라고 결심하는 순간도 있었는데 굉장히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나니까 유대감이 생겼어요. 서로 의지가 되더라구요.”(김영진, 류승완 지음 ‘류승완의 자세’)

류 감독이 ‘콘티에서 계산된 액션대로 가기 원하고 화려한 동작’을 원했던 반면, 정두홍은 ‘상황에 맞아떨어지는 감정을 표현’하는 액션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러나 두 사람 간에 있은 창조적 견해의 차이는 절충점을 찾으면서 서로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시너지를 가져왔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무협 액션, ‘주먹이 운다’(2005)의 사실적인 권투 연출, ‘생짜 액션’ 활극 ‘짝패’(2006) 등을 거치며 결속을 굳힌 류승완, 정두홍 ‘짝패’는 대작 ‘베를린’(2013)과 ‘베테랑’(2015), ‘군함도’(2017)까지 함께 하며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갔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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