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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ㆍ박종철ㆍ전태일…열사의 부모에서 민주주의 발전 공로자로

입력
2020.06.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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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콜콜 Who]사상 첫 훈장 서훈…배은심 여사ㆍ고(故) 이소선 여사ㆍ박정기 옹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고(故)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가 ‘서른 세 번째 6월 10일에 보내는 편지’ 낭독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고(故)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가 ‘서른 세 번째 6월 10일에 보내는 편지’ 낭독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소선 어머니는 전태일 옆에 가 계시고 (박)종철 아버지도 아들하고 같이 있어서 나 혼자 이렇게 훈장을 받네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10일 33주년 6ㆍ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앞서 세상을 떠난 민주주의 열사들의 부모들을 기렸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후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워한 건데요. 그는 “유가협(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외에 오늘 이 자리에서 훈장을 받는 다른 수여자들 모두 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희생한, 정말 훈장을 받아 마땅하신 분들”이라고 말했어요.

1987년 군사 독재에 항거한 고(故) 이한열·박종철 열사, 1970년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분신한 고 전태일 열사까지, 생떼 같은 자식을 떠나 보낸 부모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평범했던 이들은 자식의 죽음을 계기로 역사와 사회 현실에 눈을 뜨게 됐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습니다.

1970년 아들의 영결식에서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가 전태일 열사 영정을 들고 오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0년 아들의 영결식에서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가 전태일 열사 영정을 들고 오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7년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진 지 이틀째인 6월 11일, 중환자실 앞에서 어머니 배은심(가운데)씨가 큰 누나(왼쪽 첫번째) 등 가족과 함께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7년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진 지 이틀째인 6월 11일, 중환자실 앞에서 어머니 배은심(가운데)씨가 큰 누나(왼쪽 첫번째) 등 가족과 함께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는 분신 항거하며 죽어간 아들을 대신해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헌 옷을 팔아 생계를 꾸리면서도 노동 운동가나 민주화 운동가가 수배되면 이들을 먹이고 숨겨줬다고 해요.

아들의 친구들과 1970년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노동운동을 벌인 게 시작입니다. 불법 구금되는 시련에도 1986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유족을 모아 유가협을 세워 투쟁을 멈추지 않았죠. 이 여사는 40년 넘게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며 네 차례나 옥고를 치렀어요.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의 현장에도 그가 있었죠. 그래서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연배가 위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를 어머니로 불렀다고 해요. 그는 2011년 9월 81세로 아들의 곁으로 떠났습니다.

시위를 하던 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숨진 후, 평범한 주부였던 배 여사도 투사가 됐습니다. 유가협을 통해 열사들의 죽음이 있는 현장에 달려가기 시작한 건데요. 배 여사는 박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 옹(翁)과 30년 넘게 활동했습니다.

1997년 유가협 회장을 맡은 그는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촉구하며 422일 동안 천막 농성을 펼쳤는데요. 1999년 결국 법안 통과를 끌어냈죠.

1987년 아들을 떠나 보낸 직후 박종철군 부모가 상심에 젖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7년 아들을 떠나 보낸 직후 박종철군 부모가 상심에 젖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3년 제26주년 6ㆍ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 고 박정기 옹과 고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제26주년 6ㆍ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 고 박정기 옹과 고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그린 영화 ‘1987’의 이 장면 기억 나시나요. 군부 정권의 고문에 아들을 잃은 박 옹이 아들의 유해를 임진강에 뿌리며 실제로 한 말입니다.

부산시청 수도국 공무원이었던 박 옹도 박 열사가 사망한 후 거리로 나섰습니다. 1988년부터 유가협 부회장, 이사장을 지냈어요. 고령의 몸을 이끌고 배 여사와 함께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웠죠. 그는 2018년 3월 입원해 있던 요양병원에서 문무일 전 검찰총장에게 과거 검찰의 부실수사와 인권침해에 대해 사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89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열사들의 부모들은 자식의 이름 뒤에서 묵묵히 민주주의를 위해 힘써왔는데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부가 민주주의 발전 유공 부문을 신설해 훈장을 수여한 이유도 납득할 만하죠. 이들 투쟁의 가치와 시대정신은 오래도록 희석되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계승돼야 할 겁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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