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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밥 말리는 왜 폭동을 노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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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메이카 출신의 전설적인 레게 가수 밥 말리는 1973년 발표한 노래 ‘방화와 약탈(Burnin’ and Lootin’)’의 첫 부분을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누군지 알 수 없이 제복만 보이는 폭력 경찰이 나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마치 이 노래 가사처럼 경찰의 폭압적인 공권력 행사로 시민이 숨진 사건 때문에 지난 몇 주 동안 시위가 일어나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다. 경찰폭력 규탄시위는 일부에서 폭력적으로 변하면서 폭동으로 비화, 낮에는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도시의 거리가 밤이 되면 폭동의 전형적인 모습인 방화와 약탈의 현장으로 변하곤 한다.
폭동은 집단행동의 한 종류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 흉년이 드는 등 곡식이 부족할 때 발생하는 식량폭동을 비롯해 이질적인 종교집단 간의 갈등으로 시작되는 종교폭동, 인종 차별 문제가 원인이 되는 인종폭동 등 다양하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것으로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폭행한 백인 경찰들이 무죄로 풀려나면서 폭발한 인종폭동이다. 대형 스포츠 경기가 끝난 뒤 승리에 취해 또는 패배를 못 이긴 팬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1990년대 중ㆍ후반 미국의 프로농구팀 시카고 불스가 연달아 우승하면서 흥분을 이기지 못한 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상점들이 털리고 불타기도 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폭동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어떤 집단이 감정을 폭력적으로 발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폭동은 미국 사회의 흑인들과 같이 오랜 기간 지배체제의 압도적인 힘에 눌려 있던 사회적 약자들이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경제부터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무시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상태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이 폭동이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말리의 노래는 진행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강을 건너야 책임자와 이야기할 수 있나. 그래서 오늘밤 우리는 방화와 약탈을 벌일 것이다.”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짓눌려 숨지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면서 수많은 흑인들은 자신의 목이 졸림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부모, 그 부모들이 수백 년 동안 느껴 왔던 숨막힘과 두려움, 무력감에 떨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살 때 만난 한 흑인 아저씨는 운전할 때 평생 제한속도를 1마일도 넘긴 적이 없다고 했다. 속도위반과 같이 작은 위법행위로 경찰에 단속을 당하던 중 총에 맞은 흑인들을 수도 없이 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내아이들이 자라면 거리에서 뛰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범법자로 몰려 총에 맞을까 봐. 불과 몇 주 전에도 조깅하던 흑인 10대가 백인 부자의 총에 맞아 숨졌다. 시위 또는 폭동에 나서면서 미국의 사회적 약자들은 변하지 않는 상황에 절망했을 것이다. 말리의 노래는 절박하게 흐른다. “오늘밤 우리는 흐느끼고 울부짖을 것이다.”
폭동은 참가자들이 감정을 폭발적으로 배출하는 현상이라는 것에 대해 사회집단 이론으로 설명하려고도 한다. 사회학자 허버트 블루머는 대규모 집단을 크게 군중(Crowd)과 대중(Mass), 공중(Public)으로 나누었다. 군중은 감정을 공유하고 대중은 아무것도 공유하지 못하는 모래알 같은 개인의 집합이며 공중은 공동체의 문제를 이성적으로 토론하는 집단이라고 했다. 약탈과 방화를 자행하며 감정을 분출하는 군중들이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결국 감정이 가라앉으면서 폭동은 사라지고 문제의 해결은 공중에게 남겨진다. 말리의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또 모든 더러움과 거짓을 불태우자.” 인종차별과 불평등, 공권력의 폭압에 반대하는 현재의 시위가 더는 감정 폭발이 아닌 이성적인 문제 해결로 이어져 인종주의의 더러운 거짓을 불태우기를 기다린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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