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종인에 의한, 김종인을 위한?

입력
2020.06.03 18:00

예의 파격 행보에 통합당 변화 기대 높지만

불도저식 카리스마 의존한 혁신은 한계 분명

결별 되풀이 않으려면 구성원 동참 끌어내길

김종인(오른쪽)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3일 오전 국회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 기자

‘김종인’은 몸담은 조직을 위기에서 구해내는(혹은 구해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갖게 만드는) 신묘한 능력을 지닌 국내 정치사의 희귀한 인물이다. 절박한 상황이 되면 진보 보수, 여야를 가리지 않고 그를 찾는다. 그가 먼저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유비가 세 번이나 초막으로 걸음 할 때까지 꼿꼿하던 제갈량처럼 찾아오고 또 찾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전권을 달라, 독대만 된다, 임기 보장해라 같은 오만해 보이는 그의 요구는 대부분 그대로 수용된다.

그렇게 전두환 신군부의 정권 찬탈을 위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했고, 노태우 정권에선 청와대 경제수석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그를 향해 러브콜을 보냈고,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총선과 대선을 모두 승리하는 합작품을 만들어냈다. 문재인 대통령과도 2016년 20대 총선에서 손을 잡고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1석차 근소한 승리를 이끌어 냈다.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은 4ㆍ15 총선에서의 참패로 종지부를 찍는가 했지만, 그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내부의 ‘자강론’ 열망을 잠재우고 결국 통합당은 그에게 1년간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를 맡겼다.

그의 ‘철새 행보’를 보는 시선이 고울 수는 없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180도 돌변해 물고 뜯던 적과 손을 잡을 수 있는 건지, 정체성이 판이한 당을 옮겨다니는 김 위원장이 추구하는 가치란 무엇인지, 선거 승리를 통한 존재감 과시 혹은 찰나의 권력 만이 그의 지향점은 아닌 건지.

그럼에도 통합당에 눈길조차 주지 않던 이들이 막 출범한 ‘김종인 호’ 에 관심을 갖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진보 성향의 한 지인은 “지금껏 통합당이 뭘 한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했지만, 이번에는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궁금증이 생긴다”고 했다. 비대위 구성 첫날 그가 통합당 의원들에게 날린 예고편만 봐도 그렇다. “내가 과거 경제민주화처럼 새로운 것들을 내놓더라도 놀라지 마라.”

더 주목되는 건 파격 그 자체보다 담고자 하는 메시지다. 김종인 비대위의 정책 슬로건은 ‘약자와의 동행’이다. 진보를 능가하는 쇄신이라며 진취를 말하고 변화를 말한다. 정부조차 “적절치 않다”고 선을 긋는 기본소득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통 크게 정부 여당의 3차 추경에도 협조하겠다고 말한다. ‘여의도 차르’라는 그의 별명이 말하듯 칼을 뽑았으니 화끈하게 휘두를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해왔던 통합당이 이번에는 뭔가 달라지지 않을지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한다.

역설적이게도 우려가 교차하는 것 역시 이 지점이다. 김 위원장은 껴안았다 등 돌리기를 반복해온 것을 두고 상대에 책임을 전가해 왔다. 자서전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19대 총선과 대선에서는 정치인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고, 20대 총선에서는 정당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다”며 그들과 결별한 이유를 적었다.

적어도 반은 틀렸다고 본다. 탁월한 감각으로 판세를 뒤집을 어젠다를 절묘하게 발굴해 일사천리로 밀어붙이지만, 그것이 본인 개인기에 의존하는 것일 뿐 당내 구성원들과의 충분한 소통이 낳은 결과는 아니라는데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봐서다. 박근혜 정부가 그와 결별하고 경제민주화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것도, 20대 총선 승리 후 친문 세력과의 갈등이 더 커진 것도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벌써부터 나오는 당내 반발 기류-유사민주당을 만들자는 것이냐, 보수라는 정체성을 왜 포기해야 하느냐 등등-에 김 위원장은 예의 카리스마로 “시비 걸지 말라”고 했다. 시원해서 통쾌하긴 하지만, 이래서야 껍데기만이 아닌 구성원들의 체질까지 바꿀 수 있을까 싶다. 아무리 옳은 방향의 눈길 끄는 정책을 쏟아낸다 해도, 그것이 ‘통합당 정책’이 아닌 ‘김종인 정책’이어선 결국엔 또다시 등을 돌릴 테니까.

김종인의, 김종인에 의한, 김종인을 위한 통합당이 되는 걸 경계하길 바란다. 보수가 아니라도 괜찮은 보수정당(그는 보수란 단어를 버리라 하지만)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이영태 디지털콘텐츠국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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