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칼럼] ‘슬기로운 의정생활’의 조건

입력
2020.05.28 18:00

떠나는 5선 정병국의 ‘일하는 국회’ 주문

낙선 초선 김해영 ‘침묵 않는 양심’’ 강조

내일 출범 21대 국회 “희망, 미래 팔아야”

미래통합당 5선인 정병국 의원(오른쪽)이 더불어민주당 5선 원혜영 의원과 함께 지난달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20대 국회의 공과를 평가하며 21대 국회는 다수와 소수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세상에, ‘일하는 국회법’이라니…. 20대 국회를 끝으로 여의도를 떠나는 정병국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 20일 마지막 본회의에서 “국회가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고, 정치가 국가의 미래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사과하며 4ㆍ15 총선 당선자들에게 ‘일하는 국회법, 공전없는 국회법’을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처리해 달라고 각별히 요청했다. 통합당에서 자신과 김무성 정갑윤 원유철, 민주당에서 원혜영 이석현 이종걸 등 불출마한 5선 이상 여야 중진 의원 7명이 함께 발의한 법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상도동계 막내로 정치에 입문, 정권의 부침에 따라 여야와 정부를 오가며 나름 잘나갔던 의정생활 20년 소회를 “회한과 반성”으로 압축한 그의 주문은 의외였다. 당장 ‘지금껏 국회는 노는 곳이었나’라는 반문과 함께 쓴웃음이 나온다. 법안의 공식 명칭은 ‘국회법 개정안’이고 내용도 여야의 책략과 다툼에 따른 국회 공전을 최소화하는 장치를 마련해 신뢰를 얻자는 부처님 말씀이다. 어디서 본 듯해 기록을 들춰 보니 패스트트랙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이맘 때 ‘여야가 일하는 국회법을 통과시키고 정부 이송 문서에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가 공동서명하는 이벤트를 가졌다’는 뉴스가 있다.

개혁 색채를 잃지 않으며 ‘슬기로운 의정생활’을 했다고 평가되는 정 의원이 회한과 격정을 토로하는 자리에서 한물간 법안을 새삼 끄집어낸 이유는 뭘까. 내용은 좀 다르지만 21대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국회법 개정을 1호 개혁과제로 꼽아 자칫 오해의 소지도 있는데 말이다. 민주당 개정안은 벌칙 조항을 대폭 강화한 데다 특히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 체계ㆍ자구 심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이다. 우군을 합쳐 100석 남짓으로 전락한 통합당으로선 비토권마저 위협받게 되니 수용하기 어려운 안이다.

결국 정 의원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진하는 중진들의 이름을 빌려 ‘다름을 인정하고 품격과 권위, 신뢰를 잃지 않는’ 국회의 뉴노멀을 당부한 것은 국회문법의 개혁이 정치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절박함을 표현한 것이다. 민생을 팽개친 난장판이 이어질 때 그들 역시 당파적 이익과 진영 논리 뒤에서 숨죽였던 기억이 생생한 만큼, 뒤늦은 한탄으로 책임을 회피하며 꽁무니빼는 낡은 수법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의석의 과다를 넘어 다름을 존중하자는 그의 고언은 흘려들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야 통틀어 초선 의원이 과반(151명)을 넘는 21대 국회가 눈여겨보고 귀담아들을 인물은 민주당 김해영 의원이다. 30대 흙수저 변호사 출신인 그는 20대 총선 때 부산에서 이변을 일으키며 당선된 후 최연소 최고위원까지 꿰찼으나 이번 총선에서 석패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 등 주요 고비 때마다 지도부에 역행하는 소신 발언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행적은 낙선 후 더욱 빛을 발한다. 민주당이 총선 전 비례 위성정당 창당 쪽으로 기울 때 “명분이 없다”고 반대했던 그는 총선 후 “180석의 자만과 주류에 편승하는 침묵”을 경계했고 최근 윤미향 당선자 논란 때도 당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며 의혹을 불식하는 선제적 조치를 요구하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양심의 소리에 따라 국민이 잠시 맡겨준 역할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수행해 후회는 없다”는 그는 이제 국회와 한 발 떨어져 사회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고민하고 성찰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다른 김해영’이 국민의 삶과 생각을 중시하며 양심의 소리를 거침없이 낼 것으로 믿기에. ‘또다른 금태섭’이라도 상관없다.

내일부터 21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다. 게임의 룰이 확 바뀔 운동장에서 슬기롭게 코로나19 이후의 새 질서를 만드는 것은 모두에게 부여된 첫 번째 과제다. 정치는 희망과 미래를 파는 비즈니스라고 했다. 지난 총선은 시대착오적인 세력에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심판대였다. 그런데 거대 여당은 벌써 힘을 주체하지 못해 독선ㆍ독단ㆍ독식ㆍ독주의 과거 유혹에 빠지는 낌새다. 서늘한 두려움 없는 의정생활은 회한으로 얼룩진 국회법 타령만 반복할 뿐이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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