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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트루스오디세이] 운동을 위해 할머니들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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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기억을 지워버린 기억의 연대
※시대의 독설가, 피아 구분 없는 저격수를 자처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미디어 이론을 통해 조명해보는 글을 씁니다. 매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얼마 전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종군위안부의 상징적 인물의 발언이라 파장은 컸다. 사태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야당과 언론에서는 정의기억연대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고, 이에 맞서 윤미향 당선자는 ‘할머니의 기자회견에 배후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의 남편은 ‘이용수 할머니가 평소에 목돈을 원했다.’는 글을 리트윗하기까지 했다.
◇치마저고리 소녀는 누구인가
언론과 야당의 공세에 윤 당선자는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며 “겁나지 않는다. 당당히 맞서겠다”고 대꾸했다. 낯익은 ‘조국 프레임’이다. 이 마법의 프레임은 진상규명의 필요를 졸지에 진영수호의 사명으로 뒤바꿔놓는다. 김두관 의원은 정의연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일본극우를 도와주는 “신(新) 친일 행위”로 규정했고, 원내대표를 비롯해 14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진영을 수호하는 게 그렇게도 성스러운 일일까. 영화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감독은 이용수 할머니가 “원래 그런 분”이라며 "당신들의 친할머니들도 맨날 이랬다저랬다 하시지 않느냐”고 발언했다. 배우 김의성은 진상을 파악하지도 않고 SNS에 일단 응원의 글부터 올렸다. “윤미향 당선자와 정의연, 더욱 응원합니다.” 유희종 교수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할머니의 기억이 왜곡된 것 같다”며 “검증”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최민희 전 의원은 이 사건의 배경을 제시한다. “수요집회가 눈엣가시였던 자들은 그의 국회진출이 무서운 게 아닐까?” 페미니스트 노혜경씨도 한 마디 거든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열리던 집회가 국회의사당에서 매일같이 열린다고 상상해 보라.” 이 사건에서 “역설적으로 윤 당선인이 얼마나 껄끄럽고 무서운 존재인지 볼 수 있다.” 이 모두가 윤미향의 국회 입성을 두려워하는 ‘토착왜구’ 세력의 음모라는 얘기다.
이 프레임 속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졸지에 ‘성치 않은 정신으로 목돈에 눈이 멀어 누군가의 사주로 소동을 일으킨 토착왜구’가 되고 만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 프레임을 아예 포스터로 제작했다. “정의연을 공격하는 자가 토착왜구다.” 포스터 속의 저 치마저고리 소녀는 더 이상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다. 매서운 눈으로 횃불을 치켜들고 “No 아베”를 외치는 저 소녀는 실은 윤미향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누구를 위한 운동인가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 얘기하자. 위안부운동의 대모 김문숙(93)씨에 따르면 윤미향씨가 대표가 된 후 정대협은 모금에 집착했다고 한다. “오로지 돈, 돈, 돈이다. 수요집회에서 모금을 하고 전 세계에서 기부금을 모으고 있다.” 운동의 본말이 전도되어 버린 것이다.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초로 일본군위안부로 인정받은 심미자 할머니도 2004년 이를 지적하며 ‘피해자를 앞세운 정대협의 모금활동을 금지해 달라’는 소송을 낸 바 있다.
이 모금에 참여한 이들은 전액은 아니더라도 기부금의 상당액이 할머니들을 위해 쓰이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할머니들을 위해 쓰인 액수는 그 기대에 비해 턱없이 적어 보인다. 이용수 할머니의 경우 난방지원을 못 받아 민주당 대구시당 김우철 사무처장이 깔아준 온수매트로 겨울을 나야 했다. 정의연의 해명대로 “정기방문에 정서적 안정 지원”까지 했다면, 이런 미담은 굳이 생기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아파트를 경매로 사는 재테크 감각으로 안성 쉼터를 시가의 두 배나 주고 산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이미 명성교회에서 제공한 쉼터가 있는데, 그 외진 곳에 새 쉼터를 마련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할머니들을 위한 곳이 아니고, 비싸게 사주는 것 외에 딱히 다른 용도가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이용수 할머니는 쉼터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단다. 도대체 할머니들이 쉬는 곳에서 왜 엉뚱하게 민중당 행사가 열리는가.
소식지는 남편에게 맡기고, 쉼터 관리는 아버지에게 맡겼다. 회계부실로 모금회의 경고를 받았으니, 기부금의 용처도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에서 거둔 조의금의 일부는 “할머니의 평소 뜻을 함께 실천해가고 있는 단체들”에게 돌아갔다. 김 할머니가 NL(민족해방)이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재일 조선인 학교 학생들을 위해 제정된 김복동 장학금이 그쪽 계열 활동가 자녀들에게까지 수여됐다.
◇기억에서 지워진 할머니
남산 ‘기억의 터’ 조형물에 새겨진 247명 위안부 피해자 명단에 심미자 할머니의 이름은 빠져 있다. 할머니는 정대협을 향해 “당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 말한 바 있다. 2008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8년 후에 조형물이 세워질 것을 예견하고 ‘내 이름을 빼달라’고 했을 리는 만무할 터. 왜 심 할머니의 이름이 빠졌는지는 정의연만이 안다.
당시 정대협과 심미자 할머니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정대협에서 상정한 위안부의 이상형이 있다. ‘위안부는 순결한 소녀다. 인권투사로서 위안부는 일본정부의 사과 없이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으면 안 된다.’ 맞은편에는 그 고고한 이념형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 다양한 사연을 지닌 현실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다. ‘형편이 어려운 할머니들이 가해자 자손이 죄스러움을 씻기 위해 건네주는 위로금을 받는 게 왜 나쁘냐?’
있을 수 있는 갈등이다. 문제는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당시 정대협의 대표는 세미나에서 “아시아여성기금을 받는다면 자원해 나간 공창이 되는 것”이라 발언했다고 한다. 현실의 할머니들을 자신들의 이상형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 것이다. 거기에 맞춰지기 거부한 할머니들은 결국 운동에서 배척당해야 했다. 할머니들을 위해 운동이 존재하는 것이지, 운동을 위해 할머니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잖은가.
국민성금으로 세워진 ‘기억의 터’ 조형물에서 심미자 할머니의 이름이 지워진 것은 상징적이다. ‘정의기억연대’에서 일본이 일본군위안부로 공인한 할머니의 존재를 정작 한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기억’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는 이것이 심 할머니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할머니 역시 “원래 그런 분”, “사주 받은 분”, 혹은 “목돈을 원했던 분”으로 신속히 타자화됐다.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운동은 이제 윤미향과 같은 활동가의 것이 된다. 수원평화나비 김향미 대표는 석사논문으로 윤미향 위인전을 썼다. “들국화(윤미향)의 움직임은 사명감으로, 의무감으로 부채로 실천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다.” “들국화의 운동방식은 자신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피해 할머니들, 단체가 더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 운동 속에는 들국화가 자리 잡고 함께 있었다.” 지난 4월 김 대표의 자제는 우연히 김복동 장학금을 받았다.
할머니들에게 위안부의 이데아를 요구했던 윤미향의 삶은 저 위인전에 그려진 것처럼 이상적이지 않았다. 시민의 성금과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인권단체를 그는 개인의 자영업으로 만들어 버렸다. 황당한 것은, 한국여성단체연합 산하 34개 여성단체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아니라 외려 횡령과 배임의 의혹을 받는 윤미향을 지지하고 나섰다는 사실. 이 선언을 주도한 핵심인사들 역시 우연히 정의연의 이사라고 한다.
이들이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윤미향을 옹호한 것은, 그들 또한 윤미향 부류의 운동권 서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이 상상계와 실재계 사이에 드러난 괴리를 애써 덮으려 한다. 자기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자신들이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허위의식으로 포장해 왔기 때문이다. 누구든 그 괴리를 드러내는 이들은 ‘토착왜구’로 몰아붙이면 그만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남은 낡은 운동권 서사의 기능이다.
“정의연을 공격하는 자가 토착왜구다.” 저 포스터는 이 운동권 서사에 지배당한 대중의 의식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 안에서 윤미향들은 할머니의 치마저고리를 빼앗아 입고는 “No 아베”를 외친다. ‘기억을 위한 연대’에서 할머니의 기억을 지워버렸다. 치부를 드러내어 치료하는 대신에 덮어 버리기에 급급하다. 아베가 하는 짓과 대체 뭐가 다른가. 그 운동의 끝에서 이 땅의 윤미향들은 ‘No 아베’를 외치는 이상한 아베가 되었다.
진중권 미학자,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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