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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만 문신하나요? 누구에겐 몸에 지닌 일기장 같죠

입력
2020.05.31 06:00
9면

 2020 문신 시술 현장 르포 

문신업소 내부에는 밑그림에 입힐 수십 가지 색깔의 잉크가 준비돼 있다. 문신사는 바늘이 꽂힌 기계에 잉크를 묻힌 뒤 붓으로 색칠하듯 시술한다. 강보인 인턴기자
문신업소 내부에는 밑그림에 입힐 수십 가지 색깔의 잉크가 준비돼 있다. 문신사는 바늘이 꽂힌 기계에 잉크를 묻힌 뒤 붓으로 색칠하듯 시술한다. 강보인 인턴기자

‘문신한 사람들이 우르르… 도심 한복판서 난투극’ ‘유명배우, 과거 문신 사진 화제… 관심 감사’

문신이 제목에 들어간 최근 기사들이다. 문신은 여전히 조직폭력배의 상징 혹은 불건전한 행위로 인식돼 있다.

불안감을 조성하고 공중보건에도 좋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금지한 현행법도 이런 인식이 반영돼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정치인이나 연예인, 운동선수도 시술을 받았다고 당당히 말할 정도로 문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다. 국내 문신 시술 인구도 1,300만명(반영구미용사중앙회 2016년 추산)에 달할 정도다.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서 만난 전모씨는 “타투(tattoo)는 항상 몸에 가지고 다니는 일기장 같다”고 말하는 문신 애호가다. 그는 자신의 몸에 벌써 네 번이나 문신을 새겨 넣었다. 독서광인 전씨는 책을 읽은 후 머릿속에서 맴도는 감동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시술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늑골 아래에는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고백소설 ‘황야의 이리’를 시각화한 문신이 새겨져 있다. 첫 시술을 받기 전엔 제법 긴장됐지만, 이후엔 책과 문신을 연결하는 작업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전씨는 이날 발목 부위에 문신을 새기려고 문신업소를 다시 찾았다. 문신사 백모씨는 시술 전에 전씨로부터 동의서를 받았다. 피부 알레르기 등 문신 시술에 부담이 될만한 질병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동의 절차가 끝나자 백씨는 사전 연락을 통해 전씨와 상의를 마친 문신 도안을 가져왔다. 도안은 고객 취향을 반영해 문신사가 제시하는 그림 중에서 결정한다.

시술 가격은 문신사 경력과 그림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보통 가로세로 10㎝ 기준으로 초보 문신사의 경우 5~10만원대, 중급자는 20~30만원대, 상급자는 40~50만원대다. 평소 서핑을 즐긴다는 전씨는 캔버스에 유채로 표현한 바다 그림을 발목에 새기기로 했다. 백씨는 바다 그림을 작은 크기로 인쇄해 전씨 발목에 대본 뒤 그 위에 먹지(한쪽 또는 양쪽 면에 검은 칠을 한 얇은 종이)를 대고 윤곽을 펜으로 그렸다. 그의 발목에 먹지를 찍어내니 밑그림이 그려졌다. 판화 같은 기법이었다.

다음은 시술이다. 시술은 시술대와 장비, 손잡이 등이 일회용 비닐로 감싸진 곳에서 이뤄졌다. 피부에 닿는 모든 곳에 세균 감염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시술이 이뤄질 부위에는 감염을 막기 위해 면도와 소독 작업이 진행됐다. 본격적인 시술이 시작되자 백씨는 팔레트에 짜인 물감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전씨 발목에 그려진 바다를 칠해 나갔다. 일회용 바늘이 꽂힌 기계에 잉크를 조금씩 묻혀가며 시술했다. 그의 손놀림은 붓질과 다름없었다. 시술이 끝나자 백씨는 시술 부위에 필름을 부착했다. 덧나지 않기 위해 붙이는 반창고다. 일주일이면 상처가 아문다고 했다. 전씨는 문신이 아문 뒤 서핑을 하러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신사 백씨의 말에 따르면 문신을 예술행위나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백씨는 14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몸에 그림을 그려왔는데,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에 흉터가 남은 사람에게 했던 시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상처를 볼 때마다 사고 당시 기억이 떠올라 괴롭다며 백씨를 찾아온 이에게 그는 꽃과 나비 모양을 떠올렸다. 콤플렉스였던 상처 자국은 백씨 손을 거쳐 작품이 됐고, 잊고 싶었던 기억은 이제 자랑거리로 변했다고 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손님이 줄어들 법도 했지만, 하루에 10~15명씩 꾸준히 찾아온다는 게 백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백씨처럼 비의료인이 전문업소를 차려놓고 행하는 문신 시술은 법적으론 보호대상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에서 마련한 위생지침이 없어, 그는 외국 규정을 참고해 자체적으로 기준을 만들었다. 문신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불법으로 규정된 탓에 불가피한 자구책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백씨는 “시술 부작용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합법적 지침이 없다 보니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더구나 불법 시술 논란은 자연스럽게 탈세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국에 영업신고를 했느냐는 질문에 백씨는 “영화와 일러스트 작업도 병행하고 있어 디자인 분야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문신 작업의 경우 현금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강보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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