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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초록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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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보슬 봄비라고 하기엔 길게 내렸던 비가 그쳤습니다. 메말랐던 땅속 저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온갖 생명을 들깨웠을 겁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초록은 깊어만 갑니다. 초록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가장 보드랍고 맑은 초록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불과 한 달 전엔 초록이 되기 전에 봄빛으로 숲은 참으로 고왔습니다. 발긋한 새싹부터 시작하여, 회녹빛, 황록빛, 연둣빛……. 세상의 연한 빛깔은 다 모여 만들어 낸, 꽃보다도 화사했던 그 봄날의 산빛에 마음을 흔들리며 여러 날을 보냈습니다. 눈이 시원해질 만큼 초록으로 바뀐 숲 빛깔을 보며 ‘아! 나무들아 본격적으로 열심히 살아 볼 모양이구나’ 하며 말을 건네는 순간, 각기 다른 수많은 초록이 눈에 들왔습니다. 유한한 언어로는 ‘초록’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오늘 제 눈 앞에 펼쳐진 각각의 초록을 나열하면 이 지면이 꽉 차도 모자랄 듯합니다.
초록이란 단어는 어감이 참 좋아 마치 우리말처럼 느껴지는데, 풀(草)과 녹색(綠)을 합한 한자어입니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속담이 있듯이(물론 속담의 의미는 좀 다릅니다만) 풀의 색만을 말하지는 않고 대부분 녹색과 함께 쓰입니다. 520~570nm 정도의 파장을 갖는 무지개색에서 네 번째로 위치한 색이지만 색을 섬세하게 구분하는 분야에 따라 녹색보다 조금 더 푸른색을 띤 색깔로 말하기도 합니다. 초록에 빠져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세상의 초록빛을 다 표현할 수 없으면서도 푸른 숲, 신호등의 파란 불처럼 ‘푸르다’란 단어가 초록에도 확장되어 쓰이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푸르다’와 ‘풀’의 옛말이 각각 ‘프르다’와 ‘플’이었으며 ‘풋풋하다’는 ‘풋’도 어원을 함께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하니, 모든 글자가 딱 요즈음의 숲의 빛과 잘 어우러집니다.
알고 계시듯 식물의 잎이 초록으로 보이는 데 가장 기여가 큰 것은 엽록소(chlorophyll)이지요. 잎의 표변 아래에 특화되어 발달한 엽육 세포의 엽록체라는 작은 입자 속에 켜켜이 쌓인 엽록소가 들어 있습니다. 엽록체는 태양으로부터 빛을 모으고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 뿌리를 통해 흡수하여 이동한 물을 가지고 포도당을 만들어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산소가 만들어져 잎의 구멍을 통해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이고요. 납작한 잎이 많은 이유도 빛을 최대한 많이 받아들이고 양분이나 이산화탄소의 이동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태양광선은 모든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바로 이 엽록소가 초록색을 제외한 대부분의 색을 흡수해 버리고, 초록빛만이 잎에서 반사되거나 투과를 하므로 우리 눈에 잎들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것이라네요. 인간의 시각 신경이 가장 잘 반응하는 색도,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색도 초록이어서 우리는 이 엽록소 덕분에 늦은 봄의 싱그러움을 한껏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초록색 잎들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결과로 스스로를 성장시키면서도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있으니 나무와 풀들은 참으로 멋진 존재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 초록빛 마음이 깃들어 행동하며 그로써 세상을 푸르게 변화시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글은 부족함이 많지만 제 삶이 초록을 지향하도록 터를 만들어준 광릉숲에서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어떤 숲에서라도 풀과 나무들의 이야기는 계속하고 살겠지만, 지면을 통해서라도 오랜 독자분들께는 공직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다가왔음을 인사드리는 게 예의라 싶어 알립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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