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2030 세상보기] 1인분의 지식을 경계하라

입력
2020.05.16 04:3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 있다. 책을 읽고 지식을 늘리는 학식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나를 위해서 지식이 늘어날수록 좋다는 다다익선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즘 부쩍 더 넓은 의미로 와 닿는다.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 변화하는 세상을 이해해보려 하는 것, 혹시라도 내가 모르기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는 없는지 한번 더 살피고 마음을 쏟는 것. 즉, 사회적인 의미로 확장된 책임에 가까운 ‘앎’이다.

나이가 들수록 누구나 경험이 늘어나지만 그것에 갇히게 되는 경우도 많다는 함정이 있다. 자신이 알고 겪은 것이 절대적 참이라고 믿는 것이다. 제 아무리 다양한 경험을 가졌어도 그것은 1인분이다. 1인분의 지식이 진리가 되는 순간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는 어렵다. 만약 ‘나 때는 말이야’를 앞세워 자신의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 항상 통하기를 바란다면 존중받기는커녕 소외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생각보다 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상담을 하면 내담자들의 마음의 상처는 대부분 그들을 아끼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과 관련되어 있다. 그들은 ‘너를 위해서’ ‘너를 사랑해서’ ‘다 너 좋으라고’ 라는 이유를 붙인다. 하지만 내담자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안다면 자신의 뜻을 주장하기보다 조금 더 살피고 이해해 보려 하지 않을까. 부부, 부모-자녀 관계에서 가장 아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이 관계에서 ‘내가 가장 잘 안다’는 과신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배우자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가까이서 보아 왔기 때문에, 자녀에 대해서는 내가 낳아 길렀기 때문에 내가 가장 잘 안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그 앎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일방통행한다. 더 알아가려는 노력을 거둘수록 갈등과 상처는 더욱 커질 것이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미국으로 인도심사 절차 중에 있는 손정우의 아버지가 아들의 미국 송환을 막아 달라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불우한 가정환경을 언급하며 강간미수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니 이해를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100명의 사전 동의 요건을 채우지 못해 글은 공개조차 되지 못했다. 부모에게 어느 자식이 소중하지 않겠냐마는 성착취 사건이 대대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이 시국에 내 자식은 ‘천성이 착한 아이’라며 공개적으로 청원을 하는 마음을 헤아리기는 어렵다. 범죄자의 가장 가까운 관계인 아버지만이 손씨가 얼마나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고, 영유아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민의 공분을 사고 피해자와 피해자 부모들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르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것에 갇히는 순간 더 알려고 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된다. 그 어리석음은 경우에 따라 범죄가 되고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

이제 젊은 세대들은 윗세대에게 묻고 배우려 하기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지식을 접한다. 그만큼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더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면 사회에 적응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내 경험을 내세워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들거나 나의 믿음을 받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 ‘라떼는 말이야’라며 조롱 섞인 말이 유행인 것만 봐도 그렇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은 지식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변화하는 세상을 받아들이고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갖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나 자신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언젠가 중년 혹은 노년이 되었을 때 젊은 세대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내 생각만 주장하는 어른이기보다는, 모든 것을 흡수하려는 어린아이처럼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김혜령 작가ㆍ상담심리사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