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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코로나 시대의 어린이들을 위하여

입력
2020.05.02 04:30
22면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과 최은하 서울의대 소아과학교실 교수(왼쪽), 김예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29일 충북 청주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코로나19 어린이 특집 브리핑에서 어린이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과 최은하 서울의대 소아과학교실 교수(왼쪽), 김예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29일 충북 청주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코로나19 어린이 특집 브리핑에서 어린이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지난 4월 29일,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마련한 어린이 특집 정례브리핑을 봤다. 본격적인 브리핑이 시작되기 전 정은경 본부장은 말했다. 어린이들이 코로나19와 관련해 우울감과 불안감, 두려운 감정을 느끼고 있으며,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막연한 공포를 심어주지 말고 정확한 정보로 자주 대화를 나눠달라고 말이다. 이어 코로나19에는 왜 걸리는 건지,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해도 되는지, 코로나19에 걸렸다가 나은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 어린이들의 질문이 줄줄이 등장했다. 그 어떤 기자회견보다 진지한 물음과 답변에 나 또한 자세를 고쳐 앉고 브리핑을 경청했다.

이날 나온 모든 질문과 답변이 적절하고 또 좋았지만, 한 어린이의 “코로나19는 없어질 수 있나요?”라는 물음에 대한 최은화 서울의대 소아과학교실 교수의 답변이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일부를 옮겨본다. “앞으로도 사실, 이런 바이러스는 출현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올지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에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얻은 경험, 그리고 대처방법,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건강한 생활습관을 만들어야 할지를 계속해서 (생각)한다면, 무서운 바이러스가 온다고 해도 우리가 어느 정도는 대처할 준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나는 최은화 교수가 백 퍼센트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은 것에 무척 놀랐다. 만약 그가 귀여운 어린이들의 불안감을 달래줘야겠다고만 생각했다면, ‘바이러스는 쉽게 사라진다’ ‘앞으로는 바이러스가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 테니 안심해라’ 정도로 가볍게 대답하고 지나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번 브리핑은 어린이들을 우리 사회의 시민으로 환대하는 자리였고, 따라서 그들에게 대강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명확히 답변하는 일이 더없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동안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한 뉴스는 수도 없이 쏟아졌지만 그 어디에서도 어린이들을 수신자로 상정한 뉴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개학이 연기되고, 온라인으로 모든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고, 바깥에도 나가지 못하는 등 어린이들의 삶이야말로 이전과 비교해 가장 크게 바뀌었음에도 정작 어린이들은 정보에서 배제돼 있었다. 코로나19가 처음 발병하기 시작한 시기를 떠올려보자.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감각,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확산되고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없다는 감각은 어른인 우리에게도 불안감과 두려움을 안기지 않았던가? 어린이에게도 마찬가지다. 지금 어린이들의 우울감과 불안감, 두려운 감정은 상황을 구체적으로 아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모르는 데서 온다.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 시즌 2에는 선생님이 기후변화에 관해 자세히 알려주는 바람에 아이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 기절했다고 믿는 부모들이 나온다. 학교는 학부모들을 초청해 긴급회의를 연다. 학부모 중 한 명인 매들린 메켄지(리즈 위더스푼)는 모두에게 말한다. “제 생각엔 우리가 아이들을 속이는 게 문제예요. (중략) 우리 아이들은 두려워해요. 우린 아이들을 준비시키지 않고 행복한 결말과 행복한 이야기와 거짓말을 주입시켜요. 그리고 이런 말을 해요. ‘괜찮아, 괜찮을 거야.’ 우린 아이들에게 말해야 해요. 사실의 일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다 말해야 해요.”

코로나19 이후로 달라질 세상은 우리보다 어린이들이 훨씬 더 길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관점이라면, 어린이들이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제대로 응시하고 대응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어린이를 미래의 시민이 아니라 함께 현재를 사는 시민으로 대하는 옳은 자세일 것 같다.

동등한 시민으로서, 모든 어린이에게 어린이날 축하 인사를 건넨다.

황효진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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