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캐슬, 사실은?]수사,기소 이후 사건 넘겨받아... 유죄 끌어내는 ‘음지의 검사’

입력
2020.04.27 04:30

 <16> 공판검사, 수사를 유죄로 만드는 사람들 

 

 ※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간이 조명될 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법조계.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들만의 세상에는 속설과 관행도 무성합니다. ‘법조캐슬’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일보>가 격주 월요일마다 그 이면을 뒤집어 보여 드립니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검사내전’에서 이선웅(이선균 분)은 지청장의 ‘길들이기’를 거부하다 공판검사 보직으로 문책성 인사를 당한다. 공판검사로 법정에 선 이선웅의 모습(위). 한편, 수사검사인 차명주(정려원 분)도 법정에 나갈 때가 있다. 수사검사가 직접 공판을 책임지는 ‘직관 사건’일 경우다. 에스피스 제공

영화나 드라마에서 검사가 등장하는 주무대는 밝은 법정보다는 어두침침한 조사실이다. 법정에서 열변을 토하는 검사가 나오더라도 수사검사가 직접 공판에 나선 이른바 ‘직관사건’처럼 묘사된다. 실제 재판 참석을 전담하는 검사가 따로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알더라도 초임 검사들이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한직 정도로 인식하기 일쑤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평소 후배들에게 “여러분의 배틀필드(전장)는 조사실이 아닌 법정”이라 강조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론 이 ‘전장’에서 싸우면서도, 수사검사에 비해 주목 받지 못하는 이들이 바로 공판검사다. 그렇다면 애초 공판검사를 따로 두는 이유는 뭘까? 정말 공판검사는 수사검사 뒤치다꺼리를 해 주는 조연에 불과한 걸까?

 ◇‘기소 이후’를 책임지는 공판검사 

공판검사는 넓게는 기소 후 공판에 들어가는 검사, 검찰 직제상으로 공판부에 소속됐거나 수사부서에서 공판 업무를 겸임하는 검사를 뜻한다. 올해 2월 기준 직제상으로는 검사 정원의 12%인 285명의 검사가 공판 업무를 맡고 있다.

물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사건이나 사법농단 의혹 같은 주요 사건이나 복잡한 일부 사건은 수사검사가 직접 공판을 담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밖에 대다수 사건은 공판검사가 넘겨받아 홀로 법정에 선다.

여기에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법원이 사건을 여러 재판부에 무작위로 배당해 한 검사가 기소한 사건들의 공판 일정이 겹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을 잘 아는 기소검사가 공판까지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러자면 분신술이라도 써야 한다. 대신 특정 재판부를 전담하는 공판검사를 두고 사건을 넘겨받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담당 재판부 특성을 파악해서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공판검사의 업무는 기소검사에게 ‘공판카드’를 받으며 시작된다. 짧게는 A4 용지 한 쪽, 복잡한 사건은 열 쪽이 되기도 하는 공판카드에는 기소검사의 구형 의견, 공소사실과 증거기록이 요약돼 있다. 첫 공판이 열리고 여기서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면 재판이 이어진다. 이어지는 재판에서 피고인ㆍ증인 신문을 하고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면서 공소사실을 입증하고 구형을 한다. 선고가 내려지면 상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까지가 공판검사의 일이다.

[저작권 한국일보]공판검사 수/2020-04-26(한국일보)

 ◇공판검사는 수사ㆍ기소검사의 조연? 

얼핏 보기에 공판검사는 기소검사가 정한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2000년대 중반, 수사 과정보다 재판 중 나오는 증거에 무게를 두는 ‘공판중심주의’가 자리잡은 뒤엔 특히 그렇다. 한 일선 검찰청 공판부 관계자는 “죄질을 입증하는 ‘양형자료’를 적절하게 제출해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은 형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공판검사의 중요한 임무”라며 “공판검사의 역량이 양형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6년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공판검사회의에서 공판검사들이 공판중심주의에 따른 모의재판을 열어 피고인을 신문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공판중심주의가 자리잡으면서 공판검사들의 역할과 책임도 점점 커졌다. 류효진 기자

임무를 잘 수행하려면 단시간에 증거기록을 완벽히 파악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피고인ㆍ증인의 거짓 주장을 바로 지적할 수 있는 순발력, 판사가 쟁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읽어내는 법률 지식도 필수다. 때로는 수사 과정에서 나오지 않은 증거를 직접 찾아내야 한다. 공판부 근무 경력이 많은 한 검사는 “특히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전문적인 법률 지식이 없는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공소사실을 설득해야 해, 공판검사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공판검사의 적극성과 창의력이 재판 향방을 가른 경우도 꽤 있다. 지난해 한 존속살해 사건 국민참여재판 때는 근처 의과대학에서 빌려온 인체모형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부패한 사체의 부검 결과는 ‘사인 불명’이었고 목 졸림과 구타 흔적이 있다는 부검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였는데, 공판검사는 인체모형을 활용해 부검의에게 상처 부위와 정도를 구체적으로 진술하도록 유도했다. 이는 결국 배심원의 만장일치 유죄 평결로 이어졌다.

피해자가 구체적 진술을 할 수 없었던 장애인 미성년자 강제추행 사건에서 수사 과정에는 집어내지 못한 폐쇄회로(CC)TV 범행 장면을 찾아내는가 하면, 보이스피싱 재판 과정에서 과거 이미 확정 판결을 받은 다른 조직원들이 숨긴 범죄수익을 추가로 인지해 수 억원대 범죄 수익을 추징한 경우도 있었다.

사상 첫 국민참여재판을 모티브로 형사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배심원들’. 일반 시민들로 이뤄진 배심원들에게 공소사실을 설득해야 하는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특히 공판검사의 역량이 재판 결과를 크게 좌우하곤 한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음지에서 홀대받는 공판검사들 

그럼에도 공판검사는 홀대를 받아 온 게 사실이다.“일한 만큼 인정받지 못한다는 형사부와 비교해도 공판부는 기피부서였다”는 게 검찰 한 공판부 관계자 설명이다. 공판부에는 특히 초임검사가 많이 배치돼 왔는데, ‘공판을 경험해야 어떻게 수사하고 기소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수사부서에 비해 비중을 낮게 둔 탓도 크다.

그러면서 일부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공판검사가 사건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곤 한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재판에서 새 정황이 드러나도 아무 대응을 않은 채 기소검사 의견대로 구형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실상 피고인 이야기만 듣게 되다 보니 재판이 겉돈다”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맡은 사건 중에 공판검사 실수로 엉뚱한 증거가 법정에 제출된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여전히 경력 5년 미만 검사가 공판부 42.1%를 차지하는 구조, 공판의 양과 중요성이 확대되는 속도를 뒤따르지 못하는 인력 보강 등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공판검사 한 명이 한 재판부를 전담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실제론 절반이 넘는 공판검사가 2개 이상 재판부를 전담하고 많게는 100건이 넘는 사건을 동시에 처리한다. 결국 주 4일은 오전ㆍ오후 재판에 참석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재판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나 퇴근 후, 주말에나 기록 검토를 할 수밖에 없다.

대검 공판송무부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이 제한되면 공판검사의 책임은 더욱 커지는 만큼, 인력구조 개선, 전문 검사 양성 등 시급한 과제가 많다”며 공판부 개선 과제를 설명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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