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칼럼] 세상에, ‘듣보잡 선거’도 유분수지

입력
2020.04.02 18:00

원칙ㆍ명분 팽개친 꼼수ㆍ반칙 ‘코로나 총선’

21대 국회, 진영 바이러스 창궐 후폭풍 우려

유권자 연대와 심판만이 ‘코로나 정치’ 종식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2일 오후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21대 총선 중앙선대위 합동 출정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 등이 1일 국회 로텐더홀 홀 앞 계단에서 열린 '나라살리기·경제살리기' 공동 선언식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세상에,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듣보잡 선거’도 유분수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4ㆍ15 총선의 초입에서 정치권을 조망하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임기 내내 격돌과 파행으로 입법 실적과 정치 행태 등 모든 면에서 낙제점을 기록한 20대 국회가 최악인 줄 알았는데, 6월 출범할 21대 국회에 견주면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도 나오게 생겼다. 아무리 세기적 재난인 코로나19 광풍 속에 얼렁뚱땅 치러지는 것이라 해도 지금껏 이런 막장 선거는 없었다. 꼼수 가짜 반칙 위장 위성 등 사술이 판치고 같은 하늘 아래 살지 않을 것처럼 막말이 난무한다. 어쩌면 코로나19보다, 사람도 정책도 메시지도 없이 진영 바이러스만 창궐하는 4ㆍ15 선거의 후유증이 더 클지 모른다.

사회적 패권 교체의 완성을 도모하는 세력과 정권 탈환의 교두보 구축을 꿈꾸는 세력이 별러온 전장에서 진흙탕 싸움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여야 정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을 놓고 1년 가까이 논란과 충돌을 벌인 것은 전초전 성격이 짙다. 그렇다 해도 “승리보다 더 큰 원칙과 명분은 없다”는 깃발을 거리낌없이 쳐들고 ‘비난은 잠시, 책임은 4년’이란 궤변을 공공연히 늘어놓는 것은 낯뜨겁다. 비례 위성정당 가능성을 얕보다 뒤늦게 “의석 도둑질을 잡는 경찰” 운운하며 더 큰 도둑질을 마다않는 행태는 또 뭔가.

이 과정에서 미래통합당과 한국당이 비례대표 정통성 논란과 ‘호떡(뒤집듯 뒤집는) 공천’ 추태를 연출한 것은 더불어민주당과 시민당에 행운이었다. ‘배신 공방’과 ‘듣보잡 연대’에 쏠릴 비판이 미풍에 그쳤으니 말이다. 하지만 두 당을 포함한 제도권 정당이 삿대질과 헛발질을 일삼는 사이에 막장공천 물의를 빚은 ‘허경영당’이 여성공천보조금 8억여원을 독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이 장면은 의원 꿔오기만으로 60여억원의 국고보조금을 탄 한국당과 함께 21대 총선 최악의 장면 중 하나로 꼽힐 것이다. 비례대표를 노리는 군소정당 난립으로 투표용지가 48.1㎝에 이른 것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정치개혁과 세대교체를 앞세워 공천혁명을 부르짖던 거대 양당의 약속이 총선 승리라는 당면과제 앞에서 휴지조각이 된 것은 새롭지 않다. 그러나 형제당, 자매당, 효자당 운운하며 충성을 강요하고 서약하는 행태는 정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퇴행이다. 박근혜 정부 몰락의 출발점이 된 진박 소동의 판박이다. 중앙선관위가 시종 기계적 중립과 소극적 태도로 거대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 놀음을 방조해 선거 국면을 코로나적 혼란상황으로 몰고 간 책임도 꼭 짚어야 한다. 모정당과 위성정당의 공동선대위는 불법이지만 선거대책 공동회의와 공동 마케팅은 합법이라는 해석은 선관위의 면피주의와 눈치보기가 빚어낸 코미디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면서 인류가 이 전쟁에 패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 위기를 지난다 해도 얼마나 많은 삶이 무너질지, 또 후폭풍과 후유증은 어떻게 다가올지 짐작하기 어렵다. 금세기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코로나19 공습의 문명사적 의미와 교훈을 분석하는 지구촌 석학들의 글에서 리더십 공백과 정치 불신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도 흥미롭다. 자화자찬과 아전인수에 빠진 정치세력을 견제하는 힘은 시민적 역량 강화, 곧 자발성과 연대임도 입증됐다.

정부가 초중고 개학을 또 연기하며 단계적 ‘온라인 개학’ 방침을 내놓고 긴급재난지원금을 뿌려야 할 정도로 코로나 혼란 상황이 지속돼 국민들의 총선 열기는 과거 같지 않다. 그러나 국민을 우롱하는 ‘듣보잡 선거’를 꼼꼼히 따져보고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다면 플라톤의 경구처럼 그 대가는 ‘저질스러운 세력에게 지배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악이 승리하는데 필요한 조건은 오로지 선의 무관심’이라는 에드먼드 버크의 지적 역시 체제의 타락마저 우려되는 이런 상황을 염두에 뒀을지 모른다. 주인들이 나설 때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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