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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청와대 메시지가 흔들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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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아닌 한국의 투명 대처에 잇따른 호평
마스크ㆍ中 입국 등 靑 메시지 소통은 미흡
위기 시 대통령 말ㆍ행동 모든 게 관리돼야
코로나19가 두 달 만에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이른 상황은 ‘바이러스는 국경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계화 시대에 국경 봉쇄나 입국 차단은 단지 바이러스 확산을 잠시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이다. 봉쇄 같은 강경책 대신 시민들의 협조에 바탕한 한국의 민주주의 대처 방식에 찬사가 잇따르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점령한 지금, 승패는 결국 각 나라의 방역 능력과 리더십, 시민 의식에 달려 있다. 보수 야당에서 주장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방역 실패 논란도 의미가 퇴색됐다. 코로나 진원지인 중국, 도쿄올림픽 사수에 방역을 소홀히 한 일본, 감염 진단조차 제대로 못하는 미국, 속수무책인 유럽 등과 상대적 비교 우위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전염병에 덧씌워진 ‘정치 공세’는 언젠가 실상이 드러나게 돼 있다.
하지만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재난 수습의 최종 책임자인 청와대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위기 관리의 핵심인 대통령의 메시지 전달에서는 적잖은 문제를 남겼다. 쟁점이 불거졌을 때 타이밍을 놓치거나 잘못된 메시지로 정부의 방역 능력과 신뢰가 손상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가장 논란이 됐던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는 중요한 순간에 청와대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지난 4일 중국 후베이성 입국 금지 이후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중국 눈치 보기’라는 비판이 쏟아졌으나 청와대 입장이 나온 것은 지난달 27일로 3주가 지난 뒤였다. 그때는 ‘중국에 굴종한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국민청원이 이미 100만명을 훌쩍 넘어간 시점이다. ‘방역의 실효적 측면과 국민의 이익을 냉정하게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는 해명을 내놓기가 그리 어려웠을까.
‘마스크 대란’도 메시지 관리의 전형적인 실패다. 초기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마스크 착용 여부에 대해 말이 달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스크가 시민들의 유일한 보호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온 사회가 홍역을 앓고 있다. 미 질병통제센터(CDC)의 코로나19 예방 수칙에는 ‘환자가 아닌 일반인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 ‘아픈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돼있고 세계보건기구(WHO) 권고도 같다. 혼란에 빠진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메시지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청와대 책임이다. 그러고도 폭발적 수요를 예측 못 해 “마스크 생산능력 충분”이라고 대통령 말을 허언으로 만들었다.
정부를 공격하는 단골 소재가 된 “머잖아 코로나는 종식될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과 ‘짜파구리 오찬’ 사진의 홍보용 방출도 잘못된 메시지 생산의 결과다. 전염병 국면에서 리더에게 요구되는 최우선 원칙인 ‘불확실성을 충분히 설명하라’는 매뉴얼을 무시한 대가는 크다. 사람들이 진짜 패닉에 빠지는 것은 정부의 호언장담이 뒤집힐 때다.
대통령 메시지 관리의 모범적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 2007년 태안 앞바다 원유 유출 사건이다. 사고 다음날 현장에 달려간 노무현 대통령은 날씨 탓, 비용 탓만 하는 관료들에게 변명하지 못할 지시를 내렸다. ‘방제 비용은 나중에 재판을 통해 청구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총동원하라.’ ‘첫날은 날씨가 나빠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국민이 용서 안 한다.’ 시민들이 나서 위기를 극복한 데는 이런 위기 대처 메시지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위기에 직면할수록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냐에 따라 위기가 증폭되기도 하고 잦아들기도 한다. 여당과 재정당국 간 신경전이 홍남기 경제부총리 거취 논란으로 비화할 조짐이 보이자 문 대통령이 13일 홍 부총리에게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잘해달라”고 힘을 실어준 것은 적절한 메시지 관리다. 위기 국면에서는 대통령이 상황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국민들에게 줘야 한다. 코로나19 종식 때까지 청와대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대통령의 메시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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