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암흑의 시대’라고? 중세는 억울하다

입력
2020.03.12 18:00

- 대 피터르 브뤼헐의 ‘혼인식에서의 춤’ –

대 피터르 브뤼헐, ‘혼인식에서의 춤’, 1566, 패널에 유채, 119.4 x 157.5 cm, 디트로이트 미술관. 중세는 5~10세기를 초기, 11~13세기를 중기, 14~16세기 초까지를 말기로 구분하기도 한다. 14~16세기를 중세 말기 대신, 르네상스로 언급하여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전통적인 관점이나, 하위징아 등의 역사가들은 중세 말기로 본다. 이 그림이 그려진 때는 1566년으로 근대에 가까운 중세 말기, 혹은 르네상스 후기지만, 여전히 중세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중세라는 단어에서 대체로 어둠, 야만, 비위생, 흑사병, 마녀사냥 등 온갖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런 인식은 고대문명을 계승한다는 기치 아래 중세를 전면 부정한 르네상스 인본주의와 중세를 미신과 비합리의 시대로 폄하한 18세기 계몽주의 역사관의 영향이다.

그러나 현대의 역사가들은 더 이상 서양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중세시대의 건축물과 미술품, 문헌 자료들은 중세가 어둠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중세에는 찬란한 기독교 문화가 꽃피었고, 교회와 수도원을 중심으로 신학, 고전, 법학, 문학, 의학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볼로냐 대학과 파리 대학 등 최초의 대학들도 등장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여유롭고 활기가 넘친 시대였고, 사람들은 높은 생활 수준을 누렸다. 물론 중세인들도 기근과 빈곤, 전쟁, 전염병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그것은 중세의 일부분일 뿐이다.

위 그림은 16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the Elder)이 농가의 혼인식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잔치를 벌이는 농민들의 즐겁고 활기찬 생활을 보여준다. 교회와 영주에게 핍박받는 중세인들의 비참하고 칙칙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좁은 공간에 빽빽이 밀집된 인물들이 정밀한 관찰에 의해 세세히 묘사되어 있다. 중세 복장을 한 125명의 남녀가 야외결혼식에 참석해 신랑신부를 축하하고 있다. 신부는 당시 관습인 검은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춤추고 있고, 술을 마시는 무리, 키스하는 커플들도 보인다. 맨 앞줄 오른쪽 끝에서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음악가와 그 옆에서 춤추는 두 남자는 남성의 생식기 부분을 덮는 주머니인 코드피스(Codpiece)가 달린 바지를 입고 있다. 재미있게도 코드피스가 과장되게 불뚝 솟아 있는데, 화가는 남성의 왕성한 성적 에너지를 통해 농민들의 건강하고 원초적인 삶의 활기를 표현한 듯하다. 당시 교회는 춤을 사회악으로 보고 금지했지만, 사람들은 주일마다 교회 뜰에서 성가가 아니라 선정적인 연가와 이교도적인 민요를 부르며 춤을 추곤 했다. 심지어, 교회는 젊은 남녀가 은밀한 신호와 시선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우는 장소이기도 했다.

중세인은 현대인과 많이 달랐을까? 그들도 우리처럼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고, 삶의 즐거움과 세속적 쾌락을 추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전염병에 대한 그들의 태도 역시 우리와 비슷한 점이 있다. 중세교회가 전염병은 신앙의 시험대이며 기도로 극복해야 한다고 설교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비슷한 말을 되풀이하는 이들이 있다. 또한 중세인들이 그랬듯이, 현대인도 전염병에 대한 가짜 뉴스에 쉽게 선동되고, 근거 없는 의학지식과 상술에 휘둘리며, 특정집단에 대한 차별과 거친 분노에 사로잡힌다. 흔히 우리는 ‘중세적 광신’이란 말을 쓰며 중세를 경멸하지만, 정작 주변에서 이와 유사한 정치적 광신, 종교적 광신, 신념과 확증편향의 광신을 찾아보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는 역사상 유례없는 자부심에 차 있지만, 중세인이나 우리나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의 공포 앞에서는, 언제든 비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는 그냥 나약한 존재다. 누가 중세를 어둠의 시대라고 하는가. 중세는 억울하다.

김선지 작가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당신이 관심 있을만한 이슈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