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다른 생각] 코로나 속에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입력
2020.03.09 18:00
이 완고한 병이 소멸되는 시점에 우리는 무엇을 돌아보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공공성과 가치의 승리로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 사진은 그리스 아테네 고대 아고라와 헤파이스토스 신전 ©게티이미지뱅크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빛나는 국가 도시였다. 당시 수백 개에 이르는 도시 국가들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며 고대 문명의 역사를 써 내려갔지만, 아테네는 그 중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렸다. 30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통해 아테네를 궤멸시켰던 스파르타도, 그 스파르타를 다시 패망의 길로 인도했던 테베도, 역사적 영광으로 가득한 아테네와 비교될 수 없다. 우리가 기억하는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철학자, 작가, 웅변가와 정치가도 대개 아테네의 시민들이다. 아테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이에 대해 무엇보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먼저 말해야 한다.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나라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매우 집요하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옹호했다. 민주주의는 제도에 대한 이름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이름이었다.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 공동체는 이를 보장함으로써 유지된다는 믿음이다. 실제로 이 확신이 현실에서 얼마나 제대로 구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가 갈릴 수 있으나, 적어도 그들이 민주주의를 가장 근본적인 윤리적 가치로 여겼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들은 왕이나 독재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소수의 엘리트가 정치적 권력을 분점했던 스파르타의 과두정치에 대해서도 멸시와 경멸을 서슴지 않았다. 아테네에서는 많은 공직자를 단순히 추첨에 의해서 뽑았다. 모든 시민이 공동체의 정치적 결정과 그 집행의 책임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다. 아테네의 뜨거운 에너지는 민주주의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런 아테네가 서서히 무너져간 것은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발발 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의 시작부터 전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당시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동요하는 시민들 앞에 섰다. 그는 긴 연설을 통해 스파르타에 대한 아테네의 도덕적 우월함을 힘있게 역설함으로써 조국을 지켜낼 용기를 불어넣고자 했다. 페리클레스에 의하면, 아테네는 사적 이익보다는 그것을 올바르게 제한함으로써 얻어지는 공적 이익을 존중하는 사회이다. 그 가치는 다른 모든 국가가 따라 배워야 할 모범이기에, 그는 “우리 아테네는 그리스의 학교입니다”라고 선언한다. 학교가 무너질 수는 없다. 그는 민주주의와 공공성의 가치를 드높임으로써, 이 전쟁이 단순히 영토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치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듬해 아테네에 몰아닥친 전염병은 모든 의지를 꺾어 놓았다. 페리클레스는 망설이지 않고 다시 연단에 올라, “여러분은 적을 향해 진격할 때 용기뿐 아니라 우월감으로 무장하십시오”라고 다시 한 번 외쳤지만, 이미 아테네의 몰락은 시작되고 있었다. 전염병은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기존 질서를 파괴했다. 당시 시민의 3분의 1 정도가 불과 몇 년 사이에 목숨을 잃었다. 예기치 못한 이 불행으로 아테네 시민들은 분노하고 아우성쳤다. 바다를 제패하고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던 아테네가 이런 비극적 상황을 맞을 줄 감히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이 전염병이 아테네의 몰락을 재촉한 것은 단순히 패전에 끼친 영향 때문이 아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남긴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이 역병에 대해서 이렇게 적었다. “엄청난 재앙에 압도되어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처지인지라 사람들이 종교나 법률의 규범 따위에는 무관심해졌다. 아테네는 이 역병 탓에 무법천지가 되기 시작했다. 신에 대한 두려움도 인간의 법도 구속력이 없어졌다.” 아테네에서 전염병은 공공적 도덕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허물어뜨려 버렸다. 그리고 이것은 곧 아테네의 몰락을 의미했다.

고대 그리스 반도의 아테네를 뒤흔들었던 전염병이 2,500년 후 이 한반도에서 다시 번져 가고 있다. 아테네의 경우처럼 이는 결국 우리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시험대이다. 혐오와 배제, 정파와 분열의 언어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에 대한 긴 싸움이 예상되지만, 조급한 마음에 이 완고한 병이 소멸되는 시점에 대해 섣부른 상상을 해 본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돌아보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혁신적인 조치들로 엄중한 사태를 잘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크게 반가운 일일 터이다. 그러나 그 승리가 속도와 능률의 승리에 머물지 않고, 공공성과 가치의 승리로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 선거와 코로나의 관계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코로나의 관계가 문제의 핵심이다. 가장 심각한 피해를 받은 이들의 권리 회복이 공공적 대처의 중심에 서야 한다. 그러니 이를테면 재난기본소득과 같은 조치들도 조속히 시행함으로써 우리 공동체의 가치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번 바이러스는 그 모양으로 인해 왕관을 뜻하는 ‘코로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라틴어 ‘코로나(corona)’는 본래 전쟁 등에서 무훈을 세운 이들에게 수여되던 꽃으로 만든 화관을 의미했다. 그것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명예의 상징이었다. 이번 코로나 또한 그것을 이겨낸 우리 민주주의의 명예로운 승리로 기억되어야 한다.

김수영 철학박사ㆍ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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