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보춘화와 튤립

입력
2020.03.03 18:00
자생지에서의 보춘화(춘란) 사진 양형호

지난 며칠, 어떤 이야기로 지면을 채울까 참으로 고민이 깊었습니다. 글이란 읽는 사람이 공감하며 마음의 위로 혹은 행복을 주거나 교훈이나 지식을 전달하거나 그 어떤 순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한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든 분이 어려움 속에 계신 지금, 숲과 나무 이야기로 위로를 건네야 하는지, 자칫 철없는 꽃 타령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 식물이야기도 지금의 위기 상황을 반영한 정보를 담을 글을 보태야 하는지, 유사 혹은 가짜 정보의 홍수 속에 정말 꼭 필요한 간결한 팩트가 아니라면 스트레스를 가증시킬 수 있는데 하는 염려들이 꼬리를 물더군요.

다양한 색과 무늬의 튤립품종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이 생각 저 생각이 깊어질 즈음, 탁자 위에 놓아둔 화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인이 선물해 준 보춘화(흔히 춘란이라고 부르는 우리 난초의 식물학적 이름입니다)의 꽃대가 올라오는 듯싶어 가까이 놓아두었는데 그새 꽃이 활짝 핀 것이었습니다. 잎만 바라보고 지내다가 모처럼 꽃대를 올려 피워낸, 처음 만난 그 보춘화의 꽃은 녹색 꽃받침잎 세 장 모두에 아름다운 연노란색 무늬가 들어간 참으로 특별한 모습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은은하면서도 매력적인 꽃향기까지 느껴지더군요. 참으로 경이로워 그 순간 잠시 모든 것을 잊고 마음이 따뜻하게 올라왔습니다. 꽃이, 나무가 혹은 음악이 그렇게 여러 국민의 위로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다양한 색의 튤립품종

난애호가들은 남다른 변이를 가진 난초들을 특별하게 여기며 때론 값비싸게 거래되기도 합니다. 오늘 제가 만난 이 보춘화는 어떻게 꽃받침잎과 잎에 특별한 색과 무늬를 가지게 되었을까? 원예 품종들은 자연적으로 가지는 다양한 유전적 변이들이 서로 표현되는 가운데 원하는 특별한 보습을 골라내는 선발 육종을 하기도 하고, 일부러 돌연변이들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생기는 돌연변이는 대부분 이들이 살고 있는 곳에 여러 화학적 또는 물리적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때론 바이러스와 각은 생물학적인 요인이 작용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텐산에 자라는 야생의 튤립군락(사진 국립수목원)

튤립에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미 글과 그림으로 비교적 최근에 튤립피버라는 영화도 나왔지요, 원래 야생하는 튤립 종류들의 고향은 중앙아시아 톈산산맥을 비롯한 인근 지역인데 페르시아를 거쳐 터키로 왔으며, 오스만 터키인들이 이를 가져다가 재배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튤립을 워낙 좋아한 오스만제국의 술탄은 튤립 모양을 딴 터번을 만들어 머리에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6세기에 유럽 주로 네덜란드로 건너와 재배되었는데 꽃이 워낙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튼튼한 튤립은 인기가 치솟았고 더 특별한 새 품종의 튤립을 만들고자 했으며 많은 이들이 가산을 모두 팔아 작은 땅을 마련하며 구근을 키웠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꽃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꽃값은 폭락하여 파산이 속출했지요. 그중 가장 유명하고 비싼 튤립 품종이 ‘셈페르 아우구스투스’로 꽃 한 포기가 집 한 채의 값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빨간 꽃에 흰색의 특별한 무늬가 생기게 된 이유가 바로 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생긴 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수백 년 전 네덜란드를 어려움에 빠트렸던 튤립 열풍, 그러나 이제 네덜란드는 이를 극복하고 바로 그 튤립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이 당혹스러운 어려움을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극복하여 더 단단하고 강한 대한민국이 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의 희생이 없이 새봄, 정원에 피어날 고운 튤립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간절히 고대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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