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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연재] 조선 후기 선비의 일기장서 리얼돌을 발견하다

입력
2020.02.24 04:30
수정
2020.02.25 07:40
28면

[한국이란 무엇인가]<8>사료 속에서 한국을 보다

※‘칼럼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한국의 정체성, 역사, 정치, 사상, 문화 등 한국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찾아 나섭니다.‘한국일보’에 3주 간격으로 월요일에 글을 씁니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 종합국정감사에서 무소속 이용주 의원이 성인용품인 리얼돌을 보여주며 질의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 종합국정감사에서 무소속 이용주 의원이 성인용품인 리얼돌을 보여주며 질의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부 종합감사 현장에 이용주 국회의원이 여성 신체 모양으로 만든 성인용품 ‘리얼돌’을 가져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 이용주 의원은 리얼돌을 산업적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며 신산업 육성을 주장했지만, 사람들 반응은 싸늘했다. 미국은 인공지능 기반 리얼돌 제품까지 출시했다고 역설했으나, 적절한 처신과 주장이 아니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리얼돌 역사는 보통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동지(冬至)를 전후하여 조선은 청나라에 동지사(冬至使)라고 하는 외교사절을 파견했다. 연경(燕京)에 도착한 사신들은 한두 달 정도 머무르며 외교 업무를 보는 한편, 각종 관람이나 쇼핑을 하기도 하였다.

1693년 동지사 중에는 서장관(書狀官)으로 참가한 심방(沈枋)이라는 이가 있었다. 서장관이란 외교문서기록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심방은 남인의 거두였던 윤휴를 기리는 만사(挽詞)에서 다음과 같이 장중하게 찬사를 구사한 바 있다. “(윤휴)의 도덕은 남송 이후요, 문장은 서한 이전이다” (道德南宋後, 文章西漢前) 즉 윤휴는 남송 이래 성리학을 통해 더 엄격해진 도덕을 체현하며, 서한 이전의 고문(古文) 문장에 숙달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남긴 글이 흩어져 있는데, 누가 출판해서 오래 전할 것인가”(遺文留散帙, 若爲壽其傳)라고 심방은 탄식했는데, 아쉽게도 정작 심방의 문집은 오늘날까지 전하지 않는다.

“(윤휴)의 도덕은 남송 이후”라고 말한 것을 보면, 심방은 윤휴의 문장뿐 아니라 당쟁 속에서 윤휴가 보여준 결기에 감탄했던 것 같다. 실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같은 관공서 기록에 보면, 윤휴가 이런저런 정쟁에 휘말렸던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심방은 노래한다. “세상에 이름난 현인이 나셨네. 올곧음을 길러 도와 짝하고, 도덕적인 실천을 통해 호연지기를 보여주었네.” (挺出名世賢, 配道以直養, 集義生浩然) 이 장중한 찬사 속에 강직한 도덕성과 올곧은 기상을 가진 선비의 모습이 보인다. 뒤이어 심방이 “언행이 딱딱 들어맞고, 모나지 않게 원만하였네”(言動必中節, 削方以爲圓)라고 덧붙이는 것을 보면, 윤휴가 도덕적이었지만 까칠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만사(挽詞)라는 글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글이니. 사람을 좋게 그리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면 비교적 객관적인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이 전하는 심방은 어떤가. 1711년 (숙종 37년) 6월 11일자 기사를 보면, 심방이 지방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당시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1711년에는 경상 관찰사가 언관(言官)에 의해 탄핵 받는 일(臺啓)이 생겼다. 그러자 진주 사람들 한 떼가 관아의 뜰에 모여 집단으로 엉엉 우는 데모(會哭官庭)를 벌였다. 관청에서는 참여자들을 붙잡아 데모의 경위를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정작 그 “울음데모”의 주모자는 도망가고 말았다. (首謀者在逃)

사정이 이러하니, 사건의 전모를 알기 위해 주모자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당시 목사(牧使)였던 심방은 그만 그 과정을 기다리지 못하고, 데모 참가자들을 몽둥이로 패버리고 만다.(以不待營門査處, 酷杖窮推事) 도대체 얼마나 화끈하게 패버린 것일까. 그 일로 인해 심방은 목사 자리에서 쫓겨나고 마는 것(亦爲罷黜)을 보면. 상당히 잔혹하게 몽둥이질을 했던 것 같다.(酷杖) 이 사건 기록을 보면, “모나지 않게 원만하였”다고 한 윤휴를 칭송하던 글귀가 무색하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자체가 심방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에 의해 작성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완전히 다른 성격의 사료인 윤이후(尹爾厚)의 ‘지암일기’(支菴日記)를 살펴보자. 조선 시대의 일기란, 대개 한 개인이 일상에서 일어난 일을 주로 기록한 것이기에, 어찌 보면 공문서에 비해 객관성이 떨어지는 사료일 수도 있고, 또 공적인 제약이 없기에 솔직한 서술을 담을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지암일기" 1692년 4월 23일자 기록의 서울 윤이석에게 부친 것으로 추정되는 간찰. 심방은 지암일기 저자 윤이후의 종형 윤이석의 처남이다. 1692년 윤이후의 후임으로 함평현감으로 부임하였고, 함평현 대동미 유용 사건에 연루되어 1693년 윤이후와 함께 의금부 옥사를 치르기도 했다. 너머북스 제공
’지암일기" 1692년 4월 23일자 기록의 서울 윤이석에게 부친 것으로 추정되는 간찰. 심방은 지암일기 저자 윤이후의 종형 윤이석의 처남이다. 1692년 윤이후의 후임으로 함평현감으로 부임하였고, 함평현 대동미 유용 사건에 연루되어 1693년 윤이후와 함께 의금부 옥사를 치르기도 했다. 너머북스 제공

최근에 완역된 ‘지암일기’의 맨 앞에는 후손이 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간혹 남에게 보일 수 없는 글이 있는데, 어찌 우리 집안 밖에 둘 수 있겠는가.” 이런 내밀한 기록을 통해 공적으로 출판된 문집이나 관공서 기록에서 보이는 것과는 다른 한국의 측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지암일기 1695년 3월 14일조’에 따르면, 심방은 우리나라의 리얼돌 역사에 새 장을 연다. 심방은 동지사로 북경에 갔을 때, 외교활동만 한 것이 아니라, 리얼돌을 사 온 것이다. 그 당시 한문으로 여가물(女假物), 즉 여성 모형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앞뒤 맥락을 볼 때, 17세기 리얼돌로 추정된다.

윤이후에 따르면, 심방은 상당히 소심한 인물이어서 부인을 상당히 두려워한 것 같다.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감히 색(色)을 가까이할 수 없었다. 성욕에 관한 한, 심방은 정말 “남송 이후”의 도덕군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인이 병으로 죽고 나자 심방은 청나라에서 사온 그 리얼돌을 이용하여 욕정을 마음껏 배설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좀 과하게 배설한 것 같다. 그로 인해 기혈이 허해져 미친병(狂疾)이 났다고 하니, 적어도 그 순간에는 “언행이 딱딱 들어맞고, 모나지 않게 원만하였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리얼돌의 사용이 당시 조선에서 불법이었을까. 조선에서 법전 역할을 한 ‘경국대전’(經國大典), ‘대명률’(大明律), ‘수교집록’(受敎輯錄), ‘대전회통’(大典會通) 등 그 어느 법전에도 (리얼돌을 이용한) 자위에 대한 규정은 없다. 양반들의 생활을 규율한 예(禮) 관련 서적에도 자위에 관련한 규정은 없다.

한편,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과의 S. 오즈맹(Ozment) 교수에 따르면, 16세기 유럽 교회 고해성사 규칙은 상세한 범죄 일람표를 담고 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유럽에서 자위는 근친상간보다 심각한 범죄였다. 자위는 종족 번식이라는 목적을 무시한 정액 낭비 행위이기 때문에 그렇다나. 어쨌거나 심방이 리얼돌 사용으로 인해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이처럼 지인의 찬사나 조선왕조실록만을 통해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조선 후기의 일면이 일기라는 사료를 통해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제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마저 상상해볼 수 있다. 소심하지만 공부를 잘했던 선비 A. 그 어렵다는 과거 시험마저 제꺽 합격하고,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했던 연경에 외교관 신분으로 가게 된다.

신기한 광경에 눈이 휘둥그래져서 돌아다니던 선비 A는 우연히 리얼돌 판매상을 만나게 된다. “물건 한번 보실라우?” 리얼돌의 섹시함에 매료된 선비 A는 거액을 치르고 리얼돌을 구매한다. 사람 크기여서 원거리 배송이 쉽지 않았지만, “호연지기”가 있는 선비 A는 포기하지 않는다. 기어이 그 물건을 말에 싣고 와서, 마침내 한국 리얼돌 역사의 새 장을 연다.

부인과 사별 후 그는 본격적으로 리얼돌에 탐닉하기 시작한다. 나날이 수척해지다 못해 목숨을 잃을 지경에 빠진 주인을 보다 못한 충직한 노비 B가 외친다. 주인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리얼돌을 주인으로부터 빼앗은 노비 B는 방앗간으로 가져가서 자기가 리얼돌에 탐닉하기 시작한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선비 A는 정력이 다 빠져버린 것을 계기로 업무에 충실하기로 마음먹고, 데모하다 잡혀 온 사람들을 두들겨 패는 관리로 변한다. 한편, 노비 B는 방앗간 옆에서 피골이 상접한 시체로 발견된다. 리얼돌의 제물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이후 리얼돌을 가져간 남자들은 모두 예외 없이 수척한 시체로 발견된다. 대학자, 영의정, 상인, 마름, 변강쇠, 홍길동, 임꺽정...마침내 나라에 남자 씨가 마를 지경에 이른다. 리얼돌 때문에 폐업 위기에 처한 창기(娼妓)들이 합심하여 리얼돌을 불태우고 나서야 가까스로 사태는 진정된다.

이 시나리오는 마침내 영화산업에 뜻을 둔 재벌의 펀딩을 받아 영화로 제작되고, ‘기생충’의 뒤를 이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는다. 울먹이며 시상식 단상에 오른 감독과 제작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말한다. “이 영광을 조선 시대 일기 자료에 돌립니다.” 샤론 최, 통역해주세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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