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의사 된‘톤즈’유학생 “이태석 신부님 일 대신 하겠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남수단 출신 존 마옌 루벤
이 신부 도움으로 인제대서 공부
“그래선 절대 안되지만 만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병이 남수단에 발생하면 제가 돕고 싶습니다.”
최근 의사 국가시험에 최종 합격한 인제대학교 의대생 존 마옌 루벤(33)씨는 아프라카 남수단 출신이다. 그는 현지에서 의료와 교육으로 선교활동을 펼치다 2010년 대장암으로 선종한 고(故) 이태석 신부의 권유로 2009년 한국에 와 이번에 의사가 됐다. 이 신부의 선종 10주기를 맞아 합격한 점이 루벤 씨에겐 더욱 의미가 깊다.
그는 10일 “이 신부님께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또 드리고 싶다”면서 “신부님께서 마무리 못한 좋은 일들을 앞으로 대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유창하고 조리 있게 한국말을 잘했고, 이 신부에 대한 마음은 특히 또박또박 표현했다. 루벤씨는 “가난과 전쟁으로 서로를 돕지 못하는 상황에서 멀고도 먼 한국에서 아프리카까지 찾아와 우리를 위해 헌신했던 신부님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루벤씨와 이 신부는 1999년 남수단 톤즈에서 처음 만났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학교를 다니던 이 신부가 휴가차 방문한 것이 일생의 인연이 됐다. 루벤씨는 “당시 아이들과 진심으로 즐겁게 놀아주고, 농담하시던 신부님의 모습이 선하다”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2001년 사제 서품을 받아 이 신부가 선교사로 부임하면서 두 사람은 재회했다. 이 신부가 만든 음악 동아리의 첫 회원이 그였고, 5년 동안 기타를 배웠다. 이 신부는 또래에 비해 음악 감각이 뛰어났던 루벤씨를 각별히 여겼다고 한다. 그는 미사를 올리는 이 신부를 옆에서 돕기도 했다.
그는 “신부님은 슬프고, 힘들고, 해결되지 않는 고민에 항상 귀 기울여 주면서 한마디 말로 마음을 치료해 주는 능력을 갖춘 분이었다”고 했다. 의사가 꿈이었던 루벤씨가 한국의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된 것도 “보다 나은 교육 시스템이 있는 한국에서 공부해 훌륭한 의사가 돼라”는 이 신부의 권유 때문이었다.
루벤씨는 2009년 한국으로 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 신부가 세운 수단어린이장학회의 도움을 통해서다. 2012년엔 이태석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 의대에 들어가게 됐다. 인제대에선 학비와 기숙사 등을 지원했다. 그는 “문화와 언어의 장벽, 흑인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 등 한국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힘들 때마다 힘이 돼주신 신부님과 교수님, 동기 등 여러 분들을 생각하면서 견뎠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의사 국가시험에선 실기는 붙었지만 필기시험에서 떨어졌다. 낙심하지 않고 매일 3~4시간 자며 의사 시험공부에 몰두했고, 마침내 올해 시험에 합격했다.
내달 인턴을 시작하는 그는 “아직 전공을 정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고국인 남수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를 공부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간호사였기에 감기 같은 ‘대수롭지 않은 질환’에도 치료를 못 받아 숨져 가는 이들이 수두룩한 고국의 열악한 상황을 익히 알고 있다. 루벤씨는 “병 들어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기본이고, 고국의 의대 교수가 돼 후배 의사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면서 “그렇게 하면 다양한 전공의 의사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 신부님이 보다 나은 세상을 저와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하신 것처럼 저도 더 나은 세상을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권경훈 기자 werther@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