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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문 대통령이 놓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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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와 수사권 조정 檢권력 분산 성과
보복성 인사로 ‘정치적 중립’ 훼손 실책
개혁 반쪽 그치고 ‘윤석열 총선’ 만들어
아직 포연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치열했던 ‘청-검(靑-檢)전투’의 상흔은 뚜렷하다. 청와대는 검찰을 초토화시켰으나 측근 여러 명이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권력에 맞선 검사라는 이미지를 챙겼을지는 몰라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그런데 우리 사회와 국가는 뭘 얻었나. 검찰은 개혁됐고 달라졌는가.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검찰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하고 기형적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제도화는 바람직한 변화다. 물론 권력의 자의적 운용과 변질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나 지금으로서는 검찰 권한 분산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데 의미가 있다. 모두가 문제라고 여기면서 부작용을 우려해 방치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공수처ㆍ검찰ㆍ경찰 간의 견제와 균형으로 기대되는 검찰 권력의 정상화는 포기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하지만 검찰의 압도적인 힘을 약간 덜어내고 견제 장치를 뒀다고 해서 검찰이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하다. 정치적 중립 보장과 현실 정착이 담보되지 않는 검찰 개혁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오랜 기간 공생 관계를 누려온 정치 권력과 검찰의 단절은 필연적이며, 그러려면 정권이 먼저 욕심을 버려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당연한 원칙에 충실했는가.
문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검찰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누차 밝혔고, 이를 이행하려 애썼다. 청와대 민정수석에 검사가 아닌 민간인을 앉히고, 검찰과의 창구를 폐쇄한 것은 그런 의지의 표현이다. 참여정부 때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을 성역 없이 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청와대가 일절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해 왔던 게 문 대통령이다. 이때만해도 자신의 청와대가 정치적 중립 훼손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다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착각으로 밝혀졌다. 권력의 부정적인 속성을 간과했고 측근들의 무결점 오류에 빠진 탓이다. 조국을 검찰 개혁의 적임자로만 알았지 흠결 있는 인물임을 간파하지 못했다. 같은 편이라고 비리를 감싸 주고, 대통령의 친구를 당선시키겠다며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방법을 동원하리라고는 상상이나 했을까.
문 대통령이 잘못 판단한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다. ‘검찰 개혁’이라는 대의 실현을 진정 원했다면 참모들을 향한 검찰 수사를 놔뒀어야 했다. “정치적 중립은 검찰권에 대한 개입을 스스로 절제, 자제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사람이 바로 문 대통령 아니던가.(‘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잘못한 것이 드러나면 대통령의 인사권을 행사해 문책을 하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다.
더 큰 전략적 실책은 개혁의 대상인 검찰을 핍박받는 세력으로 비쳐지게 만든 점이다. 연이은 대규모 인사로 압박한 것이 윤 총장을 ‘가시 울타리에 갇힌 유배자’처럼 보이게 했다. 세계일보 여론조사 ‘차기 대통령 적합도’ 항목에서 윤 총장이 이낙연 전 총리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은 4월 총선이 ‘윤석열 총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다.
정치적 탄압의 명분을 얻은 검찰로서는 꼬리를 내릴 이유가 없다. 검찰이 공언했듯이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는 잠시 중단됐을 뿐이다.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면 미뤄둔 수사에다 새로운 권력형 비리 사건까지 꺼내 들 수도 있다. 검찰 내부에 방패막이를 심어 놨다고 안심할지 모르나 어차피 권력이 기울면 ‘정권’보다 ‘조직’을 향하는 게 그들의 생리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윤 총장 등 다수의 검찰주의자들은 검찰이 대한민국을 이끈다는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됐을 것이다. 나머지 검사들은 어느 정권도 권력을 건드리는 검찰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쳤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국민적 지지 속에 추진된 ‘검찰 바로 세우기’가 미완의 개혁으로 남은 게 못내 씁쓸하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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