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세기의 거래(deal of the century)

입력
2020.02.03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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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백악관에서 ‘세기의 거래’로 불리는 중동평화안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백악관에서 ‘세기의 거래’로 불리는 중동평화안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겠다.”(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협정에 저항하겠다.”(하마스) 트럼프 대통령이 ‘세기의 거래’라며 지난주 중동평화안을 공개하자 팔레스타인은 크게 반발했다. 요르단강 서안 유대인 정착촌, 예루살렘 지위, 난민 귀환 문제 등 3대 협상 쟁점 내용이 모두 이스라엘 입장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안을 발표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미래의 수도로 꼽는 예루살렘에 대해 이스라엘의 ‘온전한 수도’가 될 것이라고 한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 서구 주요 언론들은 이번 평화안이 탄핵 심판대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과 비리 혐의로 기소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위기 탈출을 위한 선거용 이벤트로 치부했다. 팔레스타인이 절대 수용하지 않을 거라며 ‘새 천년의 허세(bluff of the millennium)’라고 비꼰 언론도 있었다. 하지만 주변 정세가 미묘하다. 수십 년 동안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해 온 사우디 이집트 등 아랍국가들은 요즘 미국 이스라엘과 밀착 행보 중이다. 꼬일 대로 꼬인 팔레스타인 독립 문제보다는 이란의 영향력 약화가 발등의 불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이 이 제안을 숙고해 협상에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 평화안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경제 지원 계획도 담겼다. 500억달러를 국제금융으로 조달해 10년간 팔레스타인의 사회 인프라 건설 등에 투자하겠다는 내용이다. 부시 행정부의 ‘2003 로드맵’, 오바마 행정부의 ‘2013 평화안’ 등 전임 정부의 평화안에도 경제지원 계획은 있었으나 이번 안처럼 구체적인 경제개발 청사진을 포함한 안은 없었다.(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트럼프 행정부는 평화안을 요약한 보고서 제목을 ‘평화에서 번영으로’ 라고 지었다. 외교를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트럼프답다.

□ 트럼프 행정부의 평화안은 이-팔 협상의 기축 협정인 ‘오슬로 협정’(1993)을 형해화한다는 분석이다. 오슬로 협정에서 약속됐던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치권은 제한받는 대신, 경제 지원을 받아 살 길부터 도모하라는 얘기다. 선명 투쟁을 강조하는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겠지만, 부패 정치인들에게 지치고 생활고에 허덕이는 팔레스타인 민중으로서는 솔깃할 수 있는 얘기다. 전체 인구의 29%가 빈곤선 이하이고 경제활동 인구의 31%가 실업자인 팔레스타인인들의 속마음은 어떨까.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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