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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개늑시’의 분별이 필요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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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결단 대치 정치권, 설 숨고르기 돌입
심판론 넘칠 총선, 공존ㆍ상생 기대 난망
“삶은 거의 회색지대”…이분법 접근 안돼
상상해보자. 땅거미가 지고 노을이 불타는 해질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붉게 물든 벌판에 혼자 서있다. 낮도 밤도 아닌 애매한 이 시간에 저 멀리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검은 실루엣이 있다. 내가 기르던 개 같기도 하고, 먹잇감을 찾는 늑대 같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위험을 감수하며 기다려 자신의 개를 반길 것인가, 아니면 위험이 두려워 무턱대고 총질할 것인가.
이른바 ‘개와 늑대의 시간(개늑시)’이다. 2007년 인기리에 방영된 16부작 TV드라마의 타이틀이기도 했던 이 표현은 프랑스 속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하루는 대개 밝거나 어둡거나 둘 중 하나이고 남과 밤이 엇갈리는 특정 시간대는 아주 짧아서 개늑시의 딜레마에 처하는 상황은 매우 드물다. 또 그런 상황에서는 손쉽고 재빠른 결정, 즉 위험 감수보다 위험 제거를 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일 것이다. 하지만 개늑시 비유의 함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네 삶은 흑백 구분이 분명한 낮과 밤과 달리, 대부분 어렴풋한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개늑시의 회색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크게는 성장ㆍ분배ㆍ공정ㆍ평등ㆍ평화 등의 문제에서부터 일상의 차별과 젠더 이슈까지 절대 다수가 공감하는 답이 분명하다면 지역과 진영과 세대와 이념으로 나뉘어 다툴 일이 없다. 그렇지 않기에 ‘모호함을 인내하는 열린 태도’로 요약되는 개늑시의 분별이 요구된다. 선과 악, 적과 아군, 참과 거짓, 정의와 불의 등의 이분법 잣대로 두부 자르듯 사물을 판단하고 강요하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패권적 진영논리가 활개치고 파당적 이해다툼이 일상화한 세상일수록 개와 늑대를 분간할 수 있을 때까지 섣불리 다가가거나 조급하게 총질하지 말고 참고 견디는 자세를 갖자는 것이다.
다소 뜬금없는 화두를 꺼낸 것은 설을 맞아 덕담이 넘쳐나야 할 시점에서도 나라가 여전히 두 쪽으로 갈라져 ‘공명지조(共鳴之鳥)’의 어리석음을 마다않는 살풍경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한쪽에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양 인적ㆍ물적 자원을 총동원하며 ‘닥치고 총선’ 드라이브를 거는 여권이 있고, 반대쪽엔 목숨을 걸고 좌파독재 장기집권 음모를 분쇄하겠다며 통합에 올인하는 야권이 있다.
모두 “경제보다 정치가 더 문제”라고 하는데 정치는 청와대부터 별로 바뀔 조짐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협치를 위한 자신의 노력을 열거하면서 국회가 정부의 실패를 바라며 일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정치권이 앞장서서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한다”며 “국회가 조금만 손을 잡아준다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협치 의지를 강조했다. 여기서 국회와 정치권은 물론 자유한국당이다. 한국당이 발끈할 만하다. 황교안 대표는 “야당 탓 프레임을 확대 재생산하는 대통령이 분열과 갈등의 뿌리”라며 “주먹을 쥔 손으로 어떻게 손뼉을 마주치겠다는 것이냐”고 맞받았다.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보다 측근이 겪은 고초가 더 가슴 아파 공공연히 ‘마음의 빚’을 졌다고 말하는 대통령이다. ‘우리 검찰총장’의 검찰권 남용에 제동을 걸기 위해 검찰개혁을 앞세우고 법령을 뛰어넘어 인사권을 과잉 행사하는 대통령이다. 조국이든 송철호든 유재수든 김경수든 내 사람만 유달리 챙겨 국민통합 약속을 무색하게 하더니 총선 승리로 촛불혁명을 완성하겠다며 공과 사를 흐트러뜨리는 대통령이다. 이런 대통령이 내민 손을 야당이 주먹으로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격랑과 파열음으로 달려온 정치가 모처럼 설 휴식기를 맞았다. 연휴가 끝나면 정치권의 안중엔 총선만 남게 된다. 여야는 건곤일척의 기세로 정권 심판, 야당 심판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격렬한 공천 잡음도 일어날 것이다. 당분간 협치 운운할 공간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새로운 10년을 여는 21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기록을 양산한 20대 국회와는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 출발은 흑백지대에서 정의를 독점하는 오만이 아니라, 회색지대에 산재한 정의를 인내하며 찾는 ‘개늑시의 분별’, 혹은 ‘판단 유보의 영성’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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